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8 : 삶을 읽는 길
일본사람 오바나 미호 님이 그린 만화책 《아이들의 장난감》(학산문화사,2004) 둘째 권을 읽으면, 184∼185쪽에 “애초에 너희 엄마가 널 싫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부모한테서 미움이나 받는 아이가 너처럼 제대로 자랄 수 있겠냐?”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기 앞서, 내 어버이한테 아이로 살아오는 동안에도 생각했습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싫어할 수 없을 뿐더러, 내 어버이가 나를 싫어할 수 없어요. 곧, 내 모습은 내 어버이가 나를 사랑하던 모습이요, 내 아이들 모습은 내가 어버이로서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인 만큼, 나 스스로 나를 살가이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나부터 좋은 삶을 꽃피우며 아이요 어버이인 나날을 즐거이 누릴 수 있어요.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둘째 권으로 나온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면, 69쪽에 “원래 돈을 벌려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번 돈은 우리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잘 쓰면 되겠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네 식구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기 앞서, 내 꿈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늘 헤아립니다. 돈이란, 많이 벌거나 적게 벌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나와 내 식구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을 즐기고, 서로서로 예쁘게 어우러지는 놀이를 누리며, 언제나 웃고 떠드는 이야기를 꽃피우는 나날일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적게 벌자며 하는 일이란 없어요. 스스로 기쁘려고 하는 일이에요. 스스로 삶을 누리기에 알맞을 만큼 돈을 벌어요.
먼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한테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담는 말이나 책은 아주 덧없습니다. 〈허생전〉이라는 옛문학도 있고, 러시아사람 톨스토이 님이 적바림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돈벌이는 부질없습니다. 삶을 누리는 하루가 대수롭습니다. 돈더미는 덧없습니다. 삶을 나누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처세·경영·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내건 ‘돈벌이 하자는 책’이 쏟아집니다. 돈벌이 또한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하자는 책이 넘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는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는 길이나 아이를 보살피는 길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길을 몸과 마음에 담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좋은 삶길을 깨닫지 못하고는 ‘육아책·교육책·학습책’을 굳이 읽으려 합니다.
종이로 된 책은 누구나 굳이 안 읽어도 됩니다. 종이로 된 책에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없어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모두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요,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내 손으로 일구는 삶이요, 내 다리로 빛내는 슬기예요.
곧, 어떤 책을 읽는가는 아무것 아닙니다. 이 책을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읽어도 됩니다. 이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안 읽어도 됩니다. 내 삶을 읽고, 내 옆지기와 아이들 삶을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아무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오직 좋은 사랑과 빛나는 꿈을 건사하며 어깨동무하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4345.3.18.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