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즐거울까요
 [책읽기 삶읽기 97] 탁동철,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탁동철 님이 199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탁동철 님은 “아이들한테 행복해지는 걸 가르칠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해 보기도 해야지, 노는 걸 가르치고 배우기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놀아 보기도 해야지, 이건 뭐 하루 종일 가르치기만 하고, 하루 종일 배우기만 하고,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노는 시간이 하나도 없고……(304쪽)”처럼 이야기할 줄 압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본 대로 쓴 것은 잘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318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사람 패는 버릇 고칠 거냐고, 고친다고 대답하면 나도 너 때린 것 사과한다고 했더니 녀석이 고친다고 해서 그럼 나도 너 때린 것 잘못했다고 했어요.(9쪽)” 하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줄 압니다.

 

 교사일기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은 초등학교 평교사로 일하는 어른 한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나날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좋은 이야기꾸러미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보여주고, 아이들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삶을 찬찬히 적습니다.

 

 교사 탁동철 님은 섣불리 교육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교사 탁동철 님은 어설피 교사론을 드높이지 않습니다. 잘못이라고 느낀 일을 잘못이라 말합니다. 잘했다고 여긴 일을 잘했다고 말합니다.


.. 어수선하다. 그래도 첫날인데 ‘어떤 선생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는데, 다들 별 관심이 없다는 얼굴이다 … 공부 시간에 왜 이런 문제도 모르냐고 나는 딱딱한 얼굴로, 사랑 없이 말했고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 옆에 있던 2학년 예원이가 “선생님은 왜 맨날 야단쳐요?” 한다. 참 야무진 말이다. 그 말 맞다 …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한쪽 길로 잡아끄는 것 또한 폭력이다. 반성했다 … 내 욕심만 없었다면, 그대로 보아줄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나 ..  (17, 84, 131, 238, 279쪽)


 책을 펼쳐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초등학생이고, 내 초등학교 담임으로 탁동철 님이 있다면, 나는 하루하루 즐거이 맞이할 수 있을까 하고.

 

 내 어린 나날 국민학교 적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국민학교 교사들은 왼손에 출석부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어느 교사는 오른손에 몽둥이를 든 채 교실로 들어옵니다. 이런 교사가 수업을 할 때에는 당번이 교무실에 가서 미리 출석부를 챙겨야 합니다. 출석부를 미리 챙기지 않으면 맨 먼저 당번이 교탁으로 불리고 흠씬 얻어맞습니다. 다음으로 반장과 부반장이 불리고 이들도 똑같이 얻어맞습니다. 골마루를 울리는 달음박질 소리가 이어지고, 출석부를 받은 교사는 ‘날과 달과 요일’에 따라 번호를 외면, 이 번호에 따라 ‘복습 문제 묻고 말하기’를 합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앞으로 불리고, 열 스물 서른이 줄줄이 앞으로 늘어서면,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빈 교사가 오른손으로 몽둥이를 쥐고는 엉덩이나 허벅지를 펑펑 두들겨팹니다.

 

 나는 내 국민학교 여섯 해를 떠올릴 때에 얼마나 많은 교사가 얼마나 많이 꾸짖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욕하고 했는가부터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다가 다른 학교로 옮긴 한 분만 몽둥이 없이 교실로 찾아와 한 차례도 때리지 않고 한 해를 보냈다고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2학기부터 담임을 맡은 분은 가끔 때리기는 했으나 웬만해서는 소리를 높이는 일 없고 몽둥이를 드는 일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에 개구진 짓을 많이 하던 나는 이분 넉살이 좋아 뒤에서 몰래 업히듯 찰싹 달라붙으며 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달라붙을 때에 성가셔 하지 않고 웃은 교사는 이때에 딱 한 번 만났습니다.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탁동철 님은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어떻게 마주할까 궁금합니다.


.. 아무 일 없다는 듯 공부 시작하려는데 남자아이가 따진다. “왜 선생님 책상에는 우유 안 쏟고 우리 책상에만 우유 부었어요?” … 다른 학교에서는 다 하고 있는 급식을 우리 학교만 안 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부모님들이 급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2학기부터 학생 수가 늘어났고, 공수전분교도 급식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몇 사람한테 들었습니다. 저도 그게 옳다고 여겨서 올해는 급식이 되도록 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 정택이가 내 얼굴을 보며 “저희가 어떻게 하면 선생님 얼굴이 확 펴질까요?” 아, 미안. 잔뜩 굳었나 보다. 아이들도 고민이 많은데 학교에 와서 찌푸린 담임 얼굴을 또 보고 있어야 하는 건 불쌍하다 ..  (29, 126, 231쪽)


 교사일기 《달려라, 탁샘》에 차근차근 적은 이야기가 있을 테고, 이 교사일기에 미처 못 담았다든지 굳이 안 담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탁동철 님은 아이들하고 살가이 어울리고픈 꿈을 날마다 새롭게 꿉니다. 그러나, 꽤 자주, 어쩌면 날마다 아이들 앞에서 찌푸린 낯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한테 괜히 목소리를 높입니다. 곧잘 아이들을 때리거나 윽박지릅니다. 교사 자리에 서면 예나 이제나 어쩔 수 없나, 남자 교사는 다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나,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참말 교사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일이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아이들이 아니라, 집에서도 아이들이고 마을에서도 아이들이거든요. 탁동철 님은 “나는 다가가서 멱살을 잡았다. 과장되게 화를 냈다. 겁먹고 고분고분 당해 줄 아이가 아니다. 나한테 덤벼들었다. 식식거리며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며 주먹을 쥐고 노려보고 욕을 했다. 이대로 물러서면 끝장이다. 나는 더욱더 크게, 힘껏 소리 질러 가며 화를 냈다.(258쪽)” 하고 밝힙니다. 동무들한테 돌을 던지는 아이를 마주하며, 이 아이 돌팔매를 그치게 할 길이란 이때에 이러는 수밖에 없는지 모르니까요.

