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부른다 창비아동문고 63
이원수 지음, 이상권 그림 / 창비 / 197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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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누릴 문학과 삶
[시를 사랑하는 시 8] 이원수,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1979)

 


- 책이름 : 너를 부른다
- 글 : 이원수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79.4.25.)
- 책값 : 8500원

 


 국민학교 다니면서 ‘동시 쓰기 숙제’가 참 힘들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분들은 ‘동시 쓰기 숙제’를 내면서 글잣수 맞추는 운율에서 어긋나면 안 될 뿐 아니라 생각힘을 뽐내어 새로운 말을 만들라고 했어요. 아이들한테 글잣수 맞추어 동시를 쓰라 하는 일이란 너무 벅찹니다. 기껏 말놀이나 말재주는 될 수 있어도, 막상 즐거이 읽고 사랑스레 나눌 동시를 쓸 수는 없어요.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이면서 동시를 쓰셨습니다. 아버지 책꽂이에는 다른 어른들 동시책이 꽤 꽂혔어요. 학교에서 ‘동시 쓰기 숙제’가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 동시책을 뒤졌습니다. 학교 교사들 가운데 누가 알겠느냐고, 교과서에 실린 동시 말고는 읽은 적 없을 어른들이 아버지 책꽂이에 있는 동시책에 실린 동시 여러 가지를 이래저래 짜깁기한들 알아챌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동무들도 나처럼 동시책에서 뭔가 그럴듯한 꾸밈말을 베끼고 짜깁기해서 동시 숙제를 냅니다. 그런데, 다른 동무들은 짜깁기 동시로 곧잘 상을 받는데, 나는 이렇게 짜깁기한 동시로 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때, 내 생각은 오직 하나, ‘뭐야, 나도 저 애들하고 똑같이 짜깁기 했는데, 나만 왜 상을 못 받아? 쳇!’이었습니다.


.. 눈 얼음에 덮였던 북향 뜨락에서 / 겨울을 난 개나리 가지에 / 꽃봉오리 일제히 트는 것은 / 우리 눈을 즐겁게 하려는 / 그런 뜻에서가 아니었다. // 봄마다 우린 너를 반겨했지만 / 개나리 네 가슴엔 / 더 큰 벅찬 것이 있었던 것을……. // 그 모진 추위 / 더구나 찬 밤 얼음 속에 서서 / 너는 불 켜진 따순 방 유리창을 바라보며 / 이를 악물고 울었을 게다. / “살자, 살자, 살자!”고 / 마음속에 힘주어 다짐하면서 ..  (개나리 꽃봉오리 피는 것은)


 국민학교 다니며 국어를 배우는 때가 되면 언제나 두려웠습니다. 혀짤배기인 탓에 교사들이 바라듯 ‘교과서를 빨리 읽’으려고 하려면 으레 혀가 꼬입니다. ㄹ 글자는 소리 내기 참 힘들었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어 한 낱말은 ‘우리’였는데, 교과서에는 툭하면 ‘우리’가 튀어나옵니다. 우리 형,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학교 …… 아아, 번호 차례나 책상 차례에 따라 내가 읽을 대목이 어디인가를 어림해서 먼저 후다닥 속으로 소리내어 읽습니다. 내가 읽을 대목에 ‘우리’가 몇 차례 나오는가 셉니다. 다른 ㄹ 들어간 글자가 몇 있나 훑습니다. 부디 틀리게 읽지 말자고 다짐하면 수없이 되읽고 욉니다.

 

 어느 날에는 서너 줄밖에 안 되는 글월에 ‘우리’가 자그마치 일곱 차례 나옵니다. 나는 이날 이 교과서 읽기가 너무나 끔찍해서 여태 잊지 못합니다. 고작 서너 줄 읽으며 그만 혀가 꼬여 더는 읽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교사는 못 읽은 만큼 몽둥이로 때립니다. 동무들은 혀짤배기 꼬이는 소리를 들으며 깔깔 호호 웃고, 나는 어디 숨을 구석이 없어 쪼그라듭니다.

