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7 : 어른이 되어 책읽기

 


  이 나라에 장애인이 470만 남짓 있다지만, 길거리를 나다니면서 ‘장애인 마주치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들이 길거리를 하루 내내 누빈다 하더라도 ‘이처럼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 스스로 동네마실을 하기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장날을 맞이해 두 아이를 데리고 네 식구 읍내마실을 합니다. 쉬가 마려울 때에 느긋하게 쉬를 할 만한 데를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갓난쟁이 안고 다리를 쉴 만한 걸상을 찾기 벅찹니다. 마땅한 쉼터나 공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여느 도시라 하더라도 걸상이나 쉼터나 공원을 찾기는 몹시 빠듯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한복판이나 부산 한복판에서 사람들 누구나 느긋하게 다리를 쉬며 아이들이 뛰놀 만하거나 어머니가 젖을 물릴 만한 곳은 얼마나 있을까요. 옆사람 담배내음이나  손전화 시끄러운 수다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한 쉼터는 얼마나 있을까요. 따사로운 햇살을 누릴 만한 눈부신 나무숲이나 풀숲은 어디에 있을까요.


  홍윤 님이 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을 읽습니다. “아침부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엄마는 활짝 핀 꽃이 눈에 띄어 집에만 있는 내게 보여준다며 사진을 잔뜩 찍어 오셨다(184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스물다섯 나이에 당신 몸이 몹시 아픈 줄 깨달은 홍윤 님은 다른 숱한 사람들처럼 쉬 바깥마실을 하지 못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머니가 일으켜세워 주고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홍윤 님 어머님은 마흔 먹은 딸아이를 마치 갓난쟁이 때처럼 알뜰히 보살핍니다.


  그래, 내가 이분 어머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새로 피는 꽃송이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집 바깥에서 겪은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이 땅에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겠지요.


  추리문학을 즐겨읽던 홍윤 님은 2010년 12월 13일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죽음길로 떠났습니다. 2011년이 저물던 12월 13일을 맞이해 《물만두의 추리책방》(바다출판사)과 《별 다섯 인생》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나는 이 두 권 가운데 《별 다섯 인생》을 먼저 장만해서 천천히 읽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픈 글을 꾸준히 적바림하는 홍윤 님 글을 읽으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픈 옆지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아픈 옆지기를 돌아보며 아끼는 사람일까요. 아이로 태어나 어른으로 살아가는 오늘, 나는 얼마나 어른다운 삶을 누리면서 내 살붙이를 아끼는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321쪽).” 하는 말처럼, 아름다운 책은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많듯, 아름다운 사람이 많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 마음밭에도 아름다운 사랑씨앗이 많이 자라겠지요.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책 한 권에서 길어올리며 살아가나요. (4345.3.9.쇠.ㅎㄲㅅㄱ)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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