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부란이 서란이가 왔어요 희망을 만드는 법 1
요란 슐츠.모니카 슐츠 지음, 황덕령 옮김 / 고래이야기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따스한 사랑은 따스한 웃음으로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1] 요란 슐츠·모니카 슐츠, 《한국에서 부란이 서란이가 왔어요!》(고래이야기,2008)

 


 봄비가 이틀째 내립니다. 사흘째 새벽인데 아직 빗줄기가 멎지 않습니다. 새벽녘 방에 불을 넣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기저귀가 보송보송 마르지 않아 틈틈이 불을 다시 넣어야 합니다.

 

 어른만 살아가는 집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빨래감이 나옵니다. 하다못해 행주를 빨든 걸레를 빨든 날마다 빨래할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이랑 살아가는 집이라면 날마다 빨래감이 꽤 많이 나옵니다. 날마다 빨래하지 않으면 꽤 버겁게 쌓입니다. 더욱이 갓난쟁이가 있으면 갓난쟁이 기저귀와 기저귀겉싸개 빨래는 날마다 서너 차례씩 해야 합니다.


.. “오, 정말 귀여운 아기들이네! 작은 꽃같이 예뻐.” 원장 수녀님이 말했어요. “이제부터 네 이름은 백합의 봉우리를 말하는 ‘부란’이, 너는 백합꽃을 말하는 ‘서란’이라고 부를게.” ..  (12쪽)

 

 


 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빨래를 마당에 내놓지 못합니다. 집안 곳곳에 빨래를 넙니다. 마루 쪽 유리에는 뽀얗게 김이 서립니다. 이제 봄을 지나 여름에 장마가 올 텐데, 장마철에는 빨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합니다. 딱히 궁금할 일이야 있겠느냐만, 또 아이들이랑 살아온 지 다섯 해째 되니, 그동안 장마철 빨래를 네 차례 겪은 터라, 그리 걱정스럽지 않지만, 새봄에는 새봄대로 새봄 빨래를 누리고, 새여름에는 새여름대로 새여름 빨래를 누리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바람 포근하고 햇살 따사로운 날, 마당 한켠에서 큰아이랑 이불 밟으며 빨래할 일을 꿈꿉니다.

 

 깊은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갭니다. 방바닥 곳곳에 덜 마른 기저귀를 깔았다가 볼에 대고 슥슥 비비며 아이 샅에 이 천이 닿을 때에 서늘하거나 축축한 느낌이 없다고 느낄 만하다 싶으면 비로소 갭니다. 손으로 만지기만 해서는 빨래가 제대로 말랐는가를 알지 못해요. 볼에 대고 비비면서 코로 냄새를 맡아야 제대로 압니다.

 

 여러 식구와 살림을 이루지 않던 지난날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나 혼자 살아가던 때에는 한 사람 옷가지이니 빨래감이 적습니다. 이때에는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 한쪽에 건 채 여러 날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러면 알아서 다 마르니까요. 해가 나면 창가에 빨래를 두고, 저녁이면 방 한쪽에 두어요. 홀살림일 때에는 참말 홀가분한 살림입니다.

 

 여러 식구 살림일 때에는 도무지 홀가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을 헤아리고, 옆지기는 나와 아이들을 헤아리며, 아이들은 서로서로 헤아리고 어버이를 헤아리겠지요.

 

 식구가 여럿인 만큼, 생일을 챙기면 이제 네 사람 생일입니다. 4월, 5월, 8월, 12월, 살짝 띄엄띄언 네 식구 생일이 떨어집니다. 여기에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두 분 생일이 있고, 큰아버지와 이모와 외삼촌 생일이 있습니다. 나 혼자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내 생일조차 안 챙기며 살았지만, 옆지기와 둘이 식구를 이루면서 내 생일이며 옆지기 생일을 챙기고, 아이들이 태어나며 아이들 생일을 더 챙깁니다.

 

 

 


.. 보육원 가족들이 모두 나와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어요. “잘 지내. 행복해야 해!” 하지만 부란이와 서란이는 자동차 타는 것에 마냥 신이 났어요. 그래서 수녀님과 친구들이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  (20쪽)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차츰차츰 늙습니다. 아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도 천천히 늙겠지요.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있으면, 늙어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생일을 챙기며 함께 기뻐하고, 누군가 흙으로 돌아가면 죽은 날을 기리며 고요히 생각에 젖습니다. 새로 태어난 날에는 한 사람이 처음 태어나 이날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이자 빛이었는가를 생각합니다. 흙으로 돌아간 날에는 한 사람이 한삶을 누리며 얼마나 고마운 목숨이요 사랑이었는가를 헤아립니다.

