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665) 세일(sale)

 

며칠 전 슈퍼마켓에 가니까 먹음직한 딸기를 벌써 세일하고 있었다. 옥사나는 깜짝 놀랐다. 이 한겨울에 우크라이나 생각이 난다며 한 박스를 샀고
《한대수-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 132쪽

 

  “며칠 전(前)”은 “며칠 앞서”로 다듬고, “-하고 있었다”는 “-한다”로 다듬습니다. “한 박스(box)”는 “한 상자”로 손질합니다. 그나저나, 가게에서 일하며 파는 사람이나 가게를 찾아가서 사는 사람이나 모두 ‘박스’라 말하는 오늘날입니다. 이제 어느 가게에서는 ‘상자’라 말하면 못 알아듣는 일꾼이 있기도 합니다. 내가 입으로 ‘상자’를 말해도, 듣는 쪽에서는 “네, 박스요?” 하고 되묻기 일쑤예요.


  국어사전에서 영어 ‘세일(sale)’을 찾아봅니다. 워낙 널리 쓰는 낱말이 되다 보니, 이제 ‘세일’을 영어로 느끼는 도시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사람마저 이 영어를 흔히 쓸 테고요. 굳이 영어사전을 안 뒤지고 국어사전만 뒤져도 나오는 ‘세일’로, 낱말뜻은 “(1) 고객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파는 일. (2) 할인하여 판매함”이라고 해요.

 

 딸기를 벌써 세일하고 있었다
→ 딸기를 벌써 싸게 판다
→ 딸기를 벌써 값싸게 판다
→ 딸기를 벌써 싼값에 내놓는다
 …

 

  국어사전 뜻풀이를 더 헤아려 ‘할인(割引)’도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 뜻풀이는 “일정한 값에서 얼마를 뺌”이라고 해요. 이리하여, 한국말로 하면 ‘에누리’이고, 한자말로 하면 ‘割引’이요, 영어로 하면 ‘sale’입니다.

 

 그는 자동차 세일에 나섰다
→ 그는 자동차를 판다
→ 그는 자동차 파는 일에 나섰다
 봄맞이 세일
→ 봄맞이 에누리
 세일을 단행하다
→ 값을 내리다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주변의 교통이 혼잡하다
→ 백화점 에누리 철에는 둘레 길이 어지럽다
→ 백화점에서 에누리하는 철에는 둘레 길이 어수선하다

 

  ‘버스’나 ‘택시’를 가리켜 영어라 생각하는 한국사람은 아마 없지 싶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어려운 영어로 느끼는 한국사람 또한 아무래도 없으리라 봅니다. ‘세일’ 같은 낱말은 이러한 낱말과 한동아리로 여길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세일’ 같은 낱말을 굳이 써야 하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버스’나 ‘라디오’를 갈음할 만한 토박이말은 없어요. 이와 달리 예부터 ‘에누리’나 ‘깎다’ 같은 낱말로 우리 넋을 나타내고 서로서로 장사를 했어요.


  즐거이 쓸 만하다면 즐거이 쓰면 됩니다. 넉넉히 쓰고 싶다면 넉넉히 쓰면 됩니다. 우리가 곁에 두며 예쁘게 쓸 만한 낱말인가 아닌가를 곰곰이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서로서로 언제나 예쁘게 주고받으면서 말꽃을 피우고 말열매를 맺을 만하다고 느끼면 알차게 일구고 곱게 보듬을 말이요 글입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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