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2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네가 어머니가 됐을 때
 [만화책 즐겨읽기 112] 모리 카오루, 《신부 이야기 (2)》

 


 내가 아이였을 때 나한테 ‘앞으로 네가 커서 아버지가 되면’ 하고 말문을 여는 어른이 있었나 하고 떠올려 봅니다. ‘네가 아버지가 되면 네 아이한테’ 하고 이야기 물꼬를 트던 어른이 있었나 하고 되새겨 봅니다. ‘네가 아버지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들과 어떻게’ 하고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들려주던 어른이 있었나 하고 곱씹어 봅니다.


- “참 예쁘네요.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네? 어떻게? 이런 걸로 적당히, 이렇게.” (12쪽)

 


 있었을까, 없었을까, 곰곰이 생각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개구지게 놀던 나를 타이르거나 달래면서 착하고 참답게 살아가라며 이끌던 어른이 있었나 없었나 생각해 보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꽃 피우던 어른이 있었으나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좋은 이야기꽃 피우던 어른이 없었기에 생각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어찌 되든, 두 아이와 복닥이는 오늘 나 스스로 착하며 참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오늘 내 모습을 곱고 맑게 추스를 수 있으면 돼요.

 

 하루하루 살아가며 내 모습을 돌이킵니다. 나는 얼마나 아버지답고, 나는 얼마나 어버이다운가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너희가 커서 어머니가 되면’이나 ‘너희가 커서 아버지가 되면’ 하는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들려줄 수 있을는지 헤아립니다.


- “전 건방지다는 소리를 곧잘 들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건방진가요?” “네? 아니!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고! 물론 저도! 건방진 건 좋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하지만요! 조심하려고, 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조심하고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 그렇군요.” (18쪽)
- “파리야는 언제나 예쁜 옷을 입고 다니잖아요.” “아뇨, 이건. 반쯤은 부모님이 도와주셨달까.” “도와주셔요?” “아뇨, 물론 저도 하지만요. 전부는 아니고, 뭐랄까, 마지막 마무리? 랄까. 죄송합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아니, 너무 힘들어요! 손재주도 별로 없고요!” “그런가요? 하지만 파리야, 빵은 잘 만들잖아요.” “빵은 괜찮아요, 빵은! 자수는 너무 섬세해서 짜증이 난다고요!” “짜증이 나는군요.” “짜증나요! 차라리 옷감을 짜라면 짜겠지만!” (140∼141쪽)

 

 


 나는 내가 하루를 보내는 모습 그대로 아이한테 보여줍니다. 아이는 제 아버지가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아버지 삶을 느끼고, 제 삶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버이가 착하게 살아가면 아이 또한 착하게 살아갑니다. 어버이가 빽 소리를 지르거나 얄궂은 말을 일삼는다면, 아이도 빽 소리를 지르거나 얄궂은 말을 일삼아요. 씨앗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심을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아이 또한 씨앗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심겠지요. 나무를 곱게 어루만지며 아끼는 어버이라면, 아이 또한 나무를 곱게 어루만지며 아낄 테지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어버이 따라, 아이들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밥하기를 즐기고 빨래하기를 기쁘게 맞아들이는 어버이 곁에서, 밥하기를 어깨너머로 배우고 빨래하기를 곁눈질로 익히는 아이예요.

 

 곰곰이 따지면, 어버이나 어른은 따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더라도 ‘네가 앞으로 어버이로 살아갈 때’에 어떠한 매무새여야 아름다운가를 가르칩니다. 어버이나 어른은 굳이 말로 조잘조잘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더라도 ‘네가 머잖아 어른으로 살아갈 적’에 어떠한 몸짓과 마음씨여야 즐거운가를 알려줍니다.

 

 열중쉬어 시키고는 뙤약볕이나 강추위를 견디도록 하면서 길디길게 늘어놓는 교장선생 이야기보따리여야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글줄이어야 아이들을 일깨우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야기여야 아이들이 받아먹을 만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마주하는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늘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 가르침이고 배움입니다. 오늘 하루 차려서 먹는 밥이 삶이자 앎이요 꿈이고 사랑입니다.


- “아미르는 돌려줘야겠다. 네게는 과분한 아내였으니. 뭐, 다른 상대를 찾아봐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미르는 저와 결혼했으니, 어떻게 할지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38쪽)
- “어디서 기어오르고 앉았어! 이 자식아!” (87쪽)
- “뭔가 하고 싶은 말 없어? 있다면 뭐든지 말해 줘.” “하고 싶은 말.” “난 아미르를 보낼 생각도 없었고, 보내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미르에게는 가족들이 있잖아.” (113쪽)

 


 모리 카오루 님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0) 둘째 권을 읽습니다. 중앙아시아 들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곤조곤 실린 만화입니다. 중앙아시아 들판을 보금자리로 삼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집에서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가 ‘만화대사’로 딱히 드러나지 않더라도, ‘만화배경’으로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꼼꼼한 그림책으로 내보이지 않더라도, 이렇게 만화책으로 멋스러이 드러낼 수 있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아니, 만화책이기에 사진과 그림으로 보여주기 힘든 대목을 찬찬히 짚으며 한결 재미나면서 새롭게 선보일 수 있구나 싶어요. 사진과 그림이라 해서 자유롭지 않으란 법이 없으나, 만화는 한껏 홀가분하게 꿈과 사랑을 꽃피우는 이야기밭이거든요.