 

 참말 돌팔매 아이는 왜 돌팔매까지 해야 했을까요. 돌팔매 하던 아이는 왜 교사한테까지 욕을 하고 주먹을 흔들어야 했을까요. 이 아이는 집에서 어떤 아이로 살아갈까요. 이 아이는 마을에서 어떤 아이로 지낼까요.

 

 아이들은 몽둥이나 손찌검 맛을 보아야 좋은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예전에는 어른들한테서 몽둥이 맛이나 손찌검 맛을 보았을 테니, 오늘 어린이로 살아가는 이들도 똑같이 몽둥이랑 손찌검 맛을 보아야 할까요.


.. 4학년 여자아이가 말한다. “아니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어요. 내가 그린 그림을 그냥 콱 찢어 버리고 싶어요.” 아, 그렇구나.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 … 밥 냄새 맡으며 공부하는 게 즐겁다 … 요즘 아이들은 그런 일 해 본 적 없다. 아이들이 일을 못해 본 건 어른 탓이다. 그러니 아저씨가 버럭 소리 질러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어야 한다 … 오늘은 신나는 시험 보는 날. 학생이야 고생스럽지만 선생은 할 일이 없다. 엉덩이 털썩 붙이고 앉아서 랄랄라, 시험 채점 마치고 나서 이렇게 쉬운 걸 왜 틀렸냐고 물어 보면 그만이다 ..  (37, 93, 250, 293쪽)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우유를 먹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급식을 먹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예방주사를 놓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읽히고 시험을 치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들한테 우유를 마시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들이 줄을 맞추고 조용하며 얌전히 급식실에 앉아 찌꺼기 남기지 말고 그릇을 비우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예방주사가 무엇이요 어떤 성분인가를 헤아리지 않고 모든 아이가 제때 맞을 수 있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마다 다 다른 삶 다 다른 꿈인 줄 알기는 하더라도 다 같은 교과서 다 같은 지식 다 같은 학년과정을 이끕니다.


.. 광복이 덕에 처음으로 오소리 똥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더니 어떤 아이가 “나는 내일 토끼 똥 가져와야지.” 했다. 이거 좋은 공부가 되겠구나 … 오늘 아침에도 과자 너무 먹으면 뼈가 약해진다, 힘들어 번 돈을 함부로 까먹어서야 되겠나, 이야기를 하고 정 먹고 싶으면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어떻겠냐 해서 모두 그러겠다고 하더니 아무 소용없다 … ‘그런 고통도 겪어 보고 분노도 느껴 봐.’ 눈을 부릅뜨고 그 모든 것을 살피는 것 또한 공부 아니겠나. 아니, 또 한편으로는 사람 막 대한다는 그따위 시시한 곳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기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46, 49, 188쪽)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집이나 마을에서 늘 아이들과 마주하며 삶을 가르치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따로 학교로 보내 따로 교사한테서 지식과 삶을 보고 배우도록 맡겨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 나이와 몸과 마음을 그때그때 살피면서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누릴 꿈과 사랑을 보듬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수학이든 국어이든 과학이든 영어이든 따로 전문 지식을 쌓은 이들한테서 배워야, 좋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돈 많이 번다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오늘날입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좋을까요. 아이들한테 하나라도 더 옳은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기 앞서,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좋은가를 듣고 어깨동무해야 할 노릇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찾고 알아보지 않고서, 학교 울타리 안팎에서 ‘좋은 지식’이나 ‘좋은 공부’만 찾는다면, ‘좋은 놀이’와 ‘좋은 꿈’만 생각하려 한다면, 참말 ‘좋은 무엇’부터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달려라, 탁샘》을 덮습니다. 이 책은 교사일기입니다. 교사일기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랐는가 곰곰이 헤아립니다. 제도권 울타리인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스스럼없이 하루하루 밝히는 틀을 넘어, 어떤 사랑과 꿈을 이야기 하나로 그리기를 바랐는가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해야 좋은지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서는 좋은 교사를 만나 좋은 지식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졸업장을 따야 하고, 아이들은 더 높은 시험성적을 거두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참말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왜 교사자격증을 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왜 일기를 쓰며 하루를 뉘우치고, 교사는 왜 교사일기를 쓰며 아쉽거나 안타까운 대목을 뉘우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런 울타리도 자격증도 이름값도 졸업장도 돈벌이도 없이, 서로서로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면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탁동철 님 할머님은 “(밤) 까먹어. 이 좋을 때 부지래이 까먹어.(41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마따나 이가 좋을 때에 밤을 부지런히 까먹고, 눈이 밝을 때에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응어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탁동철 님은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사랑씨앗을 심으려 했느냐 하는 응어리 한 가지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는 이 대목 하나를 찾고 싶지만, 450쪽까지 읽고 한숨을 쉬며 책을 덮을 때까지 왜인지 모르게 답답합니다.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이야기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때에 다 같이 즐거울까요. (4345.2.2.나무.ㅎㄲㅅㄱ)


― 달려라, 탁샘 (탁동철 글,양철북 펴냄,2012.1.2./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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