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꼬마 재봉사 네버랜드 세계 옛이야기 9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그림, 임정진 글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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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간이 나라에서는 얼간이로 살아가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4]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용감한 꼬마 재봉사》(시공주니어,2006)

 


 얼간이 나라에서는 얼간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사람들이 온통 외눈인 곳에서는 눈이 둘인 사람이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들 말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 같은 이야기는 조금도 내키지 않았어요. 너무 못마땅할 뿐 아니라 앞뒤가 어긋난데다가 올바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다만, 이렇게 못마땅한 느낌을 어른들한테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느낌을 드러내면 어른들은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하면서 머리통을 쥐어박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네가 선생한테 반항하느냐!’ 하면서 끔찍하게 두들겨패기 일쑤였어요.

 

 예나 이제나 《용감한 꼬마 재봉사》(시공주니어,2006)를 퍽 재미나면서 터무니없는 옛이야기쯤으로 들려주곤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얘기가 조금도 재미나지 않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도 옛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재봉사가 참 걱정스럽고, 재봉사가 만나는 사람마다 뭐 이리 바보스러우면서 못된 마음일까 싶어 슬퍼요. 그런데 재봉사마저 바보스러운 사람들 사이에 얼크러지며 스스로 바보가 되어 살아가니 더 딱해요.


.. 화가 난 재봉사는 옷으로 파리들을 힘껏 후려쳤어요. 그러고 나서 옷을 들어 보니 파리 일곱 마리가 죽어 있었어요. “한 방에 일곱 마리나 해치우다니! 난 정말 대단해!” 재봉사는 의기양앙하게 허리띠를 풀어 그 위에 수를 놓았어요 ..  (5쪽)


 어린 날, ‘그래, 바보스러운 나라에서는 나 스스로 바보가 되어야 살아남는가?’ 하고 생각하며 슬펐습니다. 모두들 바보짓을 하니까 나도 바보짓을 해야 살아남느냐 싶어 괴로웠습니다.

 

 군대에 끌려가던 스무 살 젊은 나이에, 나는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우면서 사람한테 욕지꺼리 마구 내뱉는 버릇을 들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주먹이든 군화발이든 개머리판이든 삽자루이든 마구마구 날아와서 두들겨패요. 비무장지대 지오피 조그마한 연병장에서 스물여덟 시간 물 한 모금 밥 한 술 먹지 못하며 얼차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완전군장을 지고 철책을 따라 행군을 하는 얼차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겨울날, 영 도 밑으로 이십 도가 훌쩍 내려간 날씨에 ‘뒤로 기기’를 하며 사격장부터 내무반까지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젊은 나이부터 바보로 뒹굴도록 하는 곳에서 웃음을 찾거나 고운 말씨와 마음을 건사하기란 몹시 힘듭니다. 나는 군대에서 나 스스로 착한 마음을 지킬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슬펐고, 이 슬픔 그대로 착한 마음을 버리며 내 목숨을 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이면 백, 이백이면 백아흔아홉이 웃음을 잃고 고운 말씨와 마음을 버리고야 맙니다.

 

 그러다가 꼭 한 사람, 이백 가운데 백아흔아홉이 바보스러운 짓과 끔찍한 욕지꺼리와 주먹다짐으로 물들거나 찌드는데 꼭 한 사람이 이러한 바보짓과 동떨어진 채 견디었어요. 아니, 견딘다는 말은 올바르지 않아요. 바보짓 굴레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꼭 하나 있었어요.

 

 나는 열여섯 달을 견디다가 열일곱 달째부터 바보짓을 함께 하고 말았는데, 꼭 한 사람 바보짓을 않는 이를 처음으로 보면서 ‘한 사람부터 바보짓을 거스르며 사람짓을 한다면, 사람사랑을 한다면, 이 바보스러운 굴레는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어요. 내 목숨만 건지려고 똑같이 바보짓 굴레에 달겨드는 일이란,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며, 내 목숨을 참다이 살리는 길도 아니라고 느끼며 부끄러웠어요.


.. “땅꼬마, 나처럼 해 봐.” 거인이 돌을 주워 손으로 꼭 쥐자, 돌에서 물이 찔끔 나왔어요. 재봉사는 “그까짓 것쯤이야!” 콧방귀 뀌며 주머니에서 치즈덩어리를 꺼내 돌인 척, 꼭 쥐었어요. 그러자 치즈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나왔지요 ..  (9쪽)


 곰곰이 생각하면,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겪거나 치러야 한다는 군대에 앞서, 중·고등학교 입시지옥은 모든 푸름이들을 바보짓 구렁텅이로 밀어넣습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입시지옥은 푸름이뿐 아니라 푸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마저 바보짓 수렁으로 몰아세워요. 서로서로 똑같이 바보짓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꼴입니다.

