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라이온 1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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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에 안은 따스한 도시락
 [만화책 즐겨읽기 55] 우미노 치카, 《3월의 라이온 (1)》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무상급식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주민투표까지 한다 했을 때에 ‘다들 참 할 만한 일이 없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교육이나 복지를 헤아린다면, 모든 학교, 이른바 유아원부터 대학원까지 ‘학교에서 밥을 먹여 주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든다든지 주민투표를 할 까닭이 없어요. 그러나 이토록 마땅한 교육과 복지라 하지만, 나는 ‘무상급식’이라는 이름이든 제도이든 하나도 달갑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낮밥을 거저로 주겠다 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아요. 학교가 군대도 아니고, 무슨 줄세우기도 아니고, 아이들한테 밥판을 하나씩 안겨 차례대로 밥이랑 국이랑 반찬을 받도록 하는 일이 무척 소름돋습니다. 영양을 맞추는 영양사가 밥을 차린다지만,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먹어야 하잖아요. 똑같은 밥에 똑같은 반찬에 똑같은 국을 다 다른 아이들이 똑같이 먹도록 내몰잖아요.

 

 학교급식이란 폭력이라고 느껴요.

 

 아이들은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손수 도시락을 쌀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이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랑 함께 도시락을 쌀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이 다음으로는, 아이들 어버이가 도시락을 싸 줄 때에 아름답구나 싶어요. 사다 먹는 도시락이나 라면으로 때우는 낮밥은 슬프고, 급식을 받아먹는 일은 끔찍하다고 여겨요.

 

 사다 먹을 때에는 그나마 ‘내가 고른다’는 테두리라도 들지만, 급식은 ‘주는 대로 먹는다’가 되고 말아요.


- “강해졌구나. 밥은 잘 먹고 다니니?” (19쪽)


 사람은 산 목숨이에요. 산 목숨은 누구나 먹이를 스스로 찾아요. 나무도 꽃도 풀도 스스로 먹을거리를 찾아요. 뿌리를 뻗고 줄기를 올려 잎을 틔워서 목숨을 이어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씨를 떨구어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 새끼 느티나무가 자란다 하더라도 다 달리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면서 저마다 제 몸에 걸맞게 목숨을 이어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이라 해서 다 같은 나락을 얻지 않아요. 함평에서 흙을 일구든 거창에서 흙을 일구든, 흙을 일구는 일꾼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땀을 흘리고 다 다른 품을 들여요. 집집마다 ‘같은 품종 볍씨’를 심어서 거두더라도, 이 볍씨들 알맹이는 집집마다 같을 수 없어요.

 

 집집마다 다 다른 나락을 거두고, 집집마다 방아질과 키질이 다를 테며, 조리질이나 밥물 안치기가 달라요. 같은 함평쌀 함평 시골집 밥이라 해도 이 집이랑 저 집이 다 다른 밥을 지어요. 같은 거창 시골마을 작은학교 아이들이 싼 도시락 밥이라 하더라도 다 다른 맛 다 다른 사랑 다 다른 숨이 깃들어요.


- “아카리 언니가 그랬어. 특활부에서 중요한 시합이 있다고.” “이겼어.” “그렇구나. 잘됐다!” “히나! 야용이들 밥 챙겨 줘! 그리고 밥상 좀 차려 줄래?” (26쪽)
- “아! 레이 오빠, 이거 갖고 가! 도시락! 좀 크지만 꽉꽉 뭉쳤으니까 괜찮아!” “어! 아, 고마워!” “그리고 반찬이라긴 뭐하지만 이거! 꽤 맛있어!” “고, 고마워!” (40쪽)


 밭에서 뽑은 배추로 김치를 담근다 할 때에도 집집마다 맛이 달라요. 품앗이를 하며 아줌마들이 함께 김치를 담근다 하더라도 집집마다 김치맛이 달라요. 같은 쌀밥에 같은 김치 반찬이라 하더라도, 도시락 뚜껑을 열고 책상을 붙여 마주앉아 밥을 먹을 때면 서로서로 밥이랑 반찬을 돌려먹으면서 다 다른 집 다 다른 사랑 담긴 다 다른 손길을 느끼면서 몸과 마음이 따뜻해져요.

