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10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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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
 [만화책 즐겨읽기 141] 데즈카 오사무, 《불새 (10)》

 


  봄을 맞이한 나무마다 새잎을 틔웁니다. 나무마다 틔우는 새잎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새잎을 석 장 똑 뗍니다. 한 닢은 옆지기한테 건네고, 한 닢은 아이한테 건네며, 한 닢은 내 입에 넣습니다. 여린 나뭇잎을 잘근잘근 씹씁니다. 여린 나뭇잎에서 퍼지는 내음과 결을 느낍니다.


  풀을 먹는 짐승들은 풀을 뜯을 때마다 어떤 내음을 맡을까 어림해 봅니다. 기린이 나뭇잎을 뜯을 때에, 물뚱뚱이나 코끼리가 풀잎을 뜯을 때에, 토끼나 사슴이 풀을 뜯을 때에, 이들 풀뜯이짐승은 풀내음과 풀맛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코끼리는 논이나 밭을 일구지 않습니다. 그저 풀을 뜯어먹으며 제 몸을 건사합니다. 토끼는 푸성귀를 따로 심지 않습니다. 그예 풀을 뜯어먹으며 한겨울도 나고 한여름도 누립니다. 풀뜯이짐승은 풀밭에 약을 치지 않습니다. 풀뜯이짐승은 풀숲에 거름을 내지 않습니다. 풀을 먹고 풀똥을 눕니다. 나뭇잎을 먹고 나뭇잎오줌을 눕니다.


- “지구는 이미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종류의 인간은 받아들일 여지가 없을지도 몰라. 게다가, 지구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종족을 굉장히 박해하니까.” “아무리 힘든 생활이라도 우리 슬론인이 경험한 고통에 비한다면 참을 수 있을 거예요.” (7쪽)
- “지구가 우주의 그 어떤 별보다 아름답고 멋진 별이라는 것은, 이미 몇 백 년 전의 얘기지. 지금의 지구는 점점 나빠지고 있어. 이미 손쓰기 늦었어. 몇 백여 년 전, 그래, 1900년대를 끝으로 인간들은 입으로는 지구를 소중히 여기자고 했지만, 결국 말뿐이었어. 언젠가 지구도 멸망할 것이다. (96쪽)
- “모르겠어, 모르겠어. 왜 치히로 같은 것(로봇)은 20억 개나 만들면서 지구로 돌아오는 인간들은 막는 거지? 왜 마음이 없는 치히로가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가진 인간들은 우리를 죽이려 할까? 지구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가.” (156쪽)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풀을 먹기가 몹시 힘듭니다. 풀 한 포기 돋지 않도록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꽁꽁 둘렀으니까요. 그러나, 예나 이제나 풀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풀을 먹는 사람은 풀내음과 풀빛과 풀결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풀마다 서린 느낌을 받아먹습니다. 풀마다 고이 받은 햇살을 느낍니다. 풀마다 뿌리내린 흙에 깃든 기운을 받아먹습니다.


  요즈음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고기를 먹기가 매우 쉽습니다. 스스로 돼지나 소나 닭을 치지 않더라도 돈 몇 푼 치르면 쉽고 값싸게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어떤 고기를 먹든 이 고기가 된 짐승이 ‘그동안 무얼 먹으며 살점을 키웠는지’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저 고기를 먹고 먹일 뿐입니다. 고기짐승이 살점을 더 키우도록 항생제와 촉진제를 주사로 놓거나 사료에 뿌립니다. 고기짐승은 사료를 먹습니다. 사료는 화학처리를 한 화학조합물입니다. 곧, 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사료를 먹는 사람이요, 항생제와 촉진제를 먹는 사람이며, 화학조합물을 먹는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곰곰이 살피면, 고기를 먹는 사람들 스스로 고기맛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합니다. 좁아터진 우리에 가두어 사료와 항생제만 먹여 살점을 키운 고기를 먹을 때하고, 너른 들판에서 마음껏 뛰놀며 풀을 뜯던 짐승을 잡아 마련한 고기를 먹을 때하고, 맛과 결과 느낌이 얼마나 다른가를 잘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맛을 아는 사람은 제맛과 참맛을 찾습니다. 제맛과 참맛을 찾을 때에는 제삶과 참삶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맛과 참맛을 모르거나 찾지 않을 때에는 제삶과 참삶하고 자꾸자꾸 멀어집니다.

