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번째 글을 올리고 보니 174번째 글을 빼먹었다. -_-;;;; 바보로군...
책으로 보는 눈 174 : 자연을 버린 책읽기
케라 에이코 님이 그린 만화책 《あたしンち(私の家》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 이름을 한국말로 옮기면 “우리 집”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을 한국말로 옮긴 곳에서는 “우리 집”도 “우리 엄마”도 아닌 “아따맘마’로 옮겼어요. 케라 에이코 님은 ‘와타시노’를 줄여 ‘아타(아따)’로 적고, 이녁 어머니와 식구들이 부대끼는 삶을 만화로 빚어 “우리 집”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따맘마”라는 한글판 만화책 이름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밝힐 수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아따맘마”는 일본말 ‘아따’랑 영어 ‘맘마’를 더한 이름입니다. 일본사람이 영어쓰기를 좋아한대서 “우리 엄마”를 “아따맘마(私の母)”처럼 적을는지 모르지만, 이 만화책을 내놓은 분은 영어로 이름을 적지 않았어요. 한글판 “아따맘마”에 나오는 사람들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붙이고, 어머니 아버지 고향을 전라남도로 삼으면서, 왜 책이름은 엉뚱하게 붙여야 했을까요.
수수한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수수하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다가 자꾸자꾸 책이름이 걸립니다. 우리한테는 참말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글과 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쓴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 펴냄,2011)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일본에 있다는 ‘숲 유치원’, 곧 자연 놀이터에서 자라며 뛰도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도시 물질문명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일본은 ‘숲 유치원’ 또한 한국보다 훨씬 앞서 태어납니다. 일본에서는 ‘숲 유치원’ 말고도 ‘멧골학교’도 꽤 일찍부터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생활협동조합’도 아주 일찍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푸른정당(녹생당)’ 또한 참으로 일찍부터 만들었고, 일본 책마을은 아이와 어버이와 교사가 나란히 읽을 그림책을 꽤 예전부터 알차게 빚었습니다.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땅에서는 ‘아이 낳은 어버이’가 자연을 어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몸가짐과 눈길이 달라진다고 느낄 일이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며, 온통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 가운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북적거려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동물 캐릭터 같은 인공적인 것에 아주 익숙하다(25쪽).”는 말마따나, 오늘날 아이들은 ㅃㄹㄹ라느니 무엇이라느니 새겨진 신이나 옷이나 밥그릇이나 놀잇감을 뀁니다. 아이들은 자연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니, 아이들에 앞서 어른부터 자연하고 등을 져요. 자연하고 등을 지니 자연을 파헤치는 정책이 끊이지 않는데, 이보다 ‘사람인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말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도우며 품앗이하는 넋이 잊힙니다.
집이 배움터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 한국입니다. 집이 삶터 노릇하고 동떨어지는 요즈음 한국이에요. 여기에, 마을도 학교도 공공기관도 문화시설도 배움터나 삶터나 사랑터나 만남터나 어울림터나 꿈터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4345.1.13.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