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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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를 생각해서 ‘당신은 죽으시’오
 [만화책 즐겨읽기 137]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1)》

 


  시골 면사무소는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큰물이 진다든지 가뭄이 든다면 여러모로 일거리가 늘어날 테지만, 여느 때에는 참 일거리가 없다 여길 수 있습니다. 도시에 있는 동사무소는 일거리가 많을까요. 서울이라면 많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동사무소이든 다른 공공기관이든 일거리가 늘 철철 넘칠 만큼 될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공무원이라는 자리에 앉아 일하는 이들이 건물 안쪽 책상맡에 앉아서 씨름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내야 할까 모르겠어요.


- 26년 전(1966년), 나는 그저 놀기 좋아하는 소학교 5학년이었다. (11쪽)
- “이 부락에도 예전부터 농사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서 관두고 싶어 했던 사람이 몇 사람 있었다오. 공항을 계기로 결심이 섰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 심정 나도 뼈저리게 압니다. 역시 가장 괴로운 건, 사이좋게 잘 지냈던 이 마을이 두 무리로 분열된 것이라오.” (215쪽)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한 삼월 첫무렵부터 사월로 접어들기 앞서까지, 시골마을 곳곳에 ‘면사무소 안내방송’이 날마다 여러 차례 울려퍼졌습니다. 경운기 소리마저 거의 못 듣는 우리 시골마을인데, 이른아침 낮 저녁, 또 사이사이, 면사무소에서 ‘산불 나지 않게 불을 함부로 피우지 말자’는 이야기를 녹음테이프로 자꾸자꾸 틀어놓습니다. 어쩜 이렇게 지치지도 않고 날마다 여러 차례 똑같은 이야기를 틀어놓는가 싶지만, 이렇게 해야 산불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시골에서는 쓰레기를 집집마다 ‘알아서’ 태우니, 자칫 바람에 불씨가 날려 멧자락 하나 홀랑 태울까 걱정할 만해요. 우리 시골마을은 해가 바뀔수록 풀약 치는 집이 줄어, 차츰 농약 없이 손으로 김매는 시골이 되는 만큼, 논둑이나 밭둑 풀을 잡자면서 불을 퍽 자주 놓아요. 약을 안 치자니 풀을 잡아야 하고, 풀을 잡자니 일흔이나 여든 살 몸뚱이로 너무 고단하니, 불을 놓는 일이 가장 수월합니다.


  면사무소에서 때맞춰 방송을 하는 일이 마땅하리라 느끼면서, 여러모로 아쉽고 서운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삼월 한 달 ‘산불 안 나게 하자’는 방송을 끝없이 내보내면서, 막상 면사무소 일꾼이 시골마을을 두루 돌며 시골 흙일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한 차례조차 못 보았거든요.


  예전 같으면, 그러니까 스피커라는 시설이 없던 예전 같으면, 아주 마땅히 면사무소 일꾼이 마을을 두루 돌았겠지요. 면사무소 일꾼이 모둠을 짜서 날마다 온갖 마을을 두 다리로 돌았겠지요. 스피커 시설이 변변하지 않던 때에는 자동차 또한 변변하지 않을 뿐더러, 시골길마저 흙길에다가 자동차 들어서기 힘들었을 테니, 다들 자전거를 몰며 큰길까지 달린 뒤, 자전거를 천천히 끌며 온갖 마을을 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이 어떠한 생김새인가를 두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온몸으로 느끼면서, 참말 공무원다운 공무원 일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은 시골에도 길이 잘 뚫리고, 면사무소 일꾼이라면 으레 자가용이 있는데다가 면사무소 짐차가 있으니, 어디라도 차를 타고 다닐 만하고, 한나절 달리면 면사무소 테두리 모든 마을을 돌 수 있기도 합니다.

