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씨 빨래

 


 창호종이문으로 비치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창호종이를 바른 나무문살문은 여느 유리문이나 쇠문이나 샤시문하고 견주면 퍽 얇습니다. 바람이나 추위를 썩 알뜰히 막아 준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창호종이문은 꼭 알맞게 바람과 추위를 가려 주고,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날씨를 포근히 갈무리해 준다고 느낍니다.

 

 아이들 보러 찾아오신 외할아버지와 이모와 외삼촌하고 지난밤 늦게까지 어울리던 아이들은 좀처럼 잠을 자러 하지 않습니다. 불을 다 끄고 모두 누운 뒤에도 한참 지나서야 겨우 잠듭니다. 모두들 아주 늦게 잠듭니다. 둘째는 밤오줌을 기저귀에 누고 자다가 칭얼거리며 몇 차례 웁니다. 첫째는 한 번 잠들고 나서는 그예 곯아떨어집니다. 등허리가 뻑적지근합니다. 자리에 한동안 엎드린 채 등허리를 폅니다. 슬 일어납니다. 축축하고 따땃한 오줌기저귀 한 장을 들고 씻는방으로 갑니다. 지난밤 나온 오줌기저귀 일곱 장을 빨래합니다. 문득, 빨래거리가 좀 적네, 하고 생각합니다. 아차, 엊저녁에 두 아이를 안 씻겼기에 아이들 옷가지가 없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들 모두 노느라 바쁜 나머지 씻자고 해도 안 씻었을 테고, 나도 나대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느라 아이들 씻긴다는 생각을 잊었습니다.

 

 기저귀 일곱 장만 빨래하자니 너무 미안합니다. 홀가분한 아침빨래가 아닙니다. 이래서야 아버지 구실을 한다고 어찌 말하느냐 싶습니다. 나는 이 한 가지만 놓치며 살아가지 않겠지요. 내 몸과 내 마음에 기울어지며 아이들 몸과 마음을 잊거나 젖히면, 아이들이 사랑을 참답고 착하게 물려받아 살아가는 길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나누지 못하겠지요.

 

 빨래를 마친 기저귀 일곱 장을 들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여섯 장은 후박나무 빨래줄에 빨래집게 셋씩 집어 넙니다. 한 장은 빨래대에 넙니다. 아침햇살이 포근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날씨 참 좋구나. 반가운 손님에 반가운 날씨로구나. 따뜻한 손님에 따뜻한 날씨로구나. 기저귀야, 좋은 날 좋은 바람을 쐬며 좋은 기운 듬뿍 받아먹으렴. (4345.2.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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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13 13:56   좋아요 0 | URL
저라면 오늘은 기저귀 일곱 장 밖에 없네 하고 얼씨구나 하겠는데,
그걸 또, 아이를 생각하시며 미안해하시네요... 아유 참.

숲노래 2012-02-15 07:52   좋아요 0 | URL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끝없이 나와야 맞으니까요 ^^;;;;

기억의집 2012-02-14 22:53   좋아요 0 | URL
전 후박나무 향기를 좋아해요. 후박나무가 이름이 후덕해서 그렇지 5월에 뿜어나오는 후박나무의 향기는 늦봄과 초여름의 상징이죠. 5,6월에 후박 나무 향기와 함께 하얀 기저귀 빨래 너른 모습이 연상됩니다.

숲노래 2012-02-15 07:51   좋아요 0 | URL
아직 꽃이 피지 않고 봉오리만 맺혔지만,
지난 늦가을부터 맺힌 봉오리를 올려다보면서
날마다 즐거이 빨래를 널어요.
새봄을 기쁘게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