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기행 학고재 산문선 6
시바 료타로 / 학고재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탐라섬에서 평화를 지키는 평화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6] 시바 료타로, 《탐라 기행》

 


- 책이름 : 탐라 기행
- 글 : 시바 료타로
- 옮긴이 : 박이엽
- 펴낸곳 : 학고재 (1998.2.20.)
- 책값 : 9800원

 


  매화꽃잎이 집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따라 말갛게 눈부시던 꽃잎이 하나둘 지면서 마늘밭 푸른 물결 사이로 톡톡 떨어집니다. 시골마을 매화나무는 이렇게 마늘밭 사이로 꽃잎을 날리는데, 도시에서 조그마한 흙자락 겨우 얻어 뿌리를 뻗는 매화나무는 고운 꽃잎을 어디로 날릴 수 있을까요. 꽃이 지고 열매를 맺어 씨를 떨굴 때에는 어디로 어떻게 새 아기들을 퍼뜨릴 수 있을까요.


  사람 발길이 거의 안 닿는 숲길을 거닐면 하늘을 가릴 만큼 뻗은 큰 나무들 밑으로 아이들 손가락 길이만큼 자란 뾰족뾰족한 풀줄기를 보곤 합니다. 숲길을 그냥 지나치며 보면 풀줄기가 솟았구나 하고 여길 테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아 들여다보면 여느 풀줄기 아닌, 둘레에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들이 씨앗을 떨구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에 새로 돋은 아기나무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둘레에는 한 해를 자란 아기 느티나무부터 두 해를 자란 아기 느티나무나 서너 해를 자란 자그마한 아기 느티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어린 느티나무는 서너 해를 자랐어도 키가 아주 작습니다.


  작은 나무는 사람 발길이나 손길을 타지 않으면 마음껏 자랍니다. 마음껏 자라며 서로 얼키고 설킵니다. 얼키고 설키다가 어느 나무는 죽고 어느 나무는 높이 뻗습니다. 한 사람 삶으로는 나무들 얼키고 설키는 삶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따로 가지치기나 사이베기를 하지 않아도 나무들은 스스로 숲을 일구고 돌보며 어루만집니다. 스스로 알맞게 자라고, 스스로 죽어 거름이 됩니다. 스스로 씨앗을 내리고, 스스로 새싹을 틔웁니다.


.. 생각하면, 사대부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지식인들이나 독서생들이 거의 불모라 할밖에 없는 신학 논쟁을 5백 년이나 계속하였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기이한 일이라 할 만하다. 중국인이나 조선인만큼 정신적 활력이 풍부한 민족이, 세계가 근대로 들어서는 가장 중요한 다섯 세기를 말장난 같은 학문에 소모해 버렸다고 하는 것은 통탄할 노릇이다 … 한국의 옛 건축물을 보고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은 우아함과 유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근대 이전의 중국 건축과는 완연히 구별되는 듯하다. 중국의 대건축에는 정권의 위용을 형태로써 보여주고자 하는 의식이 있으나, 한국의 그것에는 설사 그것이 궁전이라 할지라도 그런 의식이 적다. 아마도 나라의 넓이가 작은 데다 단일민족이라는 요소도 가세하여, 건물로써 위압을 주어야 될 필요는 없었던 까닭인가 한다 ..  (14, 64쪽)


  봄을 맞이해 개구리가 깨어납니다. 개구리가 깨어나면 뱀도 깨어나겠지요. 이 나라에 사람들만 득시글거리며 온 골골샅샅 찻길이나 구멍이 뚫리지 않던 때에는 곰도 깨어났어요. 곰과 함께 다람쥐가 깨어납니다. 들토끼나 멧토끼는 새로 돋는 봄풀을 맛나게 뜯어먹으며 긴긴 겨울이 얼마나 춥고 힘들었는가를 떠올립니다.


  이 나라에서 마지막 멧곰이 마지막 겨울잠을 깨던 봄은 언제였을까 헤아립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멧곰 식구들한테 보금자리를 내주기 힘들 만큼 더 넓은 땅을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은 자동차를 더 빠르게 내달려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봄을 맞이한 뒤 자전거를 타고 읍내나 면내로 달리면, 길바닥에 차에 치여 죽은 짐승과 벌레를 숱하게 만납니다. 자동차는 사마귀나 방아깨비를 밟아 죽여도 느끼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은 길알림판이나 앞차를 바라보는 데에 바쁘지, 새까만 길바닥 한켠에 사마귀가 몸을 따뜻하게 덥히다가 그만 커다란 쇳덩이가 덮치며 납짝쿵이 되고 마는 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나비를 치든 잠자리를 밟든, 범나비 애벌레를 밟든 동박새를 치든,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릴 뿐입니다.