 

 


- “도쿄에 가서 뭘 할 건데?” “아직 몰라. 하지만, 어쨌거나 내 앞길은 내가 정할 거야. 고등학생 때부터 그렇게 마음먹었어. 농사꾼은 나한테 맞지 않아.” “농사일은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땅을 버릴 수는 없잖아?” “뭐냐, 시게루. 너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을 나가겠다고 소란 피웠잖아.” “그, 그랬지만, 이걸 봐, 히로시.” “아, 그때 말했던, 실크단지 구상인가?” (22∼23쪽)
- “정부가 도미사토의 반대운동에 막혀서 공항 건설을 포기한 건 사실이야. 근데 그들이 또다시 같은 실패를 반복할까?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라도 이번에는 죽을 각오로 쳐들어올 거다. 이웃 산리즈카로.” (74쪽)
- “여기 부락 모두가 얼마나 많은 뽕밭을 일구었는지 알아? 농림성의 부추김에 3년 공들여서 45만 평이다. 그런데 이번엔 공항 만든다고 뽕밭은 그만두라니. 전부 끝났어.” (92쪽)


  네 식구가 마실 삼아 집부터 면소재지까지 걷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면 5분이면 넉넉하고, 두 다리로 걸으면 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이야기를 그리 많이 나누지는 않으나, 이야기가 될 수많은 삶과 모습을 느낍니다. 대문을 열고 논밭으로 나서도 논둑 밭둑에 갖은 풀포기가 인사합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이 날마다 새롭게 인사합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더라도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쉼없이 지저귀며 노래합니다.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맑게 트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찧고 까불며 놉니다. 개구진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맑게 트는 소리를 듣는 사이사이, 밥이 끓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지렁이가 흙속을 누비며 흙똥 누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운 봄볕을 받으며 아주 천천히 꽃잎을 벌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내 어릴 적 내가 형이랑 찧고 까불던 소리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내 어릴 적 내가 뛰놀던 골목 언저리에서 나도 모르게 피고 졌을 숱한 골목꽃을 헤아립니다. 수많은 목숨이 조용히 태어나서 조용히 죽습니다. 수많은 넋이 고요히 온누리를 떠돌며 지구별을 보듬습니다.


  나는 어떤 목숨일까요. 나는 어떤 넋일까요.


  밤에는 달과 별을 느낍니다. 낮에는 해와 구름을 느낍니다. 냇물이 흐르며 소리를 냅니다. 별이 움직이며 소리를 냅니다. 마늘포기가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냅니다. 씨앗들이 흙속에서 깨어날 때를 기다리며 소리를 냅니다.

 

 


- “하지만, 결국 공항이 세워지겠지? 각료회의에서 결정했다던데.” “그야 위에서 하는 일이니까.” “우리 아버지는 오히려 좋아하더라고. 도미사토 마을에 큰 공항이 생기면 우리 농작물이 비싸게 팔릴 거라고.” “바보, 그쪽 농민 처지도 생각해야지.” (25쪽)
- “그럼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신문 따위 거짓말투성이잖아!” “이 녀석들! 웬 소란이냐? 곧 수업 시작한다!” “선생님! 정말 여기에 비행장이 생기나요? 선생님!” (47쪽)
- “아버지 말이야. 전에는 공항이 지역발전에 도움될 거라고, 도미사토 마을의 공항 반대 서명을 거절했잖아.” “그, 그거야.” “남의 땅이라면 찬성해도 우리 땅엔 안 된다, 라니. 좀 그렇잖아?” (59쪽)