 

 그러니 나는 무상급식이건 유상급식이건 학교에서 밥을 차려서 주는 일이 아주 싫어요.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안 넣을 생각이지만, 학교에 놀러가더라도 학교밥을 얻어먹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집에서 지은 밥을 도시락에 담아 예쁘게 즐기고 싶어요.


- “그런데 딱 생각이 나는 거야. 어제 내가 히나에게 한 말은, 옛날에 엄마가 나한테 하던 말 그대로였지 뭐니.” (132쪽)


 요즈음은 옆지기가 아침마다 마련하는 당근물을 마셔요. 당근을 갈아 낸 물을 마시면 누런쌀로 지은 밥조차 따로 안 먹어도 힘이 솟아요. 시골집에서 시골사람다이 시골살이를 누리는 나날을 잇는다면, 아마 앞으로는 당근물이랑 풀물을 마시면서 곡식은 가루를 내어 먹거나 날로 100번 넘게 냠냠짭짭 씹으며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렇게 되면 우리 식구는 당근물이랑 풀물이랑 곡식가루랑 날푸성귀 몇 가지를 도시락으로 쌀 테지요.

 

 우리 집 같은 밥차림이 아니더라도, 학교급식은 생채식을 하는 사람하고 동떨어져요. 생채식으로 몸을 지키거나 건사하는 사람은 어쩌지요? 달걀이나 밀가루가 몸에서 안 받는 사람은 어쩌지요? 아이들한테 왜 우유를 마시게 하지요? 발효식품을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지요? 아니, 무엇보다 아이들 어버이가 집에서 밥을 하지 않아도 되나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랑 집에서 함께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밥거리를 손질하는 나날을 보내지 않아도 되나요? 아이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기만 하면 똑똑해지나요?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밥은 다른 사람이 해 준다’고 버릇이 들어도 되나요?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집에서 어머니가 싸 주시는 도시락 따스한 손길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여름에도 스텐 도시락통 따스한 기운이 좋아서 부러 무릎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낮밥때가 안 되어서 도시락을 까먹은 적은 없어요. 나는 그저 도시락통 따스함이 좋아 공부하는 때에도 가끔 무릎에 도시락통을 올려놓곤 했어요. 가방을 메면 도시락통 따스한 기운이 등짝으로 퍼지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내가 어린 나날 여섯 해와 푸른 나날 여섯 해(국민학교 1·2학년 때에도 도시락을 먹었는지는 가물가물합니다) 어머니 도시락통 따스함을 고마우며 곱게 아로새기는 만큼, 우리 집 아이들한테도 도시락을 베풀고 싶지, 급식을 우겨넣고 싶지 않아요.


-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앉은 그 사람의 말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어른인데도 나에게 진지하게 “말을 걸어” 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가족 외에 그런 사람은 딱 하나뿐이었다 ..  (152쪽)
- ‘시설에 들어가면, 돌아가도 쭈욱 누군가가 있고, 잠잘 때도 누군가가 있고, 이제 “마음놓울 수 있는 시간”은 365일 중에서 한시도 없어진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찾아왔다. 장례식에는 핏줄을 나누느 친척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그때 방에 들어온 그 사람만이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163쪽)


 사람들 먹는 밥은 사람들 손으로 짓습니다. 사람들 먹는 밥이 될 곡식이나 푸성귀나 물고기나 뭍고기나 여러 가지들은 사람들 손으로 흙과 바다에서 얻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흙을 만지고 흙을 디디며 흙에서 잠을 자면서 숨을 얻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곧 유아원부터 대학원까지 모두, 급식을 안 해야 가장 아름답습니다. 급식을 하지 말고, 교실마다 ‘밥하는 부엌’을 마련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마다 집에서 ‘밥할 먹을거리’를 챙겨, 아이들이 교실에서 스스로 밥을 지어 함께 나누어 먹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겨를’뿐 아니라 ‘밥을 차리고 먹은 다음 치우는 겨를’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고마운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온마음으로 아로새겨야 씩씩하게 튼튼하게 자란다고 느껴요.