 

 


- “당신은 아이도 낳지 않고 죽을 건가요? 왜요?” “언제 죽을 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난 어린아이고.” “역시 이 사람은 이상해. 아이도 안 낳고 죽을 건가 봐. 어딘지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해?”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는 거죠? 자손을 잇기 위해서잖아요?” “그런 거 몰라!” “우리들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게 되죠.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거니가.” (8쪽)
- “드디어, 드디어 길고긴 여행 끝에 지구에 도착했는데 하루밖에 살 수 없다니, 너무해요! 그런 잔인한 일이, 너무 가엾어요, 로미.” “괜찮아, 코무. 나는 죽기 전에 이 지구에 오는 것이 꿈이었지. 오랜 꿈이었다. 여기서 만약 인생이 끝난다 해도 나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런 일생이었어. 코무, 그보다 네가 걱정이다. 너는 나를 지구로 오게 해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끝이야. 너만은 부디 에덴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구나.” (133쪽)


  깊은 밤,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면서 생각합니다. 밝은 낮, 아이를 품에 안고 들마실을 하면서 생각합니다. 산초나무 새잎을 똑 따서 먹으면 화악 하고 산초나무 내음이 올라옵니다. 탱자나무 새잎을 똑 따서 씹으면 아하 탱자열매 맛이 이렇구나 하는 느낌이 풍깁니다. 감나무 새잎을 똑 따서 씹으면 머잖아 감알이 달게 익겠네 하고 떠오릅니다.


  지구별에 사람 숫자가 지나치게 늘었다 하는데, 지구별 사람들은 밥을 굶을 만한지 누구나 넉넉히 밥을 먹을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통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구별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기르는 짐승으로 모든 사람이 배불리 밥을 먹을 만하다고 하는데, 정작 지구별 사람들 누구나 가난에서 벗어나 배불리 삶을 나눈다고는 못 느낍니다. 밥쓰레기가 너무 많아요. 제대로 안 먹고 버리는 밥이 참 많아요. 남녘나라 밥쓰레기만 하더라도 몇 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숫자를 떠나 무얼 어떻게 먹어야 내 몸이 즐거운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가만히 따지면, 나부터 내 몸이 좋아할 만한 밥을 알뜰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가 먹는 밥이 내가 꾸리는 삶인 줄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물 한 모금 싱그러이 마실 때에 내 피톨이 싱그러워요. 푸성귀 한 주먹 푸르게 먹을 때에 내 살결이 푸릅니다. 쌀밥 보리밥을 먹으며 쌀과 보리가 흙땅에서 여름과 겨울을 난 느낌으로 뼈마디를 살찌웁니다.


  술을 마시면 술 기운이 온몸에 돌 테지요. 담배를 태우면 담배 기운이 온몸을 감쌀 테지요. 포도를 먹으면 포도 기운이 온몸을 감돌 테고, 고추장을 먹으면 고추장 기운이 온몸을 휘감을 테지요.


  과자는 과자 기운을 냅니다. 표고버섯은 표고버섯 기운을 냅니다. 라면은 라면 기운을 내고, 빵은 빵 기운을 내요. 감자를 먹으면 감자 방귀를 뀝니다. 초콜릿을 먹으면 초콜릿 방귀를 뀝니다. 기름방울 흐르는 세겹살을 먹으면 기름기 짙은 똥을 눕니다. 밭에서 거둔 푸성귀를 먹으면 푸른 빛깔과 내음 나는 똥을 눠요.

 

 

 


- “우리도 보내 보면 어떨까요? 여보세요. 당신은 누구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대답이 없어. 혹시 마음으로 통신할 힘이 없는 상대일지도 몰라요.” (10쪽)
- “우리들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냐? 밖을 봐. 이 바위는 차원을 넘고 있다고! 네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야. 이대로 가다간 은하계를 넘어가 버린다.” (47쪽)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아무래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좋은 삶을 아끼는 좋은 사람이라면, 지구는 참 좋은 별이겠지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좋은 삶을 잊은 채 좋은 꿈을 북돋우지 않으면 지구는 참 나쁜 별이겠지요.


