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이 2 - 거리의 천사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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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느질하며 배우는 어머니 삶
 [만화책 즐겨읽기 122] 최호철, 《태일이 (2)》

 


 둘째 아이 기저귀싸개 풀린 실을 꿰맵니다. 지난달에 하나는 꿰매었고 다른 하나는 미처 다 꿰매지 못한 채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웃집에서 얻어 첫째 아이가 먼저 쓰고 둘째 아이가 물려받아 쓰는 기저귀싸개도 실이 많이 풀려 꿰매야 합니다. 이런저런 집일이 많다며 미적미적 미루며 실올 풀린 채 쓰다가 그만 꽤 많이 풀어집니다.

 

 밤나절에 꿰매고 새벽에 더 꿰맵니다. 아침에 마무리를 짓고 다른 기저귀싸개도 꿰매야 합니다. 한창 바느질을 하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내 어린 날 양말이나 옷을 얼마나 꿰매어 주었는가를 하나하나 떠올리지 못합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틈틈이 꿰매셨는데, 네 식구 양말이나 속옷이나 겉옷을 꿰매느라 얼마나 잠을 줄이셨는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옆지기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옆지기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들은, 또 이분들을 낳은 어머니들은, 먼먼 지난날 하루를 어떻게 보내었을까 궁금합니다. 하루 내내 어떤 일을 하며 삶을 누렸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이른새벽에 일어나 늦은밤까지 손가락 하나 쉴 겨를 없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등허리 한 번 두들길 틈이 없는 하루이지만, 삶을 사랑하는 노래를 고이 건사하며 살림을 일구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 “작은집에서 주는 일이나 열심히 해요. 애들 공부시키고 좀더 기반 잡을 때까지 딴생각 말아요!” “이 여편네가 재수 없게! 하청 일 백날 해 봐야 기반은커녕 골병 들고 쪽박 차기 십상이야!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 “그리고 태일아! 큰집에 들렀다가 네가 다닐 학교 좀 알아봤다. 큰집 조카가 다니는 국민학교에 얹혀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라고, 너처럼 배운 게 늦은 아이들이 다니는 데란다. 공부 계속할 거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창 일손이 모자란 판에. 이제 막 재미 붙이는 아이한테!” (17∼19쪽)


 문학을 하는 이들은 역사소설을 씁니다. 방송국 일꾼은 역사연속극을 찍습니다. 역사소설이나 역사연속극에는 으레 이름난 사내나 힘있는 사내가 한복판을 차지합니다. 이를테면, 임금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싸울아비나 예술쟁이가 나옵니다. 궁궐에서 밥하는 여자가 역사연속극에 나오기도 했지만, 여느 시골마을 여느 살림집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던 어머니들 이야기가 역사연속극에 한 차례라도 한복판에 나온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 멧골자락 여느 멧골집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키우던 어머니들 이야기를 어느 누구라도 역사소설에서 다룬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삶이 궁금하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삶이 궁금합니다. 어떠한 책에도 글에도 영화에도 기록에도 남지 않은 여느 어머니들 삶이 궁금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누구나 스스로 궁금히 여기거나 꿈꾸는 모습대로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궁금히 여기는 모습과 똑같이 살아가지는 않을 테고, 꿈꾸는 모습과 똑같이 살아내지는 못할 수 있을 터이나, 스스로 몸으로 살면서 시나브로 알아차리거나 깨닫지 않으랴 싶어요.

 

 아이들 옷가지나 기저귀싸개를 바느질하면서 어머니들 삶을 곰곰이 돌이킵니다. 옆지기가 양말을 뜰 때에 어떤 삶과 꿈일까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살포시 안을까 헤아립니다.

 


- “그깟 공부가 대수야? 어차피 중간에 끝낼 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법이야. 빨리 기술 익혀서 돈 버는 게 최고야.” “야, 놀라운데. 자네 빠른 솜씨도 솜씨지만 태일이가 자넬 쏙 빼닮은 것 같아. 허허, 수고했어.” “아니, 더 자지 않고 벌써 일어났어?” “며칠 만에 학교 갈 생각 하니 잠이 안 와요.”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는데.” “오랜만에 반장이 학교 가는데 늦지는 말아야죠. 진도도 쫓아가야 하고, 아버지 일도 마쳤으니.” “어디 가냐?” “학교에.” “일 잘한다고 또 일이 들어왔다. 딴생각 하지 말고 일 시작하자!” “여보!” “저, 오늘은 학교에 다녀오면, 안 될.”“뭐 해? 빨리 짐 내리고 정리해야지!” (64∼65쪽)


 내 바느질은 꽤 서툴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에도 서툴었고 오늘도 서툽니다. 그렇지만 내 바느질은 서툴기는 하면서 내 어머니가 하던 바느질을 시늉으로는 따라합니다. 실을 자를 때, 바늘코에 꿸 때, 바느질을 마치고 마감할 때, 내 손놀림에서 문득문득 어머니 얼굴을 떠올립니다. 아하, 그래,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때, 또는 우리 아이들보다 조금 크던 때, 내 어머니는 나를 옆에 앉히고 이렇게 바느질을 하셨지.

