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꽃 책읽기
아직 겨울인 2월 끝무렵은 동짓날을 생각하면 해가 퍽 길지만, 봄이나 여름을 헤아리면 해가 꽤 짧습니다. 낮 서너 시를 지나면 차츰 기울고, 너덧 시쯤 되면 뉘엿뉘엿 해질녘입니다. 해질녘 아이와 함께 고샅길을 걷다가 아침에 들여다보던 봄까치꽃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는 거의 다 오므렸습니다. 이제 따순 햇볕이 고개 넘어 지니, 이 꽃들도 꽃잎을 앙 다물며 새근새근 잠들고 싶은 듯합니다. 이러다가 새벽을 지나 동이 트며 차츰 따뜻한 새날이 찾아오면, 밤새 오므리던 꽃잎을 벌려 새 햇살을 넉넉히 받아먹겠지요.
새벽에 잠을 깨고 아침에 활짝 펴서 낮에 흐드러지며 저녁에 곱게 잠듭니다. 고요한 하루이고 즐거운 삶입니다. 맑은 소리이고 좋은 가락이며 기쁜 꿈입니다.
생각해 보면, 식물도감에 ‘활짝 핀 꽃망울’ 그림이나 사진만 실을 뿐, ‘잠자는 꽃망울’ 그림이나 사진을 싣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꽃을 다루는 이들이 활짝 피는 꽃망울처럼 고요히 잠드는 새근새근 꽃자락을 나란히 보여주는 일이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두 얼굴이나 두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온삶을 살피고 온넋을 헤아리며 온빛을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4345.2.25.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