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통 털실 네 뭉치 꼬마 그림책방 23
오오시마 타에코 지음,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봄을 기다리는 착한 사람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3] 오오시마 타에코, 《통통통 털실 네 뭉치》(아이세움,2008)

 


  마당 가장자리에 보라빛 봉우리 작게 맺히기에 가만히 바라봅니다.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서 무슨 꽃이 피어날까 궁금해 하며 여러 날 기다리니, 이 보라빛 봉우리는 자그마한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을 우리 집 마당에서도 보네, 하고 살짝 웃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집 아이들 재우며 부르는 자장노래 가운데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하고 첫머리를 여는 이원수 님 동요가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식구들 곁을 떠나 다른 사람 집에서 밥어미 노릇이나 애보개 노릇을 하는 아이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으리라 보는데, 이원수 님 동요에 나오는 ‘밥어미 애보개’ 아이들은 1970년대까지도 제법 많았다고 해요.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부르는 자장노래이니 그러려니 하고 들을 테지만, 뜻과 결을 새기고 보면 하나같이 구슬픈 이야기를 담았어요. 구슬픈 이야기를 담은 노래이기에 가락이 퍽 잔잔합니다. 아이들 재울 때에 부르기에 퍽 알맞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구슬프고 잔잔한 가락인 노래만 부르지는 않아요.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찰랑 모래밭에 게들이 살금살금 나오고.” 하며 첫머리를 여는 동요도 부르는걸요.


  그나저나, 나물 캐는 순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요에서, 순이는 ‘앉은뱅이꽃’을 딴다고 해요. 아이들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앉은뱅이꽃이 무언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민들레나 제비꽃처럼 흙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피어나는 꽃들을 아울러 일컫는 이름이더라고요.


.. “미도리, 조용히 좀 해. 아기가 깼잖아.” 엄마는 잔뜩 화가 났어요. “나가 놀지도 못하잖아요.” “그럼 할머니 방에 가서 놀아!” ..  (2쪽)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들판과 논둑과 멧자락에는 보름쯤 앞서부터 앉은뱅이꽃이 잔뜩 피어났어요. 생각해 보면, 민들레와 제비꽃만 앉은뱅이꽃이라 할 만하지 않아요. 민들레는 3월 끝무렵에 비로소 노란 꽃송이를 내미는데, 3월 한복판 무렵부터 본 제비꽃도 앉은뱅이꽃이었지만, 이에 앞서 먼저 고개를 내민 봄까지꽃이랑 별꽃도 앉은뱅이꽃이에요. 얼마나 흙바닥에 납작 붙어서 조그맣게 피어나는지, 눈여겨보지 않으면 이 두 가지 들꽃을 알아채기 힘들어요. 우리 식구들 인천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살던 때에도 골목길 한갓진 곳에서 봄까지꽃이 피곤 했는데, 이 조그마한 꽃은 아주 눈여겨보고, 가만히 쪼그려앉아 들여다보아야 보라빛 예쁜 잎사귀를 만질 수 있어요.


  햇살 좋은 봄날 이불 두 채를 빨아 마당에 예쁘게 널며 헤아립니다. 마당가에 조그맣게 피어나는 제비꽃은 이불 두 채한테도 고운 내음과 이야기를 조그맣게 나누어 주겠지요. 갓 빨아 햇볕을 머금는 이불은 햇살뿐 아니라 바람과 꽃내음과 풀내음 모두 받아먹을 테지요.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놀면, 빨래는 아이들 놀이하며 내지르는 목소리와 노래를 찬찬히 받아먹습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마늘밭에서 김매는 호미질 소리도 받아먹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이웃집에서 살아가는 할머니가 봄풀을 캐는 호미질 소리도 나란히 받아먹습니다. 이레쯤 앞서부터 무논마다 한두 마리씩 깨어난 듯한 개구리 울어대는 소리가 조용히 받아먹습니다.


  그래, 개구리라니, 참 반가운 개구리라니, 개구리예요. 이불을 넌 곁에 기저귀를 널면서 개구리 소리를 듣습니다. 왁왁 우는 봄개구리 소리가 반가운 나머지 “어, 개구리가 우네.” 하고 절로 외쳤더니, 방에서 낮잠을 자려고 드러누웠던 첫째 아이가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오며 “응? 개구리 울어?” 하고 묻습니다.

 

 


.. 미도리는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어요. 할머니가 털실을 한 아름 안고 싱글벙글 웃고 있어요. “방 청소를 하다가 털실 남은 걸 좀 찾았단다. 이걸로 뭘 떠 볼까.” “우와, 예쁘다…….” ..  (5쪽)


  며칠 드세게 불던 바람이 가라앉은 아침나절, 마루문을 활짝 엽니다. 봄기운과 봄소리가 마루문을 거쳐 온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봄벌레 깨어나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잦아들며 나뭇가지 또한 가만히 살랑이며 내는 나지막한 소리를 듣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김을 매랴 나물을 하랴 바쁩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아이를 재우고 아이를 쓰다듬습니다. 이 봄날, 아이들은 봄기운 마음껏 누리면서 봄 어린이로 살아갈 때에 가장 아름답겠지요. 이 봄날, 어른들은 봄내음 실컷 들이마시면서 봄 어른으로 살아갈 적에 가장 빛나겠지요.


  봄을 누리는 사람은 여름을 누리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여름을 누리는 사람은 가을을 누리는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가을을 누리는 사람은 겨울을 누리는 사람으로 새로워집니다.


  철 따라 고운 꿈을 품습니다. 날 따라 맑은 넋을 북돋웁니다. 좋은 바람이 좋은 햇살 머금으며 흐릅니다. 좋은 소리가 좋은 풀잎 스치며 들립니다.

 


.. 바로 그때, 파랑 털실이 떼구르르 바구니 밖으로 굴러 떨어져 데굴데굴 또르르 데굴데굴 또르르. 그러더니 글쎄, 파랗디파란 바다가 되었어요. 철썩철썩 파도 소리 ..  (17∼18쪽)


  오오시마 타에코 님 그림책 《통통통 털실 네 뭉치》(아이세움,2008)를 읽습니다. 긴긴 겨울 바깥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아이가 심심한 나머지 온 집안을 어지르다가는 어린 동생이 낮잠을 못 자게 깨운답니다. 아이 어머니는 성을 내고, 아이는 할머니한테 달려갑니다. 할머니는 웃는 낯으로 보드라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털실 네 뭉치를 꺼내어 아이한테 긴긴 이야기를 짓습니다.


.. 미도리는 졸음이 쏟아져요. 눈을 감고 한숨 크게 들이마셔요. “아, 할머니 냄새…… 내가 진짜 좋아하는 냄새다.”  ..  (29쪽)


  할머니한테서 털실 네 뭉치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마음속으로 꿈을 꿉니다. 바깥은 춥디춥고 하얗디하얀 겨울이지만, 이 하얀 들판에 푸르고 노랗고 파랗다가는 바알간 빛깔로 그림을 그립니다. 하얀 들판을 종이 삼아 예쁘게 봄을 꿈꿉니다. 하얀 마음 되어 울긋불긋 곱디곱게 사랑을 꿈꿉니다.


  봄을 기다리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봄을 바라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봄을 꿈꾸는 어여쁜 사람들입니다.


  봄은 착한 마음으로 맞아들입니다. 봄은 기쁜 넋으로 맞이합니다. 봄은 살가운 손길로 맞잡습니다. (4345.4.5.나무.ㅎㄲㅅㄱ)


― 통통통 털실 네 뭉치 (오오시마 타에코 글·그림,김정화 옮김,아이세움 펴냄,2008.8.2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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