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가는 길 - 김현철 포토에세이
김현철 지음 / 미지애드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까
 [찾아 읽는 사진책 55] 김현철, 《거제 가는 길》(미지애드컴,2011)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부르는 노래마다 이 노래를 골라 목소리를 싣는 사람들 마음을 느낍니다. 기쁨에 넘치는지, 덜덜 떠는지, 신나거나 재미나는지, 슬프거나 고단한지 고스란히 느낍니다.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아픈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어떠하고 생각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비평가나 전문가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알거나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쓰는 글을 읽을 때에도 이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이나 사람들이 찍는 사진을 바라볼 때에도 이처럼 느낄 수 있어요. 노래이든 춤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빚는 사람 스스로 어떠한 마음이며 몸이고 생각이자 삶인지 낱낱이 담습니다.

 

 숨길 수 없어요. 감추지 못해요. 하나하나 드러내요. 시나브로 풀어내요.

 

 

 

 기쁜 삶이라 기쁨이 가득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습니다. 슬픈 나날이라 슬픔이 얼룩진 이야기를 사진으로 싣습니다.

 

 외롭다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외로움 물씬 묻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씩씩하게 한길 헤치는 사람은 씩씩함이 물씬 풍기는 사진을 찍습니다.

 

 정치꾼 ‘김영삼 아들’이라는 이름표가 먼저 뒤따르는 김현철 님 사진책 《거제 가는 길》(미지애드컴,201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김현철 님은 머리말에 “더 늦기 전에 지나쳐 버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야겠다며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사진찍기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그저 그런 밋밋한 일상들을 담고 나중에 다시 열어 보고, 아내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로 작은 책을 만들게 되었다. 행복하게 찍고 즐겁게 만든 책이니만큼 독자들도 편하고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15쪽).” 하고 밝힙니다. 참말 김현철 님은 외롭고 슬픈 사람입니다. 그냥 김현철이 아니라 ‘김영삼 아들’ 김현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야 하니까요.

 

 

 

 생각해 보셔요. 임응식은 임응식이지 ‘아무개 아들’ 임응식이 아닙니다. 주명덕은 주명덕일 뿐 ‘아무개 아들’ 주명덕이라 하지 않아요. 강운구라면 강운구입니다. ‘아무개 아들’ 강운구라서 눈여겨볼 만하지 않겠지요.

 

 사진을 바라볼 때에는 이 사진을 빚은 사람 ‘이름값이 드높기’ 때문에 사진 작품까지 ‘다른 사람 작품보다 더 드높게 여기며 바라보’아야 하지 않아요. 모두 똑같은 사진으로 한 자리에 놓고 바라봅니다.

 

 대학교를 다닌 사람 작품이 고등학교나 중학교까지 마친 사람 작품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영국으로 떠나 사진을 배운 사람이 한국땅에서 사진강좌 한 번 못 듣고 홀로 사진길 걸은 사람 작품보다 훌륭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름표, 졸업장, 나이, 성별, 재산, 얼굴, 몸매 따위를 따지며 사진을 읽지 않아요. 우리는 사진쟁이가 어떤 장비를 썼느냐를 따지며 사진을 읽지 않아요. 우리는 사진꾼이 무슨 사진감을 몇 해나 몇 달쯤 붙잡으며 사진길을 걸었느냐를 살피며 사진을 읽지 않아요.

 

 

 

 매그넘 회원 작가이기 때문에 더 돋보일 사진은 없습니다. 신문기자이기 때문에 더 남다를 사진은 없습니다.

 

 “내가 연애를 하지 않았더라면 꽃말이며 꽃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35쪽)?” 하는 말처럼, 누구나 살아가는 결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결, 사랑하는 결, 살림하는 결, 생각하는 결, 마음쓰는 결이 사진으로 묻어납니다.

 

 김현철 님은 당신 아버지라는 빛과 그림자를 짊어져야 했기 때문에, “‘구타 다음에 십타가 있다’는 농담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군대생활 하면서 고생 안 해 본 사람 없겠지만, 내 경우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의도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제대를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은 중대장으로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구타를 당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참아야 했다(159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군대라는 곳은 사내들이 끌려가고 가시내들은 끌려가지 않아요. 그나마 한국땅에서 가시내들은 조금 낫구나 싶기도 하지만, 군대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내들이 군대에서 주먹다짐과 거친 말에 길든 나머지, 이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가시내들한테 풀어놓는다면, 가시내들도 사내들과 똑같이 군대 뒤탈을 앓는 셈입니다. 모두 슬픈 사람 슬픈 삶 슬픈 사랑이 되고 맙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거제 가는 길》은 어떤 사진일까요. 작은 크기 사진책 《거제 가는 길》은 어떤 책일까요. 정치꾼이 되고픈 꿈을 키우려는 출판기념잔치 책일까요, 참으로 수수한 김현철 님 삶을 나즈막한 목소리와 매무새와 눈길로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사진일까요. 어떤 마음이 샘솟아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까요. 어떤 꿈을 북돋우며 연필을 손에 들었을까요.

 

 “외포리 양조장에서 만난 ‘김현철 씨’. 나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저도 김현철입니다.” 아는 척을 해 주니 괜히 기분이 좋다. 현철 씨! 혹시 나 때문에 손해 본 일은 없지요(41쪽)?” 하고 스스로 묻는 김현철 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정치를 꿈꾸기에 이 작은 사진책 《거제 가는 길》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대통령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나날을 스스로 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청와대에서 바라본 비서들과 경호원들과 장관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김현철 님은 국회의원이 된다면 국회의사당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기자들만 찍는 사진이 아니라 국회의원도 찍는 사진을 선보일 수 있을까요. 기자 자리에서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랑,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에 앉아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라면 얼마나 달라질까요.

 

 김현철 님은 삶이 삶인 나머지, ‘민생투어’라든지 ‘서민 만나기’를 합니다. 곧, 김현철 님은 ‘민생을 모른다’거나 ‘서민이 아니다’고 할 만한 셈입니다. ‘서민 정책’이라든지 ‘민심 살리기’를 말하는 정치꾼은 모두 서민을 이제껏 등졌다는 소리밖에 아닙니다.

 

 

 

 나는 《거제 가는 길》이라는 작은 사진책이 뭐 대단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이 사진책 하나가 한국 사진 발자취에 길이길이 아로새겨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작은 사진책을 비평하거나 비판하거나 이야기할 사진비평가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 만하듯, 비평을 받아야 사진이 작품으로 거듭나지 않습니다. 비판이나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사진이 사진답다 할 만큼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내 삶을 누리듯 사진을 누립니다. 누구라도 내 삶을 사랑하듯 사진을 사랑합니다.

 

 하루하루 내 좋은 삶을 빚는 꿈처럼, 하루하루 내 좋은 삶을 담는 사진이면 흐뭇합니다. 내 곁에 있는 고운 사람을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진으로 한 장 담아도 좋고,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도 좋습니다. 내 둘레에 있는 고마운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사진으로 두 장 찍어도 좋고, 가슴속에 예쁘게 아로새겨도 좋아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갑니까.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합니까.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어떤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며, 어떤 마음으로 밥을 합니까. (4345.2.11.흙.ㅎㄲㅅㄱ)


― 거제 가는 길 (김현철 글·사진,미지애드컴 펴냄,2011.8.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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