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7
아서 랜섬 글, 유리 슐레비츠 그림,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억눌린 그늘에서 빛줄기를 품에 안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9] 유리 슐레비츠·아서 랜섬,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시공주니어,1997)

 


  러시아라고 하는 나라는 참 오래도록 무시무시한 독재자가 흙일꾼을 억눌렀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고단하고 고달프며 고된 러시아에서 예부터 여느 흙일꾼 입과 입으로 거쳐 내려오는 옛이야기는 그지없이 아름답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에 앞선 조선, 조선에 앞선 고려, 고려에 앞선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발해, 이들에 앞선 부여와 옛조선 모두, 여느 흙일꾼은 권력자가 부를 때마다 군인으로 끌려가야 했고, 수없이 세금을 내야 했으며, 언제나 무엇이든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겨레 옛사람도 오래오래 살가우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꽤 많이 물려주곤 했어요.


.. 똑똑한 두 아들은 농부 부부가 언제나 이것저것 챙겨 주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는 제때 밥만 얻어먹을 수 있어도 다행일 지경이었어요 ..  (5쪽)

 


  어떤 기운으로 옛이야기를 빚어 아이들한테 찬찬히 물려줄 수 있었을까요. 어떤 넋으로 옛이야기 한 자락 살가이 아끼며 아이들한테 고이 이어줄 수 있었을까요.


  옛이야기를 빚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궁금합니다. 오래도록 물려주는 이야기란 어떤 삶에서 지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임금님이나 궁궐 신하가 옛이야기를 지었을까요. 사대부나 싸울아비가 옛이야기를 지었을까요. 양반이라든지, 넓디넓은 땅을 차지한 부자가 옛이야기를 지었을까요.


  오래된 책에 한자로 적바림된 문학이 적잖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들 오래된 책에 한자로 적바림된 문학을 가르칩니다. 이른바 옛문학이라 합니다. 여기에 새로운 때에 새롭게 쓴 문학을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이야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옛이야기도 새이야기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옛이야기와 살아온 옛사람 옛삶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없습니다. 이와 함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 이야기와 오늘 이웃과 오늘 삶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적바림한 지식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적바림한 지식으로 시험을 치러 성적을 매기고 계급(등수)을 나눕니다.

 

 


..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말했어요. “나도 가고 싶어요. 나도 맛있는 고기랑 보드라운 흰 롤빵을 먹고, 옥수수 브랜디를 마시고, 차르의 딸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어머니가 말했어요. “멍청한 녀석 같으니, 네가 가서 도대체 뭘 하겠다고 그래? 보나 마나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곧장 곰 품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아니면 네가 네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뭔지 몰라 저게 뭘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늑대들이 널 날름 잡아먹을 텐데.” ..  (9쪽)


  15세기 건축이니 10세기 문화이니 하고 학교에서 가르칩니다만, 막상 학교를 다니며 건축이나 문화를 배우는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지을 줄 아는 아이도 없습니다. 문학으로 사랑을 배운다든지 영어와 과학과 수학을 배운다 하더라도, 막상 어른이 되어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기까지, 내 좋은 짝꿍부터 내 살붙이와 내 아이들을 옳게 사랑하고 착하게 아끼는 길을 익히지 않습니다. 아이를 바르게 가르치고 아이와 즐거이 누리는 삶을 배우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사람끼리 나눌 웃음과 눈물을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누군가 곁에서 죽었을 때에 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 또한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흔히, 학교를 다녀야 ‘사회살이’를 배울 수 있다고 하나, 정작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사회살이’ 가운데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울 일이 없습니다. 손빨래를 배우나요 기계빨래를 배우나요. 밥하기를 배우나요 설거지를 배우나요. 아이낳기를 배우나요 아이키우기를 배우나요. 집짓기를 배우나요 집손질을 배우나요.


  때로는 ‘목공’을 하기도 한다지만, 낫질 호미질 삽질 가래질 쟁기질을 할 줄 모른다면, 공예이든 공작이든 ‘손놀림’을 얼마나 아름다이 돌보는 배움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사회살이’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지식조각만 머리에 가득 채우는 셈이라고 느껴요. 학교를 다닐수록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귀는 ‘사회살이’하고는 등을 진 채, 점수와 돈과 이름과 겉모습으로 ‘혼자 살아남기’에 치우치는 얕은 생각만 키우는 노릇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 “같이 드시자고 꺼내기가 부끄럽네요. 저야 괜찮지만 같이 드시자고 할 만한 음식은 아니거든요.” “난 괜찮소. 어서 꺼내시오. 하느님이 주신 음식을 좀 먹어 봅시다.” ..  (12쪽)


