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글쓰기
괭이로 땅을 판다. 크고 단단한 돌이 나온다. 흙땅에 이렇게 큰 돌이 있으면 무얼 심어도 제대로 자라기 힘들겠다. 이런 곳에서는 지렁이도 굴을 파고 깃들기 어렵겠다. 괭이날이 폭폭 들어가는 곳은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를 만난다. 흙빛이 싱그러우면서 짙다. 흙빛이 좋다고 느낄 때에는 지렁이가 즐거이 보금자리를 틀겠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내 괭이질에 몸뚱이가 토막나는 지렁이를 본다. 지렁이는 몸이 토막나더라도 두 토막이 서로 다른 목숨이 되어 살아날 수 있단다. 부디 서로 잘 살아 주기를 빌며 흙을 덮는다. 그런데, 괭이질로도 지렁이가 다친다면, 트랙터나 경운기에 커다란 날을 달아 윙윙 하고 지나가며 밭을 갈 때에 지렁이는 어떻게 될까. 이때에도 지렁이가 토막나는 줄 느낄 수 있을까. 오늘날 흙일은 지렁이와 함께 건사하는 흙일이 아닌, 비료를 더 챙겨 흙심을 북돋우는 쪽에만 눈길을 두고 마는 흙일이 되는데, 여느 논밭에 지렁이는 얼마나 살아갈까. 비닐을 씌우는 밭에서 지렁이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함께 뒷밭에서 일하던 아이가 지렁이를 보고는 “여기 지렁이 있어.”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네가 흙을 잘 덮어 줘.” “아니, 아버지가 덮어.” 아이는 흙밭에서 나와 풀밭에서 논다. 풀씨를 날리며 놀다가 묻는다. “지렁이 흙 덮어 줬어?” “응, 잘 덮어 줬어.” (4345.4.21.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