  내 삶을 나 스스로 좋게 일굴 때에 내 보금자리가 좋고, 내 마을이 좋으며, 내 누리가 좋습니다. 저절로 지구가 좋은 별이 돼요. 내 삶을 나 스스로 아무렇게나 팽개치면 내 보금자리 또한 팽개치기 마련이요, 내 마을과 내 누리 모두 팽개치고 말아요. 시나브로 지구가 나쁜 별이 돼요.


  전쟁영화를 즐겨 보면서 지구별에 전쟁 기운을 퍼뜨립니다. 전쟁영화를 자꾸 찍으면서 지구별에 전쟁 얘기를 퍼뜨립니다. 정치꾼들 당파싸움을 신문·방송에 자꾸 실으면서 사람들한테 정치꾼들 당파싸움 얘기를 물들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신문·방송 정치꾼들 당파싸움 얘기로 수다를 떨거나 이런 생각에 젖어듭니다.


  영화가 참사랑과 참삶과 참꿈을 이야기한다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참사랑과 참삶과 참꿈을 즐거이 얘기할 테지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부터 흙을 일구며 아이들하고 나란히 흙을 일구는 겨를을 마련한다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 얻는 삶을 생각하고 익숙하게 삼겠지요. 사람들 스스로 읽는 책이 사랑스럽고 믿음직하며 아름다운 줄거리 가득하다면, 사람들 스스로 사랑스럽고 믿음직하며 아름다운 생각을 꽃피우는 좋은 나날이 이루어지겠지요.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 “위원회에 너희 둘의 시체를 가져가지 않으면 안 돼. 원망하진 마라!” “마키무라 씨! 로미의 목숨은 이제 1시간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래요, 태양이 가라앉아 어두워지면 로미는 죽어요. 지금 둘이서 얘기를 나누며, 마지막 1시간을, 가장 멋진 추억으로 만들자고 하던 중이었는데.” “지구인들은 미쳤다.” “그래요! 지구는 너무나 무서워요. 인간인 주제에 인간미가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죠! 내 고향이 훨씬 더 나아요. 훨씬 더 멋지다고요!” “그래,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미가 아니라 시스템과 법률쁀이지. 미안하다.” (175쪽)
- “이 별이 어떻게 될지는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당신의 결심을 듣고 싶어요.” “저는 이 나라 국민 앞에서 확실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고도 모두 눈을 뜨지 않는다면,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208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째 권을 읽으며 자꾸자꾸 스스로 되묻습니다.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요.


  나는 얼마나 좋은 생각을 품을까요.


  나는 내 살붙이한테 얼마나 좋은 말을 들려줄까요.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좋은 이야기꽃을 피울까요.


  나는 나부터 얼마나 좋다 싶은 책을 기쁘게 읽을까요.


  나는 우리 보금자리 텃밭이랑 뒷밭을 얼마나 신나게 일굴까요.


  나는 우리 마을 뭇 새들과 벌레와 푸나무를 얼마나 아낄까요.


- “위, 나 마음이 없어요.” “마음이 없다니! 왜?” “우리들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두뇌와 메카닉뿐이죠.” “? 마음이 없다니 가엾다.” “가엾다? 의미불명.” “저기 치히로, 이 근처에 깨끗한 물이 있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있고, 생물이 사는 조용한 사람 없는 곳이 있을까? 로미가 가고 싶어해.” “이 근처는 생산 지대입니다. 나는 저 공장의 기술자죠. 저것은 도쿄. 거주 구역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조건의 땅은 없습니다.” “이쪽은?” “이 앞 약 200km는 사막 지대입니다!” “왜 이렇게 사막만 있지?” “위, 사막은 모두 우리들이 개발한 지역입니다.” (154∼155쪽)

 


  지구별 사람은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지구별 사람 스스로 돈을 더 바란다면,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경제성장율과 국민소득 같은 숫자놀음에 더 사로잡힐밖에 없습니다. 지구별 사람 스스로 꿈을 더 키운다면, 지구별 어느 나라이든 착한 사랑과 참다운 이야기로 어깨동무하는 좋은 꽃내음 넘실넘실 흐르리라 봅니다.


  지구는 얼마나 좋은 별일까요.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요. 한국은 얼마나 좋은 터전일까요. 이 나라 도시와 시골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일까요. 한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책은 얼마나 빛나고, 한국사람이 한글로 빚는 글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4345.4.25.물.ㅎㄲㅅㄱ)

 


― 불새 10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5.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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