 

 내 어릴 적 국어 배우는 날은 아주 싫고 슬프며 미웠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교과서 읽기를 숙제로 내거나 시험으로 칠 때면 아주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 마룻바닥에. // 코끝에 땀이 송송 / 더우신가봐. / 부채질 해드릴까. / 그러다 잠 깨실라. //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도. / 콧잔등에 잔주름 / 그도 예뻐요. // 부채질 가만가만 해드립니다 ..  (우리 어머니)


 국민학교 여섯 해 내내 힘들던 국어였는데, 중학교로 가니 교과서 읽기를 따로 시키지 않습니다. 교과서 읽기를 시키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우며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엉키고 설키며 꼬인 실타래가 차츰 풀립니다. 이제 비로소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을 차근차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교과서로 읽는 시는 영 못마땅합니다. 자연을 노래하고 꿈을 그린다고 하는 시라지만, 가슴에 촉촉히 젖어들지 않습니다. 뜬구름을 잡을 뿐 아니라, 글쓴이 이름을 가리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쓴 시인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시가 싫었습니다. 글쓴이 이름을 가리고도, 이 시를 읽으며, 아하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쓴 시로구나, 하고 느낄 만해야 글이 아닌가, 시가 아닌가, 삶을 나누는 사랑이 꽃피는 문학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마땅하게 교과서 문학은 읽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안 실린 사람들 시를 찾아서 읽습니다. 도서관에 가고 책방에 갑니다. 낯선 이름 낯선 시집을 들춥니다. 내 눈길을 사로잡고 내 마음을 두들기는 글과 꿈을 찾습니다.


.. 봄비는 은실로 내리면서 / 흙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네. / 정다운 얘기하며 땅에 스미네. // 젖은 흙에서 싹이 나오네. / 비는 위에서 내려오고 / 싹은 아래서 올라오네. // 봄비는 남몰래 흙 밑에서 / 어린 씨앗 속에 스며들었네. / 가슴 부풀려 싹을 틔웠네. // 비는 위에서 내려와도 / 싹에 얼려 한몸 되어 다시 오르네 ..  (봄비)


 문득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어린 날 교과서 읽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교과서 읽기가 몹시 못마땅하며 괴롭고 싫었으나, 이 끔찍한 일을 치르면서 ‘속으로 소리내어 책읽기’를 오래도록 갈고닦은 셈입니다. 내 혀가 짧지 않다면, 내 혀가 다른 여느 동무하고 비슷한 길이라 혀짤배기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게다가 내 코가 다른 여느 동무와 같다면, 코막힌 킁킁 소리가 내 말소리에 섞이지 않는다면, 이때에 내 글읽기나 책읽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내 몸이요 삶이라면 속으로 소리내어 책읽기를 하지 않았을는지 모르며, 글을 재빨리 읽어내는 버릇을 들이지 못했겠지요.

 

 동시 베끼기 숙제를 여섯 해에 걸쳐 하는 동안, 어느 동시책을 들추어 동시를 베끼든 어슷비슷한 줄 그때에는 몰랐으나, 이제 와 돌이키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할 만합니다. 예나 이제나 적잖은 ‘동시인 어른’은 말놀이와 말재주에서 헤어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귀염둥이로만 바라보는 동시인 어른이 너무 많습니다. 어린이 삶으로 녹아들며 어린이와 어깨동무하려는 동시인 어른이 너무 적습니다. 어린이가 맑고 밝으며 착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나날을 함께 일구려는 동시인 어른이 참 드뭅니다.

 

 파란 빛깔 하늘과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언제 어디에서 부나요. 파란 빛깔 하늘을 노래하자면, 글로만 노래하면 되나요. 자동차 넘치며 배기가스 매캐한 이 나라에 어디 파란 빛깔 하늘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팍팍하거나 고단한 살림을 이어야 하는 이웃이 있거나 내 집안이 팍팍하거나 고단하다 할 때에, 이와 같은 팍팍함과 고단함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어디에서 풀어야 하는가 하는 실타래를 살피지 않고 예쁜 말만 만들면 동시가 될 수 있겠습니까.


