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 행복한 고양이를 찾아가는 일본여행
고경원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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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살짝 나오는 손발가락은 다섯 살 어린이 사름벼리~)


 좋아하는 꿈을 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9] 고경원,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아트북스,2010)

 


 인천에서 살던 지난날, 4층 옥탑집 둘레로 골목고양이가 드나들었습니다. 골목고양이가 어떻게 4층 옥탑집까지 드나들랴 싶어도, 이 녀석들은 지붕을 타고 3층이건 4층이건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길눈이 트면 못 가는 데란 없어요. 이웃 골목을 마실하면서 다른 골목고양이를 숱하게 만났습니다. 어느 분은 골목고양이가 지겹다 말하고, 어느 분은 골목고양이 밥을 다달이 몇 십만 원어치씩 사다가 곳곳에 놓고는 굶을까 걱정합니다. 싫다 하는 분이 제법 있으나, 고양이밥 챙겨 주는 분이 무척 많았어요. 우리 식구도 가끔 고양이밥을 아래층(3층) 지붕 한쪽에 놓곤 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으로 옮겨 살던 지난날, 이 멧골집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 적 있습니다. 아주 기운이 빠진 들고양이는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아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멍한 눈이 아닌가 싶었는데, 옆지기는 이 들고양이를 바라보다가는 어디 아픈 데 있지 않나 하고 얘기했습니다. 이틀쯤 들고양이를 보았고, 며칠 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모질게 쏟아지는데, 길가 도랑 수풀 우거진 한쪽 이슥한 데에서 그 들고양이를 만납니다. 들고양이는 숨을 거두고는 도랑 한쪽 이슥한 데에 조용히 누웠어요. 퍼붓는 비에 들고양이 주검은 어디론가 떠내려 갔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아가는 오늘날,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살림집 마루 밑에서 제 또아리를 틉니다. 어느 날에는 뒷간에서 자고, 어느 날에는 헛간에서 자더니, 마루 밑으로 난 구멍으로 들락거리며 밤잠을 잡니다. 추운 겨울날 마루 밑은 고양이한테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겠지요. 쥐를 얼마나 잘 잡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들고양이라 할 테니 들쥐를 먹이로 삼지 않겠느냐 싶은데, 들고양이라 할 마을고양이가 돌아다녀도 들쥐 또한 곳곳에서 찍찍거리며 잰걸음으로 내빼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지난가을 마을 어르신들 쌀섬을 나를 때 일을 거들며 살펴보니, 쥐가 쏜 쌀섬이 꽤 있기도 했어요.

 

 

 고경원 님이 내놓은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아트북스,2010)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고양이를 곳곳에서 만나는데, 시골고양이는 도시고양이와 견주어 사뭇 다릅니다. 고양이라면 다 같은 고양이로 여길 사람이 있을 테지만, 시골고양이는 언제나 흙을 밟으며 살아요. 시골사람이라 하더라도 논일과 밭일을 할 때를 빼고는 흙 밟을 땅이 없지만, 시골고양이는 언제라도 논밭을 가로지릅니다. 햇볕이 따스한 낮에는 논이나 밭 한가운데에서 낮잠을 자거나 해바라기를 하곤 합니다. 흙내음이랑 풀내음을 맡으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랑, 양철지붕이나 시멘트지붕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는 같을 수 없어요. 흙을 밟는 사람이랑 아스팔트를 밟는 사람 또한 같을 수 없어요.

 

 그래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대목이 있어요.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늘 마음에 두었던 꿈이 있다(5쪽).”는 말마따나, 도시에서 살아가건 시골에서 살아가건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어요. 아름답게 꾸는 꿈으로 아름답게 일구는 삶을 즐길 수 있어요. 아름답게 살아갈 꿈을 펼치면서 아름답게 즐길 사진을 나눌 수 있어요.

 


 “버려진 고양이도 사랑받으면 꽃처럼 고운 고양이가 된다. 집고양이나 길고양이나, 건강한 고양이나 다친 고양이나, 모두 소중한 생명이라고, 그림 속의 신이치가 가만히 말을 건네는 것 같다(29쪽).”는 이야기처럼, 도시고양이가 되든 시골고양이가 되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들고양이도 사랑스럽고 집고양이도 사랑스럽습니다. 고양이도 사랑스럽고 사람도 사랑스럽습니다. 곧, 이 사랑스러움이 사진을 찍는 바탕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이 글을 쓰는 바탕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이 그림을 그리는 바탕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살아갑니다. 사랑으로 일을 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놀이를 즐깁니다. 삶은 사랑으로 북돋우고, 사랑은 삶으로 살찌웁니다. 사랑으로 북돋우는 삶이기에 사진에는 사랑을 고이 담습니다. 사랑은 삶으로 살찌우기에 사진에는 삶을 누린 이야기를 살포시 싣습니다.

