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2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10년 걸린 밭, 10년 흘린 밥
 [만화책 즐겨읽기 142]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2)》

 


  해 떨어진 저녁나절, 시골마을은 조용하고 어둡습니다. 깜깜한 밤에 빛나는 별을 올려다보며 개구리 우는 봄날을 누립니다. 시골자락 밤나절, 멀고 가까운 멧자락에서 맑으며 그윽한 멧새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이른저녁부터 깊디깊은 밤을 거쳐 이른새벽까지 맑으며 그윽한 멧새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나는 이 멧새 소리가 궁금하지만 마땅히 여쭐 어른이 없습니다. 혼자 여러 해 끙끙 앓습니다. 멧새 소리가 들릴 때에 이웃 어른이 함께 있으면 여쭐 만하지만, 이렇게 밤을 함께 보낼 길이 없으니 그저 답답합니다. 이러다가 아주 뜻밖인 곳에서 밤에 우는 멧새 소리를 압니다. 일본만화 《게게게의 기타로》를 만화영화로 새로 빚은 작품을 보다가 이 멧새 소리를 들었어요. 만화영화에 나오는 기타로와 동무들이 ‘아름답다 하는 소리를 갈무리해서 찬찬히 즐겨듣는’ 대목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나왔고, 만화영화에 나오는 기타로와 동무들이 ‘부엉이 소리’라 말하기에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그렇구나, 소쩍새 소리였구나. 이때부터 밤마다 멧새 소리를 귀기울여 다시 듣습니다. 한겨레 옛사람은 소쩍새라 하는 이름을 ‘솥쩍다 솥쩍다’라느니 ‘소쩍 소쩍’이라느니 하고 운대서 소쩍새라 지었다고 했어요. 참말 그런가 하고 귀를 기울이니까, ‘소쩍 소쩍’ 하는 소리하고 딱 들어맞습니다. 다만, 내 귀에는 ‘소쩍 소쩍’보다는 ‘소소쩍 소소쩍’이지 않나 싶어요.


  아마 2004년이나 2005년이 아닌가 싶은데, 처음으로 소쩍새 모습을 보았습니다. 멧길을 걷다가, 전깃줄에 앉은 소쩍새를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어요. 소쩍새는 사람 삶터 가까이로는 안 온다 했는데,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던 셈이었어요.


  말로만 듣던 소쩍새를 두 눈으로 바라보던 이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샛노랗게 눈부신 꾀꼬리를 두 눈으로 바라보던 날에도 밤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얼마나 곱고 얼마나 빛나는지 몰라요. 소쩍새나 꾀꼬리는 이녁 모습으로도 내 가슴을 한껏 부풀려요. 이를테면, 몇 백 해를 살아온 우람한 나무를 바라보다가는 살며시 끌어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몇 만 몇 십만 몇 백만 해를 고이 이어왔을 들판 풀숲에 드러눕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 ‘아버지고 어머니도 형도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거다. 그래서 쓸쓸해도 견딜 수는 있지만, 왜 우리는 싸워야 하는 걸까? 마을도 목장도 학교도, 나는 다 너무 좋은데.’ (11쪽)
- “도깨비가 우리 편이면 든든한데!” “도깨비뿐만이 아냐. 숲 속에 사는 원령들과 나무와 물의 정령들, 부엉이, 하늘다람쥐, 뱀들도 모두 우리 편이다.” (72∼73쪽)


  ‘부엉이’라는 새는 없습니다. ‘수리부엉이’라는 새는 있으나, ‘부엉이’는 없습니다. ‘부엉이’는 갈래만 있어요. 그러나, 여느 도시사람은 ‘부엉이’라는 새가 있는 줄 잘못 압니다. 올빼미라든지 소쩍새라든지 여러 새들을 아울러 ‘부엉이’라고만 할 뿐이에요.


  생각해 보면, 새이름 하나 잘못 아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오늘날입니다. 둘레에서 새 한 마리 보기 어려운 삶터잖아요. 소쩍새이든 올빼미이든 두 눈으로 본다든지, 이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 이름만 훤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이름을 알더라도 제대로 안다 할 수 없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소리도 모르는 오늘날 도시입니다. 이름이든 소리이든 삶이든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눈길조차 두지 않는 오늘날 도시입니다. 그래서, 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시골 땅뙈기를 갈아엎거나 파헤치는 건설업체 일꾼들은 아무렇지 않게 국립공원 멧자락에 구멍을 뚫거나 케이블카를 놓으려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한강·영산강·낙동강·금강 둔치나 모래밭이나 갈대밭을 삽차로 파헤치고는 시멘트를 들이부어 반듯하게 쭉쭉 폅니다. 냇물에서 어떤 목숨이 살아가는지 헤아리지 않거든요. 물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살피지 않거든요.


  나라에서 하는 일에 붙이는 이름부터 생각해 봐요. ‘4대강 살리기’라 했다가 ‘4대강 사업’이라고 해요. 냇물에 시멘트를 들이부으면서 ‘살리기’라고 속였어요. 구비치는 냇물을 반듯하게 펴면서 ‘사업’이라고 내세워요.

