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 한자말 167 : 노염(老炎)


아직은 끈끈한 더위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노염(老炎)이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늙지 않았다
《호원숙-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 41쪽

 

 “우리의 인내심(忍耐心)을 시험(試驗)하는 것 같다” 같은 글월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조금 더 따사롭고 싱그러이 생각을 기울인다면 이와는 좀 다르게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끈끈한 더위를 느끼는 나라면, 이 글을 “내 참을성을 건드리는 듯하다”나 “내가 얼마나 잘 참는지 알아보려 하는 듯하다”나 “내 참을성을 자꾸 건드린다”쯤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적기보다는 “아직은 끈끈한 더위가 참기 힘들다”쯤으로 적으면 한결 단출하리라 생각해요.


  ‘노염(老炎)’은 “늦더위”를 뜻하는 한자말이라 합니다. ‘노염’이라고 한글로만 적었다면, 아마 저는 못 알아보았겠구나 싶은데, 뒤에 한자를 밝혔어도 쉬 알아보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을 뒤지고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읽다 문득 생각합니다. 설마, ‘늦더위’라는 한국말을 한자로 옮겨 ‘老炎’으로 적었나 하고.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늦더위’뿐 아니라 ‘늦여름’이나 ‘늦장가’나 ‘늦바람’처럼 이야기합니다. 으레 쓰는 앞가지 ‘늦-’이에요. ‘더위’ 또한 흔히 쉽게 쓰는 낱말이에요. ‘노염’을 풀이해 ‘늦더위’가 아니라, ‘늦더위’를 중국사람 중국글로 ‘老炎’이라 적는다 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노염(老炎)이라고 했지만
→ 늦더위라고 했지만
→ 느즈막히 찾아온 더위라고 했지만
→ 더위 막바지라고 했지만
→ 막바지에 이른 더위라고 했지만
 …

 

  사람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 늙은이로 죽습니다. 일찍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태어나 자라서 늙고 죽어요. 이러한 삶 모습을 빗대어 ‘늙은 더위’와 같다 해서 ‘늦더위’처럼 말할 수 있다 할 텐데, 이보다는 ‘이르다-늦다’라는 얼거리로 ‘이른더위-늦더위’처럼 쓴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어요. 이 글월에서는 이제 더위가 물러서고 가을이 찾아올 법한데, 늦게까지 떠나지 않으니, 사람 나이와 빗대어 무언가 이야기하려 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습니다. 글로 빚는 이야기라 한다면, 더 마음을 써서 더 아름다이 영글도록 할 수 있잖아요. “노염(老炎)이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늙지 않았다”라 글을 쓰기보다는 “늙은더위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늙지 않았다”처럼 쓰면 차라리 낫지 않으랴 싶기도 한데, 이도 저도 꾸미지 말고 “늦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는다”라고만 적으면 될 텐데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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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끈끈한 더위가 내가 얼마나 잘 참는지 살피려는 듯하다. 늦더위라고 했지만 아직 더위는 기운을 펄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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