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31.
 : 시골집 달밤 촉촉한 길

 


- 해 떨어진 저녁나절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오늘은 집에서 저녁밥 차리지 말고 바깥밥을 먹자고 생각한다. 시골마을 면내에서 사먹을 만한 바깥밥은 마땅하지 않아, 중국집과 닭집과 빵집, 이 셋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중국집과 닭집은 전화로 시킬 수 있고, 빵집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 어느 쪽으로 할까 하다가 빵집으로 고른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한 지 퍽 되었다고 느껴, 한겨울 1월 저녁나절이지만 자전거를 몰고 싶다. 겨울철 자전거마실은 찬바람 듬뿍 마셔야 하지만, 전라남도 고흥은 한겨울에도 꽤 따스하다. 오늘 저녁은 바람이 그닥 안 부니까, 낮까지 비가 흩뿌려 길바닥이 젖었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예전에 쓰던 수레에 달린 등불을 뗀다. 새로 쓰는 수레에 등불을 달려 한다. 그런데, 등불 받침대가 톡 하고 부러진다. 드라이버로 받침대를 풀어 새 수레에 달려고 조이다가 이 모양이 되다니. 자전거에 붙이는 등불 받침대가 쇠붙이라면, 또는 스테인리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플라스틱은 너무 잘 부러진다. 하는 수 없이 등불만 수레 뒤쪽에 유리테이프로 붙인다.

 

- 밤길을 달린다. 한겨울이라 하지만 이곳은 늦가을과 같다. 살짝 서늘하면서 손이나 얼굴이 얼어붙지는 않는다. 풀벌레 소리는 듣지 못하나, 자전거 달리는 소리만 듣는다. 수레에 탄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기 달이 떴네. 구름이가 깜깜하지 말라고 달이 하얗네.” 하고 말한다. 자전거가 달리니 “달이 따라오네.” 하고 말한다.

 

- 굽이진 길에서 뒷거울로 아이를 살피다가 깜빡 굽이를 놓치며 미끄러질 뻔하다. 옆으로 미리 꺾어야 했는데, 등불 없는 시골길을 달리면서 굽이에서 미리 돌지 못한 탓에 서둘러 꺾다가 살짝 삐끗했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이든 뒤따르는 자동차이든 하나도 없기 때문에 건너편 찻길까지 넘어가면서 오른돌이를 한다.

 

- 수레에 앉은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등불 없이 깜깜한 시골길에 아이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혼자서 마실을 한다면 그냥 싱싱 빨리 달리겠지만, 이처럼 아이를 태운 저녁나절 마실길이니 느긋하게 달리면서 노래를 즐길 수 있다.

 

- 면에 닿아 빵집에서 빵을 산다. 가게에 들러 마실거리를 산다. 집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등불은 없다. 아이는 이 깊은 시골 저녁 자전거마실을 어떻게 느끼려나. 우리 시골에서는 이맘때, 그러니까 저녁 일곱 시를 살짝 넘은 이맘때만 되어도 그냥 깜깜한 밤이다. 도시에서라면 저녁 일곱 시는 한창 불 밝히며 번쩍번쩍할 때라 하겠지. 아침을 빨리 열고 저녁을 일찍 닫는 시골 터전이, 풀과 나무와 사람과 들짐승 모두한테 가장 걸맞다 할 보금자리가 아니겠느냐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 집으로 돌아가는 깜깜한 찻길에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둘 만난다. 이 자동차는 어쩐 일로 이 외진 시골을 구비구비 돌며 달릴까. 그나저나, 이 자동차 두 대는 등불을 위로 치켜든 채 달린다. 앞에 자전거가 마주 달리는 줄 뻔히 알면서 등불을 밑으로 내리지 않는다. 왼손으로 눈을 가린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불을 치켜들면 자전거를 모는 이는 길을 볼 수 없다. 길이 더 깜깜해진다. 밤에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마주 달리는 자동차나 자전거가 있을 때에 마땅히 불을 내리깔아야 한다. 걷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불을 내리깔아야 한다. 마주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을 가장 헤아리는 이라면 아예 불을 끈다. 예전에 여덟아홉 시간쯤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아주 드물게 ‘등불을 끈 채 마주 달린’ 자동차를 만났다. 이처럼 마음을 살뜰히 쓰는 운전자는 한국에서 만나기 너무 힘든가. 아니, 자동차를 모는 이로서 밤에 등불을 내리까는 일은 ‘밑마음’이 아닐까. 등불을 내리깔 줄 모르는 운전자라 한다면, 운전면허를 취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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