  봄비 내려 논마다 물이 찹니다. 물이 찬 논마다 개구리가 웁니다. 개구리 우는 논자락에는 새들이 살포시 내려앉아 개구리 먹이를 찾습니다. 개구리 우는 논 둘레 찻길에는 멋모르고 올라온 개구리가 자동차한테 밟혀 또다시 납짝쿵이 됩니다. 개구리들 사이에는 새까만 찻길은 얼핏 따뜻하다고 여길 수 있다지만 아무 무시무시하다는 이야기를 유전정보로 대물림하지 못할까요.


.. 강재언 씨는 보기 드문 애국자다. 대한민국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니 하고 두 쪽으로 갈라져 맞서고 있는 마당에, 애국자 노릇을 계속한다는 것은 바로 고독 그것이다 …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한국에는 지식인이 있을 뿐, 일본같이 지적인 기인이 없다는 점이다.” 하는 말을 10여 년 전 어느 한국인의 글에서 읽은 일이 있다 … 경상도 사람들이 자신의 자부심을 한껏 높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다 보니 자기가 소속된 지역 자랑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딴 지역을 폄하하게 되는 것이다 … 문제는 문장의 교졸로 인하여 한 사람은 천상의 생활이 보장되고, 다른 수백만 명은 땅바닥에 엎드려 기는 삶을 강요당해야 하는 제도에 있다 ..  (24, 95, 103, 160쪽)


  모처럼 네 식구 다 함께 이웃 순천시로 나들이를 다녀온 지난주 일을 떠올립니다. 순천시는 이웃한 광양시보다 작고, 광양시는 광주광역시보다 작으며, 광주광역시는 대전이나 인천보다 작으며, 대전이나 인천은 서울보다 작습니다. 그러나, 순천시는 보성군이나 장흥군이나 고흥군보다 큽니다. 찻길이 넓고 시내가 넓으며 사람이 많습니다. 높은 건물과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섭니다.


  무엇보다 시내 가까이에 논이나 밭이 없습니다. 논이나 밭이 없는 순천 시내에서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참새 소리를 듣는다지만, 동박새나 노랑할미새나 직박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까마귀나 노랑조롱이나 종달새 소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서울보다 작고, 인천보다 작으며, 광주보다 작고, 광양보다도 작은 순천시이지만, 이 순천시에서 뱀을 만날 길은 없습니다. 개구리뿐 아니라 다람쥐도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만날 길이 없어요.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자동차를 걱정합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귀가 멍합니다. 바라볼 만한 푸른 숲이나 들이 없어 눈이 아픕니다.


  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던 나는 자동차 소리가 하나도 반갑거나 좋지 않았습니다. 어린 우리들 놀이터를 자동차가 차지하는 일이 몹시 싫었습니다. 국민학교 운동장에 자동차가 들어오면 그렇게 싫었습니다. 한창 공차기를 하는데 뒤에서 빵빵 울리며 비키라 하는 어른들 자동차가 대단히 싫었습니다. 집과 학교 사이를 걸어서 오가는 사오십 분 길을 두 귀가 멍하도록 큰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참으로 싫었습니다.


  네 식구 함께 시골로 옮겨 자동차 소리하고 동떨어진 삶자락에서 지내며, 내 몸이 얼마나 시골을 바랐고, 자연을 꿈꾸었으며, 풀과 나무와 꽃을 기다렸는가 하고 깨닫습니다. 아마, 사람이라면, 여느 사람이라면, 물로 이루어지고 흙에서 태어났으며 햇살을 먹고 자라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어디에서 제 숨결을 가장 사랑스럽고 어여삐 빛낼 수 있는가를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 한 가지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한국인이나 조선인은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일본 것을 연구하려고 들면, 어딘가 바보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일까 … 과거에 응시할 만한 사람은 우선 방대한 중국 고전을 암송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은 오직 주자의 주석을 따라야 한다. 그런 연후에 바늘끝만 한 정의를 향하여 스스로의 지성을 응축시켜야만 한다 … 그들 중에는 더러 에라스무스의 두뇌를 가진 자, 뉴턴이 될 만한 인물도 있었으련만, 몽땅 판에 박은 분재송이 되어 버렸다 … 만일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논쟁토록 하였다면, 이후의 조선 사상사는 엄청나게 풍부하게 되었을 것이다 … 진실이란 그러한 틀 속에는 들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을 얼마만큼 나쁘게 보든 상관없으나, 자유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는 것을 서울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38, 84∼85, 87, 207쪽)


  제주섬을 생각합니다. 제주섬은 ‘제주’라는 이름이기 앞서 ‘탐진’이었고, 탐진이라는 이름이기 앞서 ‘탐라’였다 합니다. 이곳을 다스린다고 하던 나라님은 ‘탐라’가 ‘홀로 한 나라를 나타내는 이름’이기에 못마땅해서 ‘라’를 ‘진’으로 고쳤고, 나중에는 아예 ‘탐’까지 없애고 ‘진’에서 한 자리 낮추어 ‘주’를 붙였다 해요.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국사람이 쓴 글이나 책에서 읽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이 쓴 글이나 책에서는 어느 때에 어떻게 이름이 바뀌었다 하고만 나올 뿐, 왜 이렇게 이름을 바꾸어야 했는가 하고 찬찬히 밝히거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한국역사를 배웠으나, 이러한 발자취를 배운 일이 없어요. 일본사람 시바 료타로 님이 쓴 《탐라 기행》(학고재,1998)을 읽으며 비로소 이 같은 발자취를 깨닫습니다.


