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모든 책은 새책

 


 첫째 아이와 살아온 다섯 해 동안 나와 옆지기는 둘이 어린 나날 보았던 만화영화를 참 많이 되풀이해서 보았다. 서로한테는 어린 나날 보던 만화영화라 할 테지만, 첫째 아이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만화영화였으니. 젤소미나와 참파노가 나오는 〈라 스트라다〉 영화를 볼 때에도 아이한테는 새로운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가 1950년대에 찍었던가, 무척 오래된 영화라 나와 옆지기가 태어나기 앞서 나온 영화이니 ‘옛 영화’라 여길 만하지만, 우리 아이한테는 아주 새로운 영화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바타〉이든 〈천하장사 마돈나〉이든 아이한테는 늘 새로운 영화이다. 그리고,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인 나한테도 새로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새 영화이다.

 

 오늘 내가 읽는 글책을 우리 아이가 스스로 읽자면 대여섯 해는 더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즐겨읽는 어린이책이라면 우리 아이가 서너 해 뒤에도 읽을는지 모른다만, 어른쯤 되어서야 읽을 만한 글씨 깨알같고 부피 두툼한 책이라면 열 해쯤 뒤에야 읽을 수 있다 할 테지. 열 해쯤 뒤, 나로서는 마흔을 훌쩍 넘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돌아볼 ‘내가 젊거나 어린 나날 읽던 책’은 나한테는 ‘참으로 익숙하고 길들었으며 잘 알 만하다’ 여길 수 있는 책이리라. 그런데, 이 책들은 우리 아이한테 언제나 새로운 책이며 새삼스러운 책이고 놀라운 책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처음 책을 가까이하면서 헌책방을 사귀던 때, 나한테 모든 책은 새책이었다. 나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이름을 붙인 책을 2004년에 내놓기도 했지만, 이 책을 내놓던 내 마음은 “모든 책은 똑같은 책”인데 사람들이 이 마음을 왜 이렇게 못 읽는가 싶어 참으로 슬픈 나머지, 이렇게 책이름을 붙였다. 내 마음으로는 “모든 책은 책이다”라고만 하고 싶었다.

 

 헌책방에서 만나던 책이든, 도서관에서 만나던 책이든, 새책방에서 만나는 책이든, 나한테 모든 책은 늘 새책이었고, 그저 책이었다. 또한, 다 읽고 덮으면 모든 책은 고스란히 헌책이 되었다. 헌책이 되었다는 책을 다시 들추어 읽으면 새삼스레 새책이 되었고, 새책이 된 책을 두어 차례 되읽고 또 덮으면 다시 헌책이 되지만, 이 책을 다시 들추고 보면 거듭거듭 새책이 되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새책이다. 늘 새 이야기를 베풀기 때문이다. 온누리 모든 책은 헌책이다. 언제나 내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밭이기 때문이다. 온누리 모든 책은 책이다. 내 사랑과 내 꿈을 고이 담는 슬기롭고 따사로운 길동무이기 때문이다.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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