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 있어 만난 사람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0] 사진공모, 《화보 이산가족찾기》(민족통일중앙협의회,1983)
1983년,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이무렵 텔레비전으로 ‘이산가족 찾기’ 이야기를 곧잘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헤어지거나 잃은 식구가 없는 줄 아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이야기를 자주 보고 자주 눈물지었습니다. 모두들 전쟁이라는 끔찍한 생채기 때문에 헤어지고 잃으며 아프던 나날을 보냈고, 누군가는 반가이 새 사랑을 이으며 누군가는 쓸쓸히 빈터를 떠납니다. 퍽 어린 내 눈은 눈물을 흘리며 생각합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내 살붙이를 잃거나 서로 떨어지고 마는 일이 아주 슬플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지울 수 없는 응어리가 되는구나 하고.
한 해 두 해 살같이 흐릅니다.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금세 지납니다. 사람들은 반가운 이끼리 서로 만납니다. 사람들은 낯선 이하고도 마음을 열며 사귑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 터에서는 어느 무엇보다 서로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일이 가장 큰 셈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돈을 더 많이 번다든지, 가방끈을 더 길게 늘인다든지, 책을 더 많이 읽는다든지, 땅을 더 늘린다든지, 이름을 더 높인다든지 하는 일이란, 언뜻 보기에 꽤 기쁘다 여길는지 모르나, 막상 돈을 더 벌거나 가방끈을 더 늘리거나 책을 더 읽는대서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내 삶을 사랑하고 내 곁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온통 부질없는 셈 아닌가 싶어요.


지난날 우리 겨레는 땅덩이를 둘로 쪼개어 서로 치고받으며 싸웠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군대로 끌려가서 죽고, 군대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도 죽습니다. 누가 누구를 도왔으니 죽고, 누구는 또 누구를 도왔기에 죽습니다. 어느 한쪽을 믿거나 따른다는 뜻이 아니라, 전쟁무기가 온 나라 골골샅샅 짓밟으며 까부수기 때문에 이리 몸을 옮기고 저리 몸을 옮깁니다. 몸과 마음을 붙이던 고향마을에서 떠나고야 맙니다.
학교에서 먼 옛날 세 나라 이야기를 배울 때에 가까운 옛날인 1950년 전쟁을 떠올렸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 여기에 가야까지 하면 네 나라인데, 고구려이든 신라이든 백제이든 가야이든 모두 ‘한겨레’라 했어요. 고구려만 한겨레이거나 가야만 한겨레가 아니에요. 백제는 한겨레가 아니라 말하지 않고, 신라는 두겨레나 세겨레라 일컫지 않아요. 그런데, 이들 같은 겨레는 다른 나라로 쪼개져 서로 땅을 넓히거나 빼앗으려고 끝없이 싸움을 벌였어요.
먼 옛날, 이 땅덩이 이 겨레 옛사람은 스스로 좋아서 싸움을 벌였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 땅덩이를 넓히자 외치는 바람에 싸움판에 휩쓸리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먼 옛날이나 가까운 옛날이나 여느 사람들은 싸움터에서 죽고 고향마을에서 그만 애꿎게 죽지 않았나 싶어요.


오늘 우리 나라는 경기도·경상도·강원도·전라도·충청도·제주도처럼 나뉩니다. 꼭 나누어야 하지 않으나, 삶터와 삶자락에 따라 나누어요. 먼 옛날, 우리 나라라 한다면 서로 싸우지 말고 한쪽은 고구려, 다른 한쪽은 백제, 또 한쪽은 가야와 신라, 이렇게 사이좋게 나누어 서로 즐거이 살림을 꾸리며 어려울 때에는 돕고 기쁠 때에는 함께 잔치를 벌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한덩어리가 되어 한 임금님이 다스려야 하지 않으니까요.
비매품으로 나온 《화보 이산가족찾기》(민족통일중앙협의회,1983)를 헌책방에서 문득 마주합니다. 이러한 책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넘깁니다. 한창 ‘이산가족 찾기’가 온 나라를 들끓던 무렵, ‘민족통일중앙협의회’라 하는 곳에서 ‘이산가족 사진공모’를 했다 하고, 이 사진공모에서 입선한 작품을 그러모아 화보 하나 마련했다 합니다.
벌써 꽤 지난 일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돌아볼 만한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헤어진 식구를 찾는 사람들 낯빛은 하나같이 슬픕니다. 헤어진 식구를 서른 몇 해만에 드디어 찾은 사람들 얼굴빛은 하나같이 눈물바람입니다.