  똑똑하다 여기는 아이들 가운데 참말 똑똑하다고 느낄 아이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여느 어른들이 일컫는 똑똑한 아이들이란, 그저 영어 몇 마디 주워섬기거나 시험성적 조금 높다 하는 아이들일 뿐,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거나 돌볼 줄 아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람을 따스하고 넉넉히 품을 줄 아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란 빛나는 사람입니다. 맑은 눈이 빛나고 밝은 머리가 빛나며 싱그러운 가슴이 빛날 때에 비로소 똑똑한 사람입니다. 눈이 빛나지 않고서야 똑똑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빛나지 않고서야 똑똑하다는 말이 부질없습니다. 가슴이 빛나지 않은 채 지식만 쌓거나 책만 읽었다면 무엇이 똑똑하달 수 있나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면 아이를 함부로 학교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느껴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면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면서 ‘학교에도 보낼’ 수 있지만,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학교에만 넣는’다면 아이들이 망가집니다. 아이들이 망가질 때에는 어른도 나란히 망가지는데, 어른부터 일찌감치 망가진 삶이니까 아이들까지 망가뜨리려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학교에만 넣’고 말아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할 몫이란, 사랑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곧, 예부터 두고두고 물려준 이야기 한 자락이란 사랑 한 자락입니다. 어버이로서 당신 삶을 사랑하던 꿈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갈무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사랑을 받아먹은 아이들은 차츰 어른으로 자라고, 이윽고 어른이 되어 새로 아이들을 낳을 무렵에는, 지난날 제 어버이한테서 받아먹은 사랑이 깃든 이야기를 다시금 물려줘요. 새롭게 새 사랑을 새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 시종이 살펴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바보의 친구들이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종은 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죄다 하찮은 농부들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지요. 시종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궁전으로 돌아가서, 배에는 신사 분은 한 분도 없고 그저 지저분한 농부들만 잔뜩 있떠라고 전했습니다. 차르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농부와 결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무척 언짢아졌습니다. 이제 차르는 어떻게 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지 곰곰 궁리하기 시작했지요 ..  (31쪽)


  아서 랜섬 님이 그러모은 러시아 옛이야기에 유리 슐레비츠 님이 그림으로 새옷을 입힌 그림책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시공주니어,1997)를 읽습니다. 온누리에 둘도 없는 바보가 하늘 나는 배를 타고 독재자 차르한테 찾아가서 어여쁜 딸을 색시로 맞이한다는 줄거리를 담는 옛이야기입니다. 참 러시아사람은 대단합니다. 놀라운 꿈을 신나는 줄거리로 엮어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갈무리했어요. 서슬 퍼런 독재자 차르가 무시무시하게 칼을 휘두르고 윽박지르던 나날이었을 텐데, 입과 입으로, 눈과 눈으로, 가슴과 가슴으로, 이렇게 이야기 한 자락 고이 보듬었어요.


  옛이야기 한 자락 건사한 러시아 옛사람은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갈 때에 무얼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잘 알았겠지요. 새로 태어나 새로 살아갈 아이들은 좋은 사랑을 누려야 하는 줄 깨달았겠지요. 총도 칼도 돈도 힘도 이름도 한낱 부질없을 뿐, 오늘 이곳에서 예쁜 사랑을 즐거이 누리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더없이 빛나는 이야기인 줄 느꼈겠지요.


  억누르는 독재자가 있건 말건,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 셈입니다. 미친 칼부림과 전쟁놀이 일삼는 독재자가 있건 말건, 귀여운 아이한테 좋은 이야기밥을 사랑으로 먹인 셈입니다. 좋은 삶을 누리려 애쓰며 좋은 젖을 아기한테 물립니다. 좋은 흙이 되도록 땀흘리며 좋은 밥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 군인들이 궁전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고, 궁전 뜰에는 챙이 말려 올라간 모자를 쓴 장교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보는 하늘을 나는 배 위에 앉아서 길동무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이제는 차르가 두려워서 벌벌 떨 차례였습니다 ..  (45쪽)


  책이 지식만 담는다면 책에는 길이 없습니다. 책이 처세와 돈벌이만 다룬다면 책에는 삶이 없습니다. 책이 가벼운 재미와 놀이에 기울어진다면 책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책이 사람들 사랑하는 삶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이야기 하나 담기지 않습니다.


  사람은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과 좋은 삶길을 걷고 아이들과 좋은 사랑길을 걷습니다. 사람이기에 사람다운 꿈을 건사하는 사람길을 추스릅니다.


  옛이야기는 책이나 교과서 귀퉁이에 적바림되지 않아도 사람들 가슴에 아로새겨져 사랑스러운 손길로 이어집니다. 신문이며 방송이며 책이며 영화이며 온갖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적바림되거나 널리 알려진다 하더라도 막상 오래도록 이어가는 일이란 없습니다. 사랑이 아닐 때에는 이어가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을 때에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얼마 못 가 스러집니다.


  왜냐하면, 독재자 아무개 씨라 하더라도 밥을 먹어야 살아요. 권력자 아무개 씨라 하더라도 바람을 마셔야 살아요. 군인 아무개 씨라 하더라도 물을 마셔야 살아요. 햇볕을 쬐지 않고서, 어머니 몸에서 열 달을 살지 않고서, 어머니 사랑을 받아먹지 않고서 태어나거나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임금님이란 아무도 없습니다. ‘온누리에 둘도 없는 바보’란 바로 ‘여느 어머니’이자 ‘여느 아버지’입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 (유리 슐레비츠 그림,아서 랜섬 글,시공주니어 펴냄,1997.6.18./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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