  이제 시골사람 되어 살아가니, 내 고향이 도시인 인천인 줄 잊을 때가 잦습니다. 이제 시골사람인 터라, 내 고향이 어디였다고 떠올릴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인천서 사는 동무가 늦은 나이에 장가 간다며 편지를 띄우니, 비로소 인천에 남은 동무들 살림살이를 가만히 그립니다. 내 동무들은 나처럼 아이들 낳아 이래저래 찧고 까불 텐데, 내 동무들 아이들은 내 동무들 어릴 적처럼 흙을 모르고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야만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인천공항이 떠오릅니다. 어떤 인천사람은 인천에 공항이 생긴다니 좋아했습니다. 아니, 참 많은 인천사람은 인천에 새로 생기는 공항을 몹시 반겼습니다. 내 오랜 벗 가운데 하나는 인천에서 ‘인천이지만 인천 아니라 하는’ 영종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동사무소 공무원이 된 벗인데, 이 벗도 아이를 낳고 꾸준히 일하는지, 아니면 일터를 그만두었는지까지는 모릅니다. 오랜 벗이지만, 서로 어찌 지내는가를 오래도록 모릅니다. 내 벗도 영종섬에 공항이 들어서는 일을 반겼을까 궁금합니다. 내 벗하고 영종섬에서 살아온 숱한 사람들도 영종섬 공항을 좋아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집과 밭과 멧자락 모두 나라에 팔아야 하면서 고향을 떠나 고향을 잊어야 했을 영종섬 사람들은, 인천이지만 인천 아닌 영종섬 사람들은, 인천에 새로 짓는 공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 “시장님, 국제적인 공항이 필요하단 것은 잘 알겠소. 하지만, 정부는 우리에게 아직 그 어떤 양해도 구한 바 없소. 그런데도 신문에 마치 이미 정해진 일인 것마냥 기사가 나는 건 어째서요? 국가적 대형 공공사업이면, 이렇게 우리들의 승낙 없이 추진해도 되는 거요?” (52쪽)
-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어. 마유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지킬 거랬어.” “그, 그런 걸 주민 이기주의라고 하는 거다.” “뭐라고? 배신자 녀석!” “시끄러! 이기주의자!” “외국에 못 나가도 좋냐?” “그딴 데 가고 싶지 않다, 뭐!” “조용히! 웬 소란이냐! 예비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아야지! 2학기 시작부터 말썽이냐?” …… “선생님, 저, 산리즈카에 공항이 들어서면 소음 때문에 수업이 불가능해진다고, 그래서 이 학교도 폐교될지 모른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정말인가요? 그리고 이 부근의 소학교나 중학교들 전부 방음 건물로 새로 짓는다는데 그것도 사실인가요? 방음 건물은 창문이 좁고 어둡고, 1년 내내 문을 꼭 닫아걸고 형광등을 켜고 공부한다던데 정말인가요? 선생님은 공항 건설에 반대인가요, 찬성인가요? 학교가 폐교돼도 상관없으세요?” (113, 115∼116쪽)
- “헤헤헤,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요? 바보같이!” “겐지.” “태평스럽게 그런 말 하고 있을 때, 불도저가 와서 학교를 싹 쓸어버릴걸요! 어때요, 선생님. 그렇게 돼도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고 할 거예요? 이런 학교 부서져 버리라지!” (154∼155쪽)

 

 


  인천에 공항을 짓겠다 하는 중앙정부 공무원 외침말이 신문에 실리던 그날, 나는 몹시 못마땅하고 슬펐습니다. 김포에 있는 공항을 처음 지을 때, 김포에서 나고 자라며 흙을 일구던 사람들이 어떻게 쫓겨나고 어떻게 고향을 빼앗겼으며 어떻게 뒷삶을 꾸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익히 들은 터라, 이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려는 중앙정부 개발정책이 그지없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더없이 슬펐어요.


  참말 공항을 지어야 한다면, 서울 종로 한복판에 지어야 하지 않나요. 공항을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헤아려, 서울 강남 압구정동 명동에 닦아야 하지 않나요.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데가 서울인 만큼, 핵발전소는 서울 한복판에 지어야 마땅해요. 화력발전소도 서울 한복판에 세워야 마땅해요. 제철소도 제강소도 정유공장도 자동차공장도 서울 한복판에 세워야지요. 서울사람은 발전소 곁에서 살아 보아야 해요. 서울사람은 제철소 곁에서 바람을 마시고 빨래를 널어 보아야 해요. 유리공장 둘레에서 아이들이 뛰놀아 보아야 해요. 식품공장 우유공장 언저리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 보아야 해요.


  나는 인천제철이 어떠한가를 겪어 보았어요. 나는 인천발전소가 어떠한가를 느껴 보았어요. 나는 연탄공장, 식품공장, 시멘트공장, 화학공장, 자동차공장 언저리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어떠한가를 두 눈으로 지켜보았어요. 그래서 이 모든 슬픈 굴레를 내 옆지기와 아이들이 똑같이 느끼거나 고스란히 겪기를 바라지 않아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사람답게 사랑하고 싶어요. 좋은 목숨을 좋은 꿈으로 누리며 어깨동무하고 싶어요.