.. 일본 오끼나와의 어린 아이들은 / 남의 나라 뺏으려는 도둑질 전쟁 끝에 / 악마 같은 명령을 좇아 / 폭탄을 지니고 연합군의 진지로 / 죽음의 진지로 / 가엾이 뛰어들어 무참히도 죽어 갔다. // 5학년의 어린 아이도 있었단다. / 너와 같은 열두 살짜리도 있었단다. / 백성들을 죽여서까지도 / 저희들만 잘 되려는 / 나쁜 사람들의 정부 밑에 살았기 때문에 / 커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간 어린이들. // 우리는 그 흉악한 나라에서 빠져나왔지만, 독립만세 부르며 기뻐 뛰는 가운데서도 / 가엾이 죽어 간 / 오끼나와의 어린 동무들을 생각하자. // 다 같이 잘 살 줄 모르는 / 욕심장이들을 없애지 않고는 / 즐거운 나라는 될 수 없단다 ..  (오끼나와의 어린이들)


 이원수 님 동시책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1979)를 내 손으로 쥐어 처음 읽은 날은 2000년 10월 21일입니다. 나는 스물여섯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원수 님 동시책을 ‘책으로’ 처음 읽습니다. 스물여섯 해를 살기까지 국민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이원수 동시’를 옳게 말하거나 제대로 들려주는 둘레 어른이나 동무는 없습니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나 스스로 찾을 생각을 못 합니다. 그저 ‘이원수 = 고향의 봄’으로 끝납니다. 가끔 ‘이원수 = 겨울나무’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같은 싯말을 들려주는 어른을 만난 적 없습니다.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하는 싯말을 읊던 어른을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처럼 시를 노래하는 어른을 만날 수 없습니다.

 

 꼭 한 번, 《너를 부른다》를 국민학생 때에 읽었다고 하는 또래동무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녁은 1979년에 나온 동시책을 아마 1982년이나 1983년에 처음 읽었겠지요. 게다가, 이 녀석은 1984년에 나온 권정생 님 동화책 《몽실 언니》를 1984년에 읽었다고 떠올렸습니다.

 

 나는 《너를 부른다》를 2000년이 되어 비로소 읽었고, 《몽실 언니》는 1998년에 겨우 읽었습니다. 이때가 되도록 어느 누구도 나한테 이러한 책·문학·삶이 있다고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 순희 사는 동네에 가면 / 개울물 소리 음악처럼 울려 오고 / 보드라운 새깃인 양 / 내 얼굴 스쳐 주는 바람. / 그 바람에 숨막힐 듯한 꽃 향기, 나무 향기. // 순희 사는 동네는 비탈진 골짜기 / 높은 산밭에서 거름을 주고 있는 순희를 보면 / 아! 그 귀여운, 일하는 모습 ..  (순희 사는 동네)


 어린이로 살아갈 때에 어린이 삶·꿈·넋을 빛내는 사랑·믿음·말을 들을 수 없다면 너무 슬픕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이렇게 좋은 책·문학·삶이 있었어도 만날 수 없었으니, 나이든 이제 돌이키면 슬프지만, 내 또래나 나보다 위인 형 언니 누나 들을 헤아리면, 이제라도 읽을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셈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한글을 깨치고 나서 《너를 부른다》와 《몽실 언니》를 어린이일 때에 읽을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문학늘 즐길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로서 어린이문학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 해가 지면 성둑에 / 부르는 소리. // 놀러 나간 아이들 / 부르는 소리. // 해가 지면 들판에 / 부르는 소리. / 들에 나간 송아지 / 부르는 소리. //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 어머니 생각―. // 부르는 소리마다 / 그립습니다. / 귀에 재앵 들리는 / 어머니 소리 ..  (부르는 소리)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문학을 즐기지 못하면 슬픕니다. 그러나,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답게 무럭무럭 뛰놀며 자랄 수 없다면 훨씬 슬픕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만나거나 즐기지 못했지만, 마음껏 뛰놀며 동무들과 얼크러질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일 적에 어린이문학을 맛보지 못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다이 온갖 생각날개 펼치며 꿈꿀 수 없으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나는 내 어린 나날, 빛나는 어린이문학을 듣거나 마주하지 못했으나, 끝없이 생각날개를 펼치며 나한테 다가올 새날을 기다렸습니다.

 

 책으로 적바림한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책으로 적바림하지 않았으나 삶으로 아로새기는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 열매 속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 온 세상을 골고루 안아 줍니다. /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  (햇볕)


 어린이가 누릴 문학과 삶은 어떠한 빛깔일까요. 어른이 누릴 문학과 삶은 어떠한 내음일까요.

 

 어린이가 누릴 문학과 삶은 어린이한테 어떠한 꿈과 노래와 춤사위일까요. 어른이 누릴 문학과 삶은 어른한테 어떠한 사랑과 살림과 땀방울일까요.