 

 


- “아버지나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우리 반에서 공항부지 내에 사는 건 나뿐이야. 다들 동정해 주지만, 그렇지만 그뿐, 사실은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공항이 들어서길 학수고대하고 있어.” (21쪽)
- 일본은 그 전쟁(베트남전쟁)에 가담하고 있어. 이 나라도 가해자란 거지. 그러니까, 이 나라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우리도, 베트남의 어린이들을 죽인 가해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 이 전쟁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본인 모두가 B52에 폭탄을 채워 넣고 있는 건지도.” (169∼170쪽)


  개발은 없다고 느낍니다. 허울좋게 ‘개발’ 이름을 붙일 뿐, 언제나 ‘돈벌이’ 한 가지만 할 뿐이라고 느낍니다. 돈벌이를 할 생각이면서, 겉으로는 삶터를 나아지게 한다(개발)고 입발린 말을 내놓습니다.


  돈을 버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돈을 벌어 즐겁게 쓸 수 있다면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오직 돈만 벌려 하거나 그저 돈만 쌓아두려 할 때에는 나쁘며 슬프기까지 하다고 느낍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돈벌기가 아닐 때에는 나쁩니다. 이웃을 괴롭히는 돈벌기가 되면 슬픕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든 군부대를 새로 만들려 하는 움직임이든 모두 나쁘며 슬프구나 싶어요.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아니거든요. 삶터를 나아지게 하는 군부대 새로 만들기도 아니에요. 그저 돈을 더 많이 벌려 하는 움직임입니다.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몸부림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길을 살피지 않으니 나쁘고 슬픕니다. 서로 따사로이 보듬는 길하고 어긋나기에 괴롭고 아픕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즐거울 하루예요. 믿으며 어깨동무해야 아름다운 삶이에요. 밝은 꿈을 이루면서 기쁜 빛을 누려야 좋은 이야기를 빚어요.

 

 


- “공항은 어른들 문제다! 애들은 공부나 해라! 그런 소리 이제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공항이 생기면 사라지는 건 우리 집이라고요! 우리 마을이라고! 우리 학교라고요!” (39쪽)
- “이런 시국에 부모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 않네. 농사꾼은 늘 가족이 함께여. 농번기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이들도 총출동해서 일하지. 그렇게 몸으로 일을 배우는겨.” (81쪽)


  길을 닦는다고 내 삶이 더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동차가 드나들기에 좋고, 자전거가 달리기에 괜찮으니 내 삶이 더 나아지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맨발로 아스팔트길을 오 킬로미터 남짓 달렸습니다. 시골마을 면 잔치가 열렸고, 이 잔치날 체육대회에서 오래달리기가 있어, 우리 마을에서 젊다 하는 내가 달리기에 나갔습니다. 나는 늘 고무신을 신으니 고무신 차림으로 달리는데, 처음 달리기를 하려 하다 보니 자꾸 벗겨집니다. 문득 생각하니 내 고무신은 꽤 닳아 달리기에는 알맞지 않습니다. 나는 따로 달리기를 하지 않으며 살아가니 달리기를 할 때에 신이 벗겨지는 줄 몰랐습니다. 아이들하고 천천히 걷고, 아이들을 수레에 태워 자전거를 달릴 뿐이었으니, 맨몸으로 훅훅거리며 아스팔트길을 달릴 때에 고무신이 얼마나 잘 벗겨지는 줄 몰랐어요.


  어기적거리며 뒤뚱뒤뚱 달리다가 신을 벗습니다. 길 한쪽에 고무신을 놓습니다. 맨발로 아스팔트길을 달립니다. 이 길이 아스팔트 아닌 흙이었으면 얼마나 느낌이 좋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봄을 맞이해 새 풀 한껏 돋은 숲길이나 들길이었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맨발로 아스팔트 바닥을 달리며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왜 마라톤이든 육상이든, 숲길을 맨발로 달리는 일은 없을까요. 운동경기라서? 기록경기라서? 1등을 가려야 해서? 여러 회사한테서 돈을 받아야 하니까? 운동화를 광고하고 무엇무엇을 홍보해야 해서?


  아스팔트 바닥에 뒹구는 자잘한 알갱이가 발바닥에 닿습니다. 따끔합니다. 아프기도 합니다. 갓난쟁이가 맨손으로 시멘트 바닥을 기어다닐 때에 손바닥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갓난쟁이들이 마음껏 기어다니며 냄새를 맡을 수풀이 도시나 시골에 얼마나 넉넉히 있나 생각합니다. 시골에는 수풀이 있다지만, 자꾸 풀약을 치니 논둑이나 풀섶에조차 아이들을 풀어놓기 힘들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 2천 명의 기동대가 동원되어 세 군데에 말뚝이 박히고 콘크리트로 덮였다. 경비가 지키고 서 있지 않았다면 거기에 말뚝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제 확실해졌어. 이게 바로 정부의 수법이다. 마지막엔 역시 힘으로 밀어붙이기. 힘으로 눌러 버리는겨.” (112쪽)
- “뭐가 대성공이여. 겨우 세 개 박는데 일곱 군데에 기동대 부대를 보내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완력으로 떠밀어내고, 그러고서는 대성공이라 떠드는 짓은 아주 악질적인 깡패들도 안 하는 짓이여! 나는, 평생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긴 처음이여!” (118쪽)