 

 참말 무상급식을 한다며 돈 어마어마하게 쓰지 말고, 교실마다 부엌을 마련하는 한편 집집마다 ‘먹을거리 마련할 돈’을 조금씩 보태는 일이 사람이 사람다이 자라도록 돕는 참배움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 돌아가는 길. 바람이 세차게 부는 다리 위에서, 품에 안은 도시락은, 마치, 조그만 생물처럼 따스했다. (84쪽)


 우미노 치카 님 만화책 《3월의 라이온》(시리얼,2009) 1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3월의 라이온》은 2009년 6월에 1권이 옮겨졌는데, 나는 2012년에야 이 만화책을 읽습니다. 내 좋은 벗님이 2009년 6월에 이 만화책이 갓 나왔을 때에 참 재미있고 좋으니 꼭 읽어 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주었는데,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상 이 만화책을 사서 읽지 않았습니다. 우미노 치카 님 다른 만화책 《허니와 클로버》 1권을 읽다가 나로서는 그닥 재미있지 않다고 여겼거든요.

 

 그러나 모르는 노릇이에요. 2009년 그무렵에는 그닥 재미없다고 느꼈을는지 모르나, 2012년 오늘 다시 읽으면 ‘어, 예전에는 몰랐던 재미가 있구나.’ 하고 느낄는지.

 

 모든 책은 처음 갓 나올 때에 읽으란 법은 없거든요. 사람은 나이를 먹기 마련이요,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 마련이에요. 새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고, 따스히 돌아보는 손길을 가다듬기 마련이에요. 더 바빠지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더 느긋해지는 사람이 있어요. 더 사랑스레 거듭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더 메마르고 마는 사람이 있겠지요.

 

 가만히 헤아리니, 내가 우미노 치카 님 만화를 예전에 영 못마땅히 여긴 까닭은 ‘만화에 나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일본사람인데 머리통은 크면서 다리가 너무 길’어요. ‘가느다란 몸뚱이에 여자들 가슴은 되게 커’요. 너무 걸맞지 않고 너무 ‘예뻐 보이게 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이런 모양 이런 모습이 참말 예쁜 모습인지 알쏭달쏭해요. 다리가 길도록 그림을 그려야 예쁜이 모습이 될까요. 가슴을 크게 그려야 예쁘장한 여자 모양새가 되나요.

 

 만화쟁이마다 ‘취향’이 있으니, 취향대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나무라거나 탓할 수 없어요. 그저, 이런 취향이 자꾸 도드라져 눈에 걸리면 만화책 하나에 살가이 담아 나누려는 애틋한 꿈과 사랑과 믿음과 이야기가 자꾸 흐리멍덩해지고 맙니다.

 

 예쁜 그림을 보여주자는 만화는 아닐 테니까요. 때로는 예쁜 그림만 보여주려는 만화를 그리는 분이 있는데, 《3월의 라이온》이나 《허니와 클로버》가 예쁜 그림을 내세우려는 만화는 아니겠지요.

 

 품에 안은 따스한 도시락 좋은 기운이 ‘아픔과 슬픔을 먹고 자란’ 누구한테나 고운 웃음과 눈물로 스며들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4345.1.6.쇠.ㅎㄲㅅㄱ)


― 3월의 라이온 1 (우미노 치카 글·그림,서현아 옮김,시리얼 펴냄,2009.6.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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