 

 식구를 이루는 일이란 서로를 즐거이 아끼는 길을 찾는 일이로구나 싶습니다. 옆지기와 짝꿍을 맺고, 아이들이랑 한솥밥을 먹는 일이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좋은 살림을 이루는 일이로구나 싶습니다.

 

 푸나무가 열매를 맺어 씨를 낼 때에도 이와 같겠지요. 푸나무가 꽃을 피울 때에도 이와 같겠지요. 푸나무가 처음 새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릴 때에도 이와 같을 테고요.

 

 새싹도 어여쁘고 뿌리도 튼튼합니다. 새잎도 어여쁘며 줄기도 튼튼합니다. 꽃잎도 어여쁘며 열매도 알찹니다. 씨앗도 어여쁘며 가랑잎도 곱습니다.

 

 


.. 아주 멀리 스웨덴에서는 부란이와 서란이의 양부모가 될 스벤손 부부가 한국에서 보내 준 쌍둥이 사진을 보고 있었어요. 부부는 아주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려 왔어요.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게다가 한 명도 아닌 쌍둥이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  (33쪽)


 스웨덴사람 요란 슐츠 님과 모니카 슐츠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한국에서 부란이 서란이가 왔어요!》(고래이야기,2008)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스웨덴에서 198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열아홉 해만에 나온 셈이라 할 텐데, 스웨덴사람 요란 님은 1999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해요. 한국 어린이 부란과 서란을 받아들여 깜찍하게 사랑한 스웨덴 어버이는 이녁한테 고맙고 애틋한 두 아이를 맞아들인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즐거이 담았답니다. 참말 고맙게 그림책을 빚고, 그야말로 애틋하게 그림책을 지었어요.

 

 스웨덴사람한테는 낯선 한글일 텐데, 그림책에 나오는 한글이 참 또박또박 정갈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이 푼더분합니다. 글은 앙증맞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다른 스웨덴사람도 그지없이 따사롭습니다.

 

 두 스웨덴 어버이가 아이들을 얼마나 바랐고 얼마나 좋아했으며 얼마나 기뻤는가 하는 꿈이 사르르 묻어납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내 모습을 그림책 스웨덴 어버이와 나란히 놓으면서,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반기며 사랑하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그러나, 모든 ‘입양 어린이’가 이 그림책에 나오는 부란 서란처럼 기쁜 나날을 누리지는 못해요. 똑같이 스웨덴 ‘입양 어린이’였던 수잔 브링크 이야기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든지, 스위스 ‘입양 어린이’ 삶을 다룬 《엄마가 사랑해》라든지, 벨기에 ‘입양 어린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피부색깔=꿀색》을 살피면, 저마다 눈물과 슬픔과 아픔을 고이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가녀린 아이들 모습이 나타납니다.

 

 


.. “조금만 연습하면 어렵지 않아.” 서란이가 의젓하게 말하며 김밥을 하나 집어 들었어요.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젓가락으로 먹는 연습 좀 해 놓아야겠다.” 친구 제니가 말했어요. 이 말을 듣자 부란이가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우리 한국에 갈 수 있어요?” ..  (52∼53쪽)


 스웨덴 어버이는 고향나라를 둘 둔 셈입니다. 부란 서란 또한 고향나라가 둘인 셈입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어떠할까? 우리 네 식구는 어떻다 할 만할까? 그래, 우리 네 식구는 이곳 시골마을 작은 보금자리가 첫째 고향이요, 우리가 앞으로 훨훨 날아 마음껏 누릴 하늘나라가 둘째 고향이 될 테지요. 땅을 딛고 사는 동안에는 이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모두들 새롭게 다시 만날 누리에서는 그곳대로 서로서로 예쁘게 어울릴 삶동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삐삐 랑스트룸프(Pippi Langstrump)처럼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하늘을 날아가며 사는 누리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따스한 사랑은 따스한 웃음으로 찾아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아간대서 더 즐겁거나 더 아름다운 삶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스웨덴이나 스위스나 벨기에나 미국으로 건너가서 새 어버이를 만나기에 더 즐겁거나 더 슬픈 삶이 되지는 않아요.

 

 어버이 스스로 따스한 사랑을 누리는 삶일 때에 아이들 또한 따스한 사랑을 물려받으며 빛나는 삶이 됩니다. 어버이부터 좋은 사랑을 기쁘게 누리는 삶이어야 아이들 또한 언제나 좋은 사랑을 기쁘게 이어받으며 아름다운 삶이 돼요. (4345.3.6.불.ㅎㄲㅅㄱ)


― 한국에서 부란이 서란이가 왔어요! (요란 슐츠·모니카 슐츠 글·그림,황덕령 옮김,고래이야기 펴냄,2008.5.2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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