  따끔거리는 발바닥을 생각하다가, 아스팔트 밑에 깔린 흙바닥을 떠올립니다. 아스팔트가 아니던 흙바닥은 어떤 삶일까요. 아스팔트가 위에 덮은 다음 온갖 자동차가 싱싱 달리며 내리누르는데, 밑에 깔린 흙바닥은 어떤 느낌일까요.


  지구별은 어떤 느낌일까요. 지구별은 아스팔트 바닥을 좋아할까요. 아스팔트가 깔리며 크고작은 자동차가 끝없이 달리며 눌러대는데, 지구별은 어떤 느낌일까요. 게다가, 자동차마다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 지구별이 앓습니다. 건물을 우람하게 세우며 지구별에 큰못을 박습니다. 시멘트와 쇠기둥으로 엮은 큰못을 지구별에 끝없이 박습니다. 지구별 살갗에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두껍게 덮습니다.


  지구별은 숨을 못 쉽니다. 지구별은 온몸이 멍듭니다. 지구별은 슬퍼 웁니다. 지구별은 끙끙 앓다가 죽을 판입니다. 자잘한 ‘아스팔트 조각’ 하나 내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따끔하면서 아프듯, 사람들이 이룩했다는 문명으로 지구별을 뒤덮을 때에 이 지구별은 얼마나 아프고 괴로우며 슬플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짓을 벌이는가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요. 사람들은 무슨 삶을 꾸리는가요. 사람들은 스스로 가장 좋아하며 가장 빛나고 가장 슬기로운 꿈을 펼치는 나날인가요.

 

 


- “근데, 우리 마을, 우리 집, 우리 밭이 사라진다고, 빼앗겨 버린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던 우리 보리밭이랑 땅콩밭들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렇게 싫어했던 밭일도 더는 싫지 않고. 이 싸움이 논밭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잘 키워서 수확하고, 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반대운동이 아닐까 생각했어. 땅에 대한 애착이나 그런 건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의미가 없지.” (130∼131쪽)
- “논, 밭, 숲, 개울, 그리고 목장. 8킬로의 여정이 참 즐거웠어. 이런 시골에서 데모한 건 처음이야.” (172쪽)
- “미안. 별로 도움이 안 되지?” “뭐, 괜찮아. 당근 뽑는 게 그렇게 재밌니?” “처음이니까. 밭에 들어오기는 처음이야. 흙이 이렇게 부드럽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229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책을 덮으며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10년 걸린 밭에, 10년 흘린 밥이로구나.’ 하고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밭 한 뙈기 일구려고 열 해에 걸쳐 땀을 흘립니다. 누군가는 밥 한 그릇 사다 먹거나 얻어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반찬이나 밥을 남겨서 버립니다.


  누군가는 쓰레기 흘리거나 버리지 않는 삶이요, 누군가는 끝없이 쓰레기를 내놓는 삶입니다.


  공항을 왜 지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찾아가야 하니까 공항을 지을까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도록 하면 큰돈 벌이가 되니까 공항을 지을까요. 문화와 문명과 개발이 되니까 공항을 짓는가요. 공항을 짓느라 논과 밭과 들과 메와 내를 모두 갈아엎으면서 큰돈 벌이가 될 뿐 아니라, 건설업이 크게 발돋움하니까 공항을 짓는가요.


  고속철도는 왜 놓여야 할까요. 고속도로는 왜 생겨야 할까요. 전남 고흥에서 서울까지 가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충남 아산에서 강원 강릉까지 가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여행은 무엇이고 관광은 무엇이며 문화와 문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여행을 할 생각인가요. 사람들은 어떤 관광이 즐거운가요. 나라와 정부와 지자체는 어떤 문화와 문명을 일굴 생각인가요.


  우리 집이 있을 때에 우리 마을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이 있을 때에 우리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있을 때에 우리 지구별이 있다 할 텐데, 찬찬히 돌이키면, 나라나 정부는 없어도 됩니다. 우리 마을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만한 크기이면 넉넉합니다. 몇 천 몇 만이 바글거리는 커다란 도시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알맞춤한 작은 마을에, 알맞춤한 작은 보금자리이면, 밥과 옷과 집이 흐뭇합니다. 앞으로 백 해 땀을 들일 밭입니다. 앞으로 천 해 깃들어 꿈을 피울 집입니다. 앞으로 만 해 뿌리내려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태어나 새롭게 사랑할 마을입니다. (4345.4.18.물.ㅎㄲㅅㄱ)


― 우리 마을 이야기 2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길찾기 펴냄,2012.3.3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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