 

 고경원 님 사진책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으로 ‘고양이를 만나러 나들이’를 떠난 이야기를 담습니다. 아하,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일본으로 나들이를 가서 일본고양이를 만났구나, 그러면 한국에서도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며 한국고양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적을 수 있겠지. 일본사람 이와고 미츠아키 님은 ‘일본땅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일본 골골샅샅에서 저마다 다른 꿈과 삶을 먹는 고양이’를 사진으로 보여주었으니,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한국땅 골골샅샅 고양이 삶과 사람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살가이 담는 손길을 머잖아 만날 수 있겠지.

 

 

 “이 오래된 카페에서 할아버지도 료스케도 함께 나이를 먹어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45쪽).”는 마음밭으로 담는 사진은 따스합니다. 따스하게 바라보며 따스하게 껴안으니, 사진이 따스할밖에 없습니다. 남한테 따스한 느낌을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삶이기에 따스함이 묻어나는 사진이에요.

 

 “대도시 도쿄의 모습이 날로 변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야나카에서도 길고양이의 쉼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오래된 동네와 길고양이의 운명은 그렇게 닮았다. 길고양이가 숨어들 빈틈이 사라진 동네는, 사람에게도 어지간해선 틈을 내주지 않는다(74쪽).”는 생각으로 담는 사진은 슬픕니다. 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에서 슬플밖에 없는 고양이를 바라보기에, 이러한 느낌을 받아들이며 찍는 사진은 슬픕니다. 애써 슬프게 찍으려 하니까 슬픈 사진이 되지 않아요. 슬플밖에 없다고 느끼는 동안 찍는 사진에는 슬픔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처음부터 즐겁게 느끼며 누리면 좋았을 텐데, 처음 사진을 찍던 때에는 나 스스로 살아가는 어여쁜 빛을 제대로 붙잡지는 못했어요. 이를테면, “처음 길고양이를 찍을 무렵, 내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한 건 뒷모습이었다 … 그땐 뒷모습 사진이 ‘실패한 사진’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길고양이 사진이 쌓여 갈수록 뒷모습 사진에 매료된다. 뒷모습을 찍는다는 건, 결국 고양이가 눈길 주는 곳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니까(294쪽).” 하고 밝히거든요. 나중에는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뒷모습을 찍건 앞모습을 찍건 고양이를 찍을 뿐이잖아요. 뒷모습이건 옆모습이건 앞모습이건,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찍잖아요. 뒷모습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니 좋고, 앞모습은 서로 마주보니 좋으며, 옆모습은 서로 나란히 앉으니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찍으니, 흔들리건 초점이 어긋나건 다 좋습니다. 빛이 좀 안 맞든 빛느낌이 영 어설프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넋으로 만난 이야기를 살릴 수 있으면 흐뭇해요. 어디, 자랑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기에, 내 온 웃음꽃과 눈물꽃을 고스란히 보여주면 기뻐요.

 

 

 덜 예쁜 모습이어도 좋습니다. 좀 어두운 모습이어도 반갑습니다. 이냥저냥 심심해 보이거나 수수해 보이는 모습이어도 고맙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담고,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길로 마주하며, 스스로 아끼는 꿈길로 보듬으면 가장 빛나며 해맑은 사진 하나 태어납니다.

 

 마땅한 얘기인데, 고양이 사진이라서 더 돋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 사진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랑이 없다면 하나도 반가울 수 없어요. 고양이를 담지 않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랑이 있다면 ‘고양이를 찾으러 떠나는 길’에 담은 어떠한 사진이든 더없이 애틋합니다. 이리하여, 뒷모습을 찍은 사진일 때에도 ‘고양이가 바라보는 무언가’를 나도 똑같이 바라보지 못하기도 해요. 고양이와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도 고양이 속마음을 못 읽고 예쁘장해 보이는 낯빛만 찍기도 해요.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어도 막상 고양이 삶을 어깨동무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좋아할 때에 꿈을 꾸면서 한 장 두 장 신나게 찍는 사진입니다. 좋은 사진감이란 따로 없고, 내 사진감을 굳이 멀리서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을 천천히 이루며 삶을 빛내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내 둘레 수수하며 투박한 벗님이 좋은 사진벗이면서 삶벗이에요. 나는 내 꿈을 맑게 보살피면서 내 삶을 가꾸는 사진을 즐깁니다. (4345.2.25.흙.ㅎㄲㅅㄱ)


―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고경원 글·사진,아트북스 펴냄,2010.1.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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