 

 모리 카오루 님이 그린 다른 만화 《엠마》는 아직 읽지 않았는데, 《엠마》도 차근차근 장만해서 읽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 “손님이다!” “손님!” “손님이야!” “착하게 굴어야 해!” “착하게!” “우리 착해!” (128쪽)
- “여기 있으면 매일 흥미가 끊이질 않아요. 게다가 마음도 푸근하고요. 정말, 생각보다 오래 있기는 했군요.” (161쪽)
- ‘정신이 아득해질 만한 시간과 수고, 그리고 마음과 기도가 깃들어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 모습에서는 부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담소를 나누며 바느질을 하고, 일하는 짬짬이 실을 잣는다. 그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며, 다시 말해 생활인 것이다.’ (170∼171쪽)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신부’는 ‘새색시’라 할 수 있고 ‘며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개 댁’은 아닙니다. 태어날 때에 받은 이름을 그대로 이어갑니다. ‘아무개 집안 사람’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신부를 낳은 어버이’ 집안을 잊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혼인을 일컬어 두 집안이 만나는 일이라 하는데, 두 집안도 만나고 두 사람도 만납니다. 두 문화가 만나고 두 삶이 만나요.

 

 마땅한 노릇이에요. 저마다 다른 삶과 삶터와 삶자락을 잇던 사람이 함께 살아가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집안에서 살아오던 결’이 만나기 마련이에요. 이 대목에서 서로서로 슬기로이 어우러지면 즐겁습니다. 이 대목에서 어느 한쪽이 뾰족거리면 고달픕니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어깨동무할 때에 즐거이 빛나는 나날입니다. 신부는 신부대로 어린 나날부터 제 앞날을 꿈꾸며 한 땀 두 땀 수를 놓습니다. 신랑은 신랑대로 어린 나날부터 제 앞날을 꿈꾸며 한 방울 두 방울 땀을 흘립니다.

 

 그야말로 아득하다 할 만큼 오랜 나날에 걸쳐 숱한 손길을 들여 바느질을 하는 일이란 ‘단순노동’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이 ‘단순노동’을 이야기꽃 피우며 도란도란 즐깁니다. 수많은 다른 일을 치르는 사이사이 꾸준하게 잇습니다. 몇 해에 걸쳐 양탄자를 뜨고, 여러 해에 걸쳐 살림살이 하나를 마련해요.

 

 땀이 깃들기에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이 자라기에 오래도록 건사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살림살이는 없습니다. 내치거나 등돌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깊이 아끼는 삶이기에 깊이 아끼는 사랑이에요. 깊이 아끼는 사랑인 만큼 서로서로 아끼는 사람들입니다.


- “저희는 딸이 다섯이나 돼서 예단 준비가 힘들었지요.” “그거 정말 힘들었겠구먼.” “어찌저찌 다들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덕분에 아무것도 안 남았습니다.” “준비한 것만도 대단하이. 비단은 어디서 했나?” (132∼133쪽)
- “얘, 똑바로 앉아서 제대로 하렴.” “재미없어요.” “재미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뭐든지 만들 수 있어야지. 네가 어머니가 됐을 때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잖니?” (146∼147쪽)
- “기다려 봐라. 이걸 보면 알기가 쉽지. 보렴 티레케. 이게 우리 거다. 이 무늬는 6대조모님이 만드셨어. 두 색깔만 가지고도 참 화사하지? 꽃을 이렇게 수놓는 방법은 5대조모님이 생각하신 거란다. 이것 말고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멋있는 무늬를 많이 만드셨지. 다들 따라하고 그랬어. 고조모님은 이 포도무늬를 좋아하셔서, 수를 놓으실 때는 꼭 이게 들어갔단다. 이 무늬는 증조모님 거구나. 어느 것이나 밝고 산뜻하지? 당신께서도 참 재미있는 분이셨다.” “이걸 전부 증조할머님이 수놓으셨어요?” “그렇지.” “……. 전부 기억하세요?” “기억하다 마다.” (151∼154쪽)

 


 한겨레는 예부터 어떤 ‘신랑 이야기’와 ‘신부 이야기’를 빚었을까 궁금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어떤 보금자리에서 어떤 꿈을 키우면서 저마다 앞날을 꿈꾸었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이 없고, 관료도 계급도 땅임자도, 자질구레한 신분이나 권력이란 없이 사랑스레 얼크러졌을 지난 어느 날, 이 한겨레는 예부터 어떤 사랑을 빚는 살림살이를 일구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려고 군대를 키우지 않던 지난 어느 날, 무기를 만들어 이웃마을을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던 지난 어느 날, 이 한겨레는 어떠한 사랑과 어떠한 꿈과 어떠한 믿음으로 하루하루 아름다이 보살폈을는지 궁금합니다.

 

 옛날 옛적 한겨레는 옷 한 벌 어떤 마음으로 지었을까요. 옛날 옛적 한겨레는 집 한 채 어떤 마음으로 지었을까요. 옛날 옛적 한겨레는 밥 한 그릇 어떻게 흙을 일구어 얻은 다음 지었을까요.

 

 아름답게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꿈을 키우면서 아름답게 아이를 낳고 돌보는 살림살이에 온마음 쏟았겠지요. 평화를 지키는 힘은 군대나 무기가 아니라, 평화로운 넋과 말과 삶입니다. 평화를 누리는 힘은 경제개발이나 산업화가 아니라, 평화로운 땀과 꿈과 사랑입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 신부 이야기 2 (모리 카오루 글·그림,김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9.23./6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