.. 조선이라는 나라의 까다로운 성격은, 순수한 중국인에 대하여도 꺼리고 멀리하여, 될 수 있는 한 서울에서는 살지 못하게 하였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조선 전체가 자신의 관념이 만들어낸 누에고치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 지폐 위에 찍혀 있는 이퇴계는 분명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으나, 중국 주자학을 몇 세기 뒤에 전달해 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 조선 왕조는 도그마에 얽매인 관료들이 고의로 문명을 정체시켰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지 않으면, 무슨 동화 속의 이야기로 들리기 십상이다. 조선사람들은 짐을 짊어지고 걸어간다. 만약 수레가 있다면 얼마나 경제가 진보하고, 민생이 풍요로워질 것인가 하는 소리가 실학자들의 지론이었다 … 생각해 보면 조선은 중국의 이웃 나라일 뿐 아니라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통적인 산업기술을 스스로 격리시켜 온 것은 그 형이상적 이유 때문이다 ..  (169, 187, 193쪽)


  남녘땅 정부는 제주섬, 이라 해야 할는지, 탐라섬, 이라 해야 할는지, 이곳 한켠에 군부대를 새로 지으려 합니다. 남녘땅 정부가 새로 지으려 하는 군부대가 이곳 한 군데뿐인가 싶지만, 남녘땅 정부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한 곳이 되도록 하려고 애쓸 뿐 아니라, 남녘땅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로 키운다고 하지만,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허울을 내세워 군부대 짓기를 밀어붙입니다.


  남녘땅 사람들은 제주섬 올레길을 걷는다고 말합니다. 제주 도지사는 올레길을 닦는 데에 돈을 꽤 많이 씁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곳에 군부대가 들어섭니다.


  사람들은 옳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군부대는 평화를 어떻게 지켜 줄까요. 정부 일꾼은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군사시설은 평화를 어느 만큼 지켜 주나요.


  전투기가 평화를 지킬까요. 항공모함이 평화를 지키나요. 박격포와 전차가 평화를 지킬는지요.


  십억이나 백억에 이르는 돈을 베풀어야 사랑이 꽃피지 않습니다. 사랑이 꽃피려면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서울 강아랫마을 아파트를 사거나 값나가는 자동차를 산다 해서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사랑이 샘솟자면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이룹니다. 꿈은 꿈으로 빛냅니다.


.. 제주도에 와서 반가운 일 가운데 하나는 낡은 초가집을 아직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오늘날의 문명에는 바보스러운 데가 있다. 학교를 난립시켜, 아이들을 몽땅 우리 속에 가둬 놓고 어느 우리가 더 나은지 등급을 매기고 있다. 사회나 부모가 다 아이들을 닦달하여 등급이 매겨진 우리 속에 밀어넣고 자타를 구별함으로써 안도하는 사회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신분제가 없는 사회가 되면 흡사 광장공포증에 걸린 생쥐 같은 심리 상태가 되어, 그런 우리를 만듦으로써 일종의 신분적 차별성을 향유하는 것이다 … 생각하면, 이름의 한자 따위는 허식일 뿐인 것이, 훌륭한 뜻을 지닌 한자 이름을 가졌다고 전복 한 개를 더 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  (55, 253, 264쪽)


  일본에서 내로라하던 시바 료타로 님은 한국땅 제주섬을 돌면서 책을 하나 써냅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글쟁이라면, 사진쟁이라면, 그림쟁이라면, 춤쟁이라면, 노래쟁이라면, …… 이녁은 어떠한 이야기를 빚을 수 있을까요. 제주섬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손꼽히던 글꾼 시바 료타로 님은 한국땅 제주섬을 생각하는 이야기를 글로 여미면서 책이름에 ‘탐라’라는 말을 적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글꾼이라면, 환경모임 일꾼이라면, 사회모임 일꾼이라면, 정치모임 일꾼이라면, …… 당신은 어떠한 이름으로 어느 한 터전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한국사람이 한국땅을 착하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람이 이웃나라를 참답게 아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람이 지구별을 곱게 건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기를 든 평화란 평화가 아닌 ‘무기를 든 전쟁’입니다. 학력을 쥔 평등이란 평등이 아닌 ‘학력을 내세운 차별’입니다. 돈을 앞세운 사랑은 사랑이 아닌 ‘돈을 앞세운 거짓’입니다. (4345.4.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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