 

 서툰 바느질이기 때문은 아니지만, 바느질을 하노라면 으레 바늘에 찔립니다. 몇 해쯤 앞서는 바느질을 하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면 뜨끔 하면서 빨간 핏망울이 번졌어요. 엊저녁 바느질을 하며 몇 차례 손가락이 바늘에 쿡 찔리는데, 찔리고 나서 뜨끔 하지 않는데다가 아무런 핏망울이 비치지 않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 꾸덕살이 얼마나 단단히 박혔는데 이쯤 바늘 박힌다고 피가 돌겠느냐 싶다가, 내 어머니도 이러하지 않았겠느냐고, 내 옆지기 어머니도 이와 같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골무를 손가락에 끼는 까닭은 바늘에 찔리기 때문이 아니라, 가느다란 바늘을 잡고 두꺼운 천을 꿸 때에 힘을 덜 쓰고 일을 빨리 끝내려 하기 때문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재봉틀 밟는 사람들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재봉틀이 있었는데, 빌린 재봉틀인지 산 재봉틀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재봉틀을 밟는다면 밤늦도록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재봉틀까지 둘 만큼 옷을 손질하고 이불을 꿰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딸린 식구들 옷을 지어야 한다는 소리일 테니까요. 재봉틀 밟으며 잠이나 제대로 이룰까요.

 

 그러고 보면, 재봉틀 아닌 베틀은 먼먼 옛날 어머니들 등허리를 얼마나 고되게 했을까요. 베틀을 밟던 먼먼 옛날 어머니들은 하루가 얼마나 길었을까요.

 

 


- “와, 뭘로 이렇게 불을 지폈어?” “미안해, 형! 아버지가.”“아버지! 왜 교과서를 땔감으로 다 태웠어요? 네? 아버지!” “춥다! 문 닫아라.” (95쪽)


 최호철 님 만화책 《태일이》(돌베개,2007) 둘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작품으로 다 읽었기에 낱권책으로 나왔을 때에 따로 찾아보지 않았으나,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글과 그림을 함께 읽으며 ‘젊은 전태일 삶’을 헤아리고 싶다 할 때에 《전태일 평전》과 나란히 내밀려면 이 낱권책을 찬찬히 먼저 살펴야겠다고 느껴 새로 읽습니다.

 

 만화책 《태일이》는 《전태일 평전》이나 전태일 님 수기 이야기하고 사뭇 다릅니다. 사뭇 다르다 하는 소리는 줄거리가 다르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은 전태일 님 평전이나 수기만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어렵거든요. 어떠한 마을에서 어떠한 살림을 꾸리고 어느 만큼 고단하게 밥을 굶고 힘겨이 일거리 붙잡으며 지냈는가를 헤아리기 어려워요. 1960년대 허름한 달동네 집살이를, 잠 한두 시간 달게 누리지 못하며 일해도 너무 벅찬 살림을, 불 땔 나무조차 없이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견디어야 하던 나날을, 스스로 살아내지 않고서 어느 만큼 느끼거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글을 읽으며 이러한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지 못하면, 그림이나 만화를 읽는대서 이러한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참다이 그리지 못해요. 글을 읽을 때부터 이 삶자락을 내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내 몸으로 이 삶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 누가 봐도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이른봄 차가운 밤공기를 견디며 모처럼 어머니와 태일은 서로 이불을 덮어 주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 (166쪽)


 《태일이》 둘째 권은 ‘젊은’ 전태일에 앞서 ‘푸른’ 전태일입니다. 한창 푸른 잎사귀를 돋으며 꿈을 꾸려 하는 전태일을 보여줍니다. 싱그러운 몸과 마음으로 싱그러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싶은 전태일 삶이 《태일이》 둘째 권에 찬찬히 담깁니다.


- ‘그때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직도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정말 모두가 고맙다. 어떻게든 끝까지 공부해서 지금도 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5원의 동전을 받기 위해 양심까지 다 내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3쪽)


 푸른 전태일은 배우고 싶습니다. 어떤 돈이나 이름이나 힘 때문에 배울 뜻이 아닙니다. 더없이 푸른 잎사귀인 만큼 더없이 따사로운 햇살을 먹고픈 마음 그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푸른 잎들이 햇볕을 바라보며 한껏 푸른 빛을 뽐내듯, 푸른 전태일 또한 머리와 가슴과 꿈과 사랑을 북돋우는 온누리를 배우고 싶어요.

 

 배우면서 일하고 싶어요. 배우면서 살고 싶어요. 배우면서 사랑하고 싶어요.

 

 이런 지식 저런 정보가 아닌, 삶을 배우고 싶어요. 이런 학문 저런 교과서가 아닌,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좋은 동무들이랑 좋은 나날을 배우고 싶어요. 좋은 교사하고 좋은 마을살이를 배우고 싶어요. 좋은 어른들과 함께 좋은 두레와 품앗이를 배우고 싶어요.

 

 만화책 《태일이》 둘째 권을 읽는 나도 새롭게 배웁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도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픈 꿈을 키웁니다. 내 새 삶을 배우고, 내 어버이들 옛 삶을 배우며, 우리 아이들한테 앞으로 다가올 삶을 배우고 싶어요. (4345.2.25.흙.ㅎㄲㅅㄱ)


― 태일이 2 (최호철 글·그림,돌베개,2007.11.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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