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히 아늑한 때
아이 하나와 살아가던 나날에도 복닥복닥했지만, 아이 둘이랑 살아가는 나날에도 시끌시끌합니다. 아이 셋이나 넷, 다섯이나 여섯, 일곱이나 여덟이 한집에서 얼크러지며 씨름한다면 얼마나 시끌벅적할까 절로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던 사람이라 한다면, 여느 학교 여느 교실을 떠올릴 법하지만, 막상 하루 스물네 시간 숨 고를 짬 없이 뛰고 노래하고 기고 춤추고 하는 아이들 모습을 옳게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이제껏 생각힘이 그리 좋지 않았구나 싶어요. 스스로 겪거나 치르거나 부대끼는 일이 아니라 하면 좀처럼 마음속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며 아이들이 어떤 삶을 물려받거나 무슨 이야기를 받아먹으며 자라야 좋을까를 찬찬히 그림으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곱고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사랑스러운 나날을 일구어야 재미날까를 낱낱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어요. 어버이 스스로 그림으로 그릴 때에 좋은 삶이 되고 좋은 이야기가 되며 좋은 밥이 될 테지요. 어버이 스스로 그림으로 그리면서 어버이부터 좋은 하루가 되고, 아이들과 살붙이 모두 좋은 나날이 되겠지요.
하루 가운데 아주 살짝 한동안 조용히 아늑한 때를 맞이합니다. 밥을 다 먹고, 빨래와 설거지를 마치고, 마른 옷가지를 개고, 방과 마루와 부엌을 쓸고닦아 속이 후련하다 싶을 무렵, 이 한때가 더없이 조용하며 아늑하다고 느낍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아이와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을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따순 물을 받아 두 아이를 차근차근 씻길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수북한 기저귀와 옷가지를 빨래하고 널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밥을 마련하고 차리고 함께 먹은 다음 치울 때에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내 생각이 조용하고 아늑하다면 언제라도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내 생각이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우면 어느 때라도 어수선하거나 어지럽습니다. 바야흐로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4345.2.6.달.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