 

 오늘날,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서면 이원수 님 동시를 가르치거나 들려주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대입시험을 치르는 자리에 이원수 님 동시를 지문으로 내놓고 문제를 풀라 하지 않습니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이라는 자리에서 교사자격증을 따려는 아이들이 어린이책·어린이문학·어린이삶을 얼마나 누리거나 살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사자격증을 따려는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문제에 이원수 님 동시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찔레꽃이 햐앟게 피었다오” 하고 노래하던 때가 언제요, 이러한 노래는 누가 누구를 기다리며 부르는 말마디요 꿈인가를 묻는 시험문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감자 씨는 묵은 감자, / 칼로 썰어 심는다. / 토막토막 자른 자리 / 재를 묻혀 심는다. // 밭 가득 심고 나면 / 날 저물어 달밤. / 감자는 아픈 몸 / 흙을 덮고 자네. // 오다가 돌아 보면 / 훤한 밭골에 / 달빛이 내려와서 / 입을 맞춰 주고 있네 ..  (씨감자)


 스물여섯 살에 처음 읽은 동시책 《너를 부른다》를 서른여덟 살에 다시 읽습니다. 앞으로 열두 해를 더 살아내어 쉰 살이 되고서 《너를 부른다》를 새롭게 거듭 읽을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곁에서 이 동시를 함께 읽을 수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 짝꿍을 만나 아이를 새롭게 낳으면, 내 손주가 될 아이들하고도 《너를 부른다》를 나란히 읽을 만한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마, 다시 읽겠지요. 아마, 또 읽겠지요. 아마, 거듭 읽겠지요.

 

 왜냐하면, 나는 내 여덟 살에도 내 열여덟 살에도 내 스물여덟 살에도 내 서른여덟 살에도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하고 느끼니까요. 내 나이 마흔여덟이 된들 개나리꽃 들여다볼 때에 눈이 안 부시리라 느끼지 않아요. 쉰여덟이나 예순여덟이 되더라도 개나리꽃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눈이 부시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 하얀 찔레꽃 따먹었다오. /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먹었다오 ..  (찔레꽃)


 날마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빨래를 마치면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줄줄이 넙니다. 빨래들은 바람 불면 춤을 춥니다. 살랑바람 불면 살랑춤 춥니다. 싱싱바람 불면 싱싱춤 춥니다. 산들바람 불면 산들춤 춰요. 된바람 불면 된춤을 추기 때문에, 이때에는 빨래를 걷어 집안에 옷걸이에 꿰어 넙니다.

 

 날마다 새롭게 크는 아이들 바라보며 날마다 손바닥 꾸덕살 두툼해지는 내 손을 바라봅니다. 내 손을 들여다보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손은 이 나이 무렵에 어떠했을까 하고 그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쯤 된다면, 이 아이들 손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고 헤아립니다.

 

 흐르는 삶입니다. 자라는 사랑입니다. 피어나는 삶입니다. 찬찬히 크는 사랑입니다.

 

 싯말 하나에는 씨앗 하나 깃듭니다. 씨앗 하나에는 이야기 한 자락 감돕니다. 이야기 한 자락에는 삶과 꿈과 땀이 골고루 어우러집니다.

 

 살아가며 쓰는 시입니다. 생각하며 쓰는 시입니다. 살림하며 쓰는 시입니다.

 

 살아가지 않고 머리만 굴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꼼수를 부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살림하지 않고 남을 들볶거나 부려서는 시를 쓰지 못합니다.


.. 개나리꽃 들여다보면 눈이 부시네. / 노란 빛이 햇볕처럼 눈이 부시네. // 잔등이 후꾼후꾼, 땀이 배인다. / 아가 아가 내려라, 꽃 따주께. // 아빠가 가실 적엔 눈이 왔는데 / 보국대, 보국대, 언제 마치나. // 오늘은 오시는가 기다리면서 / 정거장 울타리의 꽃만 꺾었다 ..  (개나리꽃)


