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손

 


  바야흐로 따뜻한 날을 맞이하니, 여러모로 할 일이 많다. 그러고 보면, 어느 시골집이나 겨울철에는 곰이나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듯 웅크리며 느긋하게 쉬고, 들꽃 흐드러지는 새봄부터 차츰 바빠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맞아들일 집일은 날마다 같은 크기요, 우리한테 논은 없으나 뒤꼍 땅뙈기가 있어 밭으로 삼자면 일거리가 꽤 될 테고, 이제부터 도서관 책꽂이랑 책을 알뜰히 갈무리해야 한다. 첫째 아이는 아주 쉬잖고 뛰어놀아야 할 나이요, 둘째도 무럭무럭 자란다. 마음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는다면 이 숱한 일을 치르지 못한다.

 

  봄맞이 빨래를 실컷 하느라 손가락 마디가 쩍쩍 갈리지며 트는가 하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빨래는 빨래대로 두툼한 겉옷을 많이 빨아야 하니 팔뚝이 저리기까지 하지만,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잇다는 만큼, 손가락이며 손바닥이며 손목이며 쉴 겨를이 없다. 글을 쓴다는 일이란, 어떤 삶을 꾸린다는 이야기가 될까. 밥을 마련하고 옷을 짓고 집을 돌보는 손으로 글까지 쓴다고 하는 일이란, 어떤 사랑을 펼치겠다는 이야기가 될까. 옆지기를 아끼고 아이들을 어루만지는 틈을 다시금 쪼개어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떤 꿈을 이루려는 나날이 될까.


  이제 시골마을 흙일꾼이라면 누구나 실장갑을 끼고 일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실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가락 마디마디 트고 갈라지며 쑤시지 않은 데가 없으리라. 헌책방 일꾼은 실장갑을 여럿 끼고, 실장갑 사이에 비닐장갑을 덧낀다. 하루 내내 쉴 짬이 없을 뿐더러 물을 자주 만져야 하는 일꾼들 손이란, 한결같이 숨을 들이마시는 염통처럼, 한결같이 핏망울 흐르는 핏줄처럼, 한결같이 움직이는 온몸 힘살처럼, 목숨 하나 받아 마지막 숨을 쉬고 고요히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씩씩하고 튼튼하게 일하는 손이라 하겠지.


  문득 아이 손을 잡는다. 아이 손이 참 작다. 아직 어리니 손이 작을 테지. 하루하루 손이 커질 테고, 머잖아 아버지 손보다 커질 수 있겠지.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손을 얼마나 잡아 주었을까 궁금하다. 나는 내 아이들과 옆지기 손을 얼마나 자주 오래 따사로이 잡는지 궁금하다. 서로서로 손마디와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등을 따사로이 느끼며 저녁나절 곱게 접으며 잠자리에 든다.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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