김아타, 인디아 스케치
김아타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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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인가, 철학인가, 예술인가
 [찾아 읽는 사진책 91] 김아타,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예담,2008)

 


  김아타 님 사진책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예담,2008)를 읽습니다. 맨 마지막 쪽에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님 글이 붙습니다. 이주향 교수님은 김아타 님 책에 “김아타의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입니다(222쪽).” 하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쟁이’가 아니었군요. 그렇다고 ‘예술쟁이’도 아니었어요. 김아타 님은 바로 ‘철학쟁이’나 ‘철학꾼’이나 ‘철학가’, 쉽게 말하자면 ‘생각쟁이’나 ‘생각돌이’나 ‘생각꾼’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다(31쪽).” 하고 말하면서 사진을 넣지 않습니다. 그래요, 김아타 님으로서는 당신 생각을 북돋우려고 사진기를 들었을 뿐이니까요. “하얀 보따리가 두 개 있다(53쪽).” 하고 글을 쓰면서 하얀 보따리 둘 있는 사진을 넣습니다. 김아타 님은 하얀 보따리 둘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느끼고 싶었으니까요. “많다. 복잡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61쪽).” 하고 말하며 사진을 또 안 넣습니다. 참말 아무 생각이 없으니 사진기를 들어, 날마다 1만 장씩 찍었다 하더라도 사진을 넣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멈춘 순간, 골목이 맑다(111쪽).” 하고 말하지만, 시간이 멈춘 때는 없습니다. 나 스스로 시간이 멈추었다고 생각한 때가 있을 뿐입니다. 곧, 나 스스로 시간이 멈춘 때가 맑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때에 골목을 바라보면 골목이 맑다고 여깁니다. 이때에 아가씨를 보았으면 아가씨 얼굴이 맑다고 여길 테고, 이때에 들판을 바라보았으면 들판이 맑다고 여길 테지요.

 


  누군가는 이런 느낌 한 자락 얻으려고 인도로 나들이를 다닙니다. 누군가는 이런 느낌 한 자락 불러일으키려고 네팔이나 티벳이나 스리랑카나 모잠비크나 파키스탄이나 그리스나 칠레나 아르헨티나를 떠돕니다. 모두들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어느 곳으로도 나들이를 다니지 않더라도 ‘시간이 멈춘 한때’를 늘 느낍니다. 이를테면,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김을 매며 늘 느낍니다. 구부정한 허리가 모질게 아프다가는 아예 구부정하게 굳은 채 걷고 자고 먹고 일어나고 눕고 하는 나날을 이으며 언제나 느낍니다. 또는, 책을 읽으며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한테 젖을 물리며 느끼기도 합니다. 늙은 어버이 이마 주름을 쓰다듬다가 느끼기도 합니다.


  “뭄바이 시내 고가도로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뭄바이는 내가 만난 세상 중 가장 시끄러운 곳이지만 사진에는 소리가 없다(135쪽).” 하고 말합니다. 김아타 님은 스스로 사진에 소리가 없다고 느끼기에 이 사진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 이곳에서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몹시 시끄러웠다고 여겼으면, 그분 그 사진에는 시끄러운 사진이 담깁니다.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생각에 따라 빚는 사진입니다. 생각에 따라 이루는 사진입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기라는 틀을 빌려 당신 생각을 가꾸어 보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을 수없이 찍고 다시 찍으면서 당신 생각이 어디로 흐르고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고 싶은 삶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만 사진책이 아닙니다. 이주향 교수님 말대로 철학책입니다. 철학을 하고 싶어 사진을 빌 뿐입니다. 거꾸로,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싶어 철학을 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싶어 영화를 빌곤 합니다. 누군가는 사진을 그리고 싶어 만화를 빌기도 해요.


  글 하나는 시도 되고 수필도 되며 소설도 됩니다. 글이라는 틀을 빌면서 시도 쓰고 수필도 쓰며 소설도 씁니다. 어떤 글은 시와 같지만 편지입니다. 어떤 글은 편지와 같지만 소설입니다. 어떤 글은 소설과 같지만 희곡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으로 보이지만 사진이 아닌 ‘그림’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이라는 겉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진이 아닌 ‘철학’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이라는 옷을 걸치지만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사진기를 쓰기에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쓰며 글을 쓰는 이가 있습니다. 사진기를 빌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기를 빌어 예술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를 뭉뚱그려 ‘사진을 한다’거나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찍힌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이로구나 좋구나 하고 느끼는 일도 반갑습니다. 사진기로 찍힌 모습을 마주하며 철학이로구나 괜찮구나 하고 느끼는 일도 즐겁습니다. 스스로 껍데기를 벗으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스스로 허울을 내려놓으면 사랑이 태어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188쪽).” 하는 말마디처럼, 봄바람을 생각하면 봄바람을 느낍니다. 봄볕을 생각하면 봄볕이 내 온몸으로 샅샅이 스며듭니다. (4345.4.30.달.ㅎㄲㅅㄱ)

 


―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 (김아타 글·사진,예담 펴냄,2008.3.25./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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