슬픔 가득한 사진을 바라봅니다. 눈물젖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사진공모란 이모저모 많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사진공모를 해야 했을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사진공모가 있었기에 이날 이곳 이 사람들 눈물과 아픔과 생채기를 먼먼 뒷날까지 찬찬히 들려줄 수 있구나 싶어요. 좋은 뜻으로든 아픈 목소리로든, 누군가 어떤 이야기 하나 빚고 나면, 이 이야기는 책이라는 자리로 그러모아 오래오래 물려주면서 새로 거듭나곤 합니다.
사진은 흔히 기쁜 자리에서 찍습니다. 누군가 어떤 잔치를 벌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혼인잔치이든 돌잔치이든 생일잔치이든 예순잔치이든, 잔치판하고 잘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자리라든지, 학교를 마치는 자리라든지, 학교에서 상을 주고받는 자리라든지, 누군가를 기리거나 누군가한테 손뼉 쳐 주는 자리하고도 잘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이와 달리 슬프거나 궂은 자리는 사진하고 잘 어울린다고 여깁니다. 누군가 죽었다든지, 누군가 다쳤다든지, 누군가 괴롭거나 힘든 일이 있다든지, 가난과 굶주림에 찌들리는 살림이라든지, 슬프거나 궂은 자리에서 어느 한 사람이 사진기를 들면 이내 눈살을 찌푸려요. ‘어디 함부로’ 사진기를 들이미느냐 손가락질합니다. 어쩌면, 헤어진 식구를 찾는다는 자리에서 벌인 ‘사진공모’도 적잖은 사람들한테서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을까요. 방송국이며 신문사이며 잡지사이며, 여기에 개인으로 사진기를 걸친 사진작가들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바짝 들이대니, ‘바라는 사람은 안 오’고 사진기만 춤을 추니 대단히 성가시거나 더욱 괴롭지 않았을까요.
바라던 사람을 만난 사람들 눈물바람 모습은 누가 사진을 찍더라도 다 괜찮아 다 괜찮아 하고 외치며 기뻐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라던 사람을 만나지 못해 며칠이고 배를 곯으며 눈이 퀭한 모습은 가까운 살붙이가 사진을 슬쩍 찍으려 해도 다 싫어 다 싫어 하고 손사래치며 못마땅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나는 《화보 이산가족찾기》를 넘기면서, 헤어진 아픈 사람들 응어리진 마음을 읽습니다. 따로 공모전이 없었으면 1983년 그무렵에 ‘헤어진 아픈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책 하나로 엮으려던 움직임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디에 지진이 나 마을이 갈라지고 무너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아픔과 생채기를 적잖은 이들이 사진으로 담아 금세 사진책 하나로 갈무리해요. 먼발치 사람들까지 아픔을 나누고 생채기를 달래요.

슬픈 사람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이미는 일이란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내키지 않는 사진을 넘어, 한겨레 모두한테 아픔을 보듬고 생채기를 달래며, 이 겨레가 앞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리며 살아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넋이라 한다면, 얼마든지 사진을 눈물로 찍고 슬픔으로 담으며 사진책을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공모 1등을 하려는 사진은 사진이 아닐 테지만, 사랑을 나누려는 사진은 사진이에요.
사람을 찾는 사진입니다. 사랑을 찾는 사진입니다. 삶을 찾는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빚고 꿈을 이루는 사진입니다. (4345.3.21.물.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