 아이들하고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싶으니 동시를 읽습니다. 동시를 하나하나 알뜰히 읽으면서 나 또한 동시를 쓰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예쁘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천천히 글꽃이 됩니다. 내가 들려주는 말씨앗이 아이들 가슴에 젖어들어 씩씩하게 자라면 말꽃이 핍니다. 이 말꽃을 가만히 되새기면 시꽃으로 거듭납니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고갯마루 넘으며 “이야, 저기 멧봉우리에 구름이 앉아서 쉬는구나.”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고갯마루 낑낑대며 넘다 보니, 나도 다리쉼을 하고 싶은 나머지, 판판한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멧봉우리 구름이 나처럼 다리쉼 하는 동무처럼 보였어요. 깜깜한 밤하늘 올려다보고 시골길을 거닐 때 아이가 “구름이 깜깜하니까 달이 하얗게 비추네.” 하는 말을 문득 내뱉습니다. 등불 없는 시골길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별이랑 달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봄이 찾아와 아이들과 밭뙈기에 씨앗을 심으면, 씨앗이 자라 싹이 돋으면, 싹이 돋고 줄기가 오르며 잎을 틔운다면, 푸른 줄기와 잎 사이사이 꽃봉오리 핀다면, 이때에도 어버이와 아이는 저마다 달리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싯말을 마음껏 터뜨리겠지요. 싯말은 삶말이고, 삶말은 싯말입니다.

 

 함께 누리는 삶이기에 함께 쓰는 시 아닌가 생각합니다. 함께 즐기는 삶이기에 함께 읽는 책 아니랴 생각합니다. 함께 꾸리는 삶이기에 함께 먹는 밥이요, 함께 사랑하는 삶이기에 함께 지내는 집이지 싶어요.

 

 나 스스로 살아가고픈 대로 내 고향마을을 삼습니다. 꼭 내가 태어난 데가 내 고향이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내 꿈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펼치면서 즐거운 자리가 내 고향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커다란 도시가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멧골자락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지구별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드넓은 하느님 품자락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깊은 바닷님 가슴속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는 따사로운 햇님 살결이 고향일 수 있어요.

 

 나 스스로 예쁘게 고향마을로 삼으며 뿌리내리는 터에서 삶꽃을 피우는 동안 시꽃을 피웁니다. 내가 아이들과 시꽃을 피울 수 있을 때에 내 삶꽃이 곱게 피어납니다.


.. 바람 불면 빨래들이 춤을 춘다. / 어머니 파랑 치마 팔랑팔랑 / 쬐꼬만 내 치마도 팔랑팔랑. // 빨랫줄에 높다라니 매달려서 / 무섭지도 않은가 봐, 내 앞치마. // 바람 불면 빨래들이 춤을 춘다. / 빨래 따라 꽃이파리 팔랑팔랑 / 꽃잎 따라 노랑나비 팔랑팔랑 / 모두 같이 춤춘다, 팔랑팔랑 ..  (빨래)


 1911년에 태어나 1981년에 숨을 거둔 이원수 님은 조금이라도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한때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슬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어리고 푸르며 젊은 나날을 보냅니다. 해방 뒤로는 숱한 군화발과 고달픈 새마을운동에 시달립니다. “내 소년 시절이 억압과 곤궁의 시절이라면 해방 이후는 자유롭고 복된 세상이 됨직도 하지만 그렇지가 못했고, 내 시도 역시 즐거운 노래로 돌아서지는 못했다(197∼198쪽).”는 이야기처럼, 이원수 님은 즐거이 부르는 싯말을 일구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원수 님 동시를 읽다 보면, 어느 한 대목 즐겁지 않은 싯말이 없어요. 울면서 웃고 슬프면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꿈이었기 때문일까요. 동시집 이름이기도 한 시 〈너를 부른다〉는 1946년에 썼다고 해요. 동시 〈너를 부른다〉 첫머리는 “나뭇잎이 손짓하며 / 너를 부른다. / 운동장 느티나무 / 가지마다 푸른 잎새 / 바람에 한들한들 / 너를 부른다.”로 열고, 끝마디를 “순희야 / 순희야. // 양담배 양사탕 / 상자에 담아 들고 / 학교에 안 나오고 / 행길로만 도느냐. / 우리도 목메이며 / 너를 부른다.” 하고 맺습니다.

 

 2010년대에도 한길로만 도는 ‘너희’들이, ‘순희’들이 있습니다. 남녘땅에도 있고 북녘땅에도 있어요. 무시무시한 무기를 뽐내는 미국에도 가녀린 너희들과 순희들이 있어요. 무시무시한 무기 때문에 먼지처럼 죽고 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도 가녀린 너희들과 순희들이 있어요. (4345.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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