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손바닥책
손바닥책 담은 상자를 끌른다. 열 차례 남짓 살림집을 옮기면서 손바닥책을 꾸리는 일이 퍽 힘들었다. 처음에는 끈으로 묶어서 날랐는데, 책짐 나르기를 거들던 사람들은 으레 책뭉치를 밟거나 던진다. 처음부터 책뭉치를 밟거나 던지는 사람도 있으나, 일이 하도 힘들어 나중에 가서야 밟거나 던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책뭉치를 밟거나 던질 수 없다. 밟거나 던질 책뭉치라 한다면, 처음부터 이들을 건사하지 않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숱하게 살림집 옮기며 어느 책보다 손바닥책이 크게 다쳤다. 더 작아서 더 아껴야 할 책이요, 더 가벼워 더 잘 다치는 책이기에, 손바닥책이 찢어지거나 눌린 모습을 볼라치면 눈물이 난다. 상자에 구겨지지 않게 손바닥책을 챙겼는데, 책짐을 나르던 일꾼들은 책뭉치뿐 아니라 책상자마저 휙휙 던졌다. 책상자를 그리 던질 줄 모르던 나로서는 깜짝 놀라지만, 예닐곱 시간 등짐을 져서 날라야 하니, 기운이 빠져 어쩌는 수 없겠지 하고 받아들였다. 어느덧 여섯 달 되었나. 이제 아련한 옛일처럼 느끼는데, 손바닥책 담은 상자를 끌러 한쪽으로 눌린 책 모습을 보니, 누구를 탓할 수 없고, 그저 안쓰러이 쓰다듬을밖에 없구나 싶다.
새로 얻은 커다란 책꽂이에 손바닥책을 차근차근 꽂는다. 제자리를 잡는 책들이 기지개를 켠다. 하루 한두 시간 짬을 내기에 빠듯하지만, 이동안 바지런히 책상자를 끌르자고 다짐한다. 어린 두 아이를 보살피는 사이사이 더 넉넉히 품을 못 들여 아쉽다 여길 수 없다. 어린 두 아이를 옆지기가 홀로 맡는 한두 시간을 며칠에 한 번씩 얻을 수 있는 일을 고맙게 여길 노릇이다.
신구문고, 정음문고, 을유문고, 박영문고, 중앙문고, 전파과학문고, …… 그저 꽂기만 한다. 이 손바닥책들은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새요, 번호가 차곡차곡 붙는다. 아직 번호까지 맞추어 갈무리할 틈은 없다. 상자에서 벗어나 숨통을 트도록 할 뿐인데, 이렇게 해 주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하고 좋다. 사랑스러운 책도, 사랑스러운 살붙이도, 사랑스러운 벗님도, 모두모두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내어 씩씩하고 맑게 살아가면 참으로 기쁘겠구나 하고 느낀다. 스스로 좋게 품는 마음으로 스스로 좋게 누리는 삶이 되리라 믿는다. (4345.4.2.달.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