- “우리가 땅을 파는 게 그리 나쁜 일일까? 땅을 팔고 빚을 갚는 게. 애들 좋은 학교에 보내주는 게 말이여.” (83쪽)
- “뎃페이. 도모노 지사는 말이다, 여기를 공항으로 만들어도 좋겠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물어 보러 오는 게 아니여.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이해해라, 협력해라, 땅을 팔아라, 이거여.” (160쪽)
- “히로시. 땅은 말이여, 원래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이 땅은 우리의 것도 공단 것도 아니여. 옛날부터 그저 여기에 있었을 뿐. 그것을 인간이 제멋대로 선을 긋고 제것이라고 우기기 시작한 거여. 우리도 마찬가지여. 하지만 말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을 일구고 갈고 씨앗을 뿌려서 비옥한 흙으로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여.” (184쪽)

 

 


  인천 앞바다에 있던 용유섬이 사라졌습니다. 용유섬과 영종섬 사이 갯벌은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영종섬에 넓게 드리우던 소금밭은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영종섬을 둘러싸던 갯벌은 몽땅 죽었습니다. 흙밭과 소금밭과 낮은 멧등성이와 갯벌과 숲으로 이루어졌던 영종섬은 온통 시멘트·아스팔트 덩어리로 바뀌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를 타려고 달리기를 하던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고 길쭉한 다리를 건넙니다.


  인천 영종섬을 알던 사람들한테 영종섬은 이제 없습니다. 인천 용유섬을 모르던 사람들한테 용유섬은 예나 이제나 없습니다. 중앙정부 공무원과 건설업자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조차 집과 길과 삶터를 종이에 그려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집과 길과 삶터를 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어깨동무하지 않았습니다. 공항버스 타고 새근새근 잠들면 어느새 비행기 타는 데까지 느긋하게 닿습니다. 표를 끊고 비행기를 타고 나라밖 어디로라도 오가면 그만입니다.


  더 값싼 미국 쌀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더 값싼 칠레 포도를 사다 먹으면 됩니다. 더 값싼 중국 곡식을 사다 먹으면 됩니다. 더 값싼 호주 소고기를 사다 먹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한국 자동차와 손전화와 셈틀을 더 값싸게 나라밖에 팔면 됩니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는 삶자락인데, 돈을 생각하고 돈을 나누는 오늘날인데, 영종섬 고기잡이와 흙일꾼 몇몇이 고향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들, 하나도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이웃 한국사람’도 없습니다.


- “내가 농사꾼을 싫어했던 건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8쪽)
- “뒷일은 너에게 맡긴다, 뎃페이. 할 수 있지? 너 혼자 남는다 해도 싸워야 한다. 네가 지키는 건 이 목장이나 집, 밭뿐만이 아니야.” “네?” “네가 지키는 건, 민주주의다.” “민주, 주의?” (223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책 앞머리에 문정현 신부님 추천글이 실리는데, 나는 이 추천글이나 책끝에 붙은 어느 대학교수 소개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1992년에 나온 만화책이 스무 해만에 한국에서 나온 일을 기리며 오제 아키라 님이 새로 붙인 머리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제 아키라 님은, “때린 사람은 자기가 때렸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고 말합니다.


  그래요, 때린 사람은 얼마나 세게 얼마나 아프게 얼마나 슬프게 때린 줄 몰라요. 어떤 이는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으면 ‘제주 강정마을’이 떠오른다 말하지만, 나는 제주 강정마을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나는 《우리 마을 이야기》를 읽으면서 ‘서울 김포’가 아닌 ‘경기 김포 시골마을’과 ‘인천 영종 섬마을’이 떠오르던걸요. 삶과 삶터와 사랑과 사람 모두 잃거나 빼앗긴 이 나라 ‘공항 부지 피난민’이 떠오르던걸요.


  충청북도 청주에 공항을 지을 때에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전라남도 여수에 공항을 닦을 때에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 곳곳에 공항을 새로 세운다면서 시골마을 흙일꾼을 내몬다 할 때에, 지역 지식인과 언론인과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왜, 바로 이 한 마디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생각해서 ‘당신은 죽으시’오, 하는 한 마디가 아니겠습니까. 나라살림을 북돋우고자 하니, ‘당신은 고향을 버리시’오, 하는 한 마디가 아니겠습니까. 나라사랑을 하자니, ‘당신은 당신 어버이들이 먼 옛날부터 이어오던 흙사랑을 내팽개치시’오, 하는 한 마디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둘째 권을 읽을 차례입니다. (4345.4.1.해.ㅎㄲㅅㄱ)


― 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길찾기 펴냄,2012.3.3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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