 

 왜 사람사랑을 할 수 없을까요. 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할까요. 왜 회사나 공공기관에 일자리를 얻어 펜대를 굴리는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여기는가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어느 어른이나 교사나 이웃이나 살붙이 가운데 나한테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착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동무 가운데에도 ‘우리 함께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구며 살자.’ 하고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거꾸로, 나 스스로 ‘나는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구며 살래.’ 하고 꿈꾸지 못했습니다. 나 스스로 동무들한테 ‘우리 이런 바보짓 굴레에서 벗어나자. 우리 시골에서 흙이랑 살자.’ 하고 먼저 말할 줄 몰랐습니다.

 

 나는 바보짓 하는 사람으로 뒹굴기 싫습니다. 나는 사람사랑을 꽃피우는 사람으로 살림을 돌보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들 먹을 푸성귀를 우리 땅뙈기에서 일구고, 좋은 책과 좋은 말과 좋은 꿈으로 내 살붙이들 마음자락을 아끼고 싶습니다.

 

 온통 물질문명 피바람이 몰아치는 터전이라 하지만, 물질문명이 아닌 사람삶을 헤아리고 싶어요. 내 몸을 움직이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고운 삶길을 찾고 싶어요.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아닌 삶·사랑·사람·꿈을 아끼고 싶어요.


.. 거인은 창피하고 화가 나서 재봉사를 해치우기로 마음먹었어요. 거인은 재봉사를 동굴 집으로 데려가 침대에서 자게 했어요. 하지만 침대가 너무 커서 재봉사는 그냥 바닥에서 잠을 잤지요. 한밤중이 되자 거인은 커다란 쇠몽둥이를 가져와 침대를 쿵, 내리쳤어요 ..  (16쪽)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님이 일군 그림책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읽습니다. 옛이야기 틀을 고스란히 살리며 예쁘장하게 빚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님 나름대로 다시 풀이하거나 읽어낸 대목은 따로 없구나 싶어요.

 

 책끝에는 어린이문학을 비평한다는 김서정 님 덧말이 붙습니다. 김서정 님은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두고 “이 이야기가 주는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36쪽).” 하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가정과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이보다 더 잘 말해 주는 옛이야기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36쪽).” 하고도 말합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주제읽기’로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읽거나 가르치지 싶어요. 초등학교에서건 어린이집에서건 여느 살림집에서건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이러한 틀에 맞추어 읽히거나 이야기하지 싶어요.

 

 그런데, 참말 《용감한 꼬마 재봉사》가 이러한 이야기인가요. 《용감한 꼬마 재봉사》가 ‘집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인가요.

 

 나는 이 그림책을 아무리 읽어도 ‘얼간이 나라에서는 얼간이로 살아갈밖에 없구나’ 하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얼간이 나라에서 얼간이로 살아가면서,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얼간이인 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비꼬거나 비웃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재봉사는 조금도 멋있지 않습니다. 재봉사는 조금도 씩씩하지 않습니다. 재봉사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저 얼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스스로 얼간이가 되면서 ‘바보짓 가운데 가장 꼭대기’인 임금님 자리까지 가고야 맙니다.


.. 온힘을 다해 달려오던 유니콘은 그대로 나무를 들이받아 나무에 뿔이 박히고 말았어요. 재봉사는 유니콘을 산 채로 잡았지요. 하지만 왕은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사나운 멧돼지를 잡아 오라고 했어요 ..  (25쪽)


 나는 생각합니다. 온누리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온누리에는 참말 믿을 사람이 많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내 둘레 사람들한테 믿음직하며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얼간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나라에서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어떤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디디는 흙땅이 살갑고 아리따운 보금자리면 넉넉합니다. 내가 디디는 이곳이 아리따운 보금자리이듯, 내 이웃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 또한 서로서로 아리따우면서 아늑하기에, 이러한 보금자리가 예쁘게 모이고 얼크러지는 아리따운 마을이면 흐뭇하다고 여깁니다.

 

 아리따운 보금자리에는 따로 우두머리가 없어도 됩니다. 공무원이니 국회의원이니 교사이니 무어니 무엇 하나 없어도 돼요. 마을에서도 마을 우두머리란 없어도 됩니다. 서로서로 제 삶을 지을 줄 아는 착한 삶이면 흐뭇해요.

 

 아주 어린 나날 처음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나는 착한 집에서 착한 일꾼이 되어 착한 꿈을 키우는 착한 사랑을 나누며 살겠어.’ (4345.1.12.나무.ㅎㄲㅅㄱ)


― 용감한 꼬마 재봉사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글·그림,임정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6.6.1./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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