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숲의 아카리 9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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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없는 한국 새책방은 무엇을 지킬까
 [만화책 즐겨읽기 101]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9)》

 


 시골은 군입니다. 시이면서 시골도 있겠지요. 도에서는 시이면서 시골인 곳이 많으니까요. 거꾸로 군이요 읍이면서 도시와 똑같은 데도 꽤 많아요.

 

 어쨌든, 군에서는 읍과 면과 리로 나눕니다. 시에서는 구와 동으로 나눕니다. 군에는 군청과 읍사무소와 면사무소가 있습니다. 시에는 시청과 구청과 동사무소가 있습니다. 군청은 시청과 같다 할 만하고, 읍사무소는 구청과 같다 할 만하며, 면사무소는 동사무소와 같다 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정작 들여다보면 군청은 시청보다는 구청하고 비슷한 크기요 짜임새이기 일쑤입니다. 읍사무소는 면사무소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동사무소와 비슷하다 할 만합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웬만한 도시 여느 시청이랑 같은 자리에 놓자면 도청이 되는구나 싶어요. 시골 군청은 웬만한 도시 구청하고 같은 자리에 있구나 싶고요.

 

 내가 살던 인천에서 드나들던 동사무소는 어디에서나 참 작았습니다. 사람 많이 살거나 가게 많이 있는 동네 동사무소는 으레 일꾼이 쌀쌀맞거나 딱딱하곤 했습니다. 사람 적게 살거나 가게 적게 있는 동네 동사무소는 으레 일꾼이 한갓지면서 어영부영이곤 했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곧잘 면사무소에 드나듭니다. 예전 시골 어르신들은 면서기만 되어도 꼼짝 못하시기도 했다지만, 나는 도시에서 살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군청에 볼일 보러 드나들면서 야코죽지 않았어요. 만날 사람을 만나고, 나눌 얘기가 있어 전화를 겁니다.

 

 전라남도 고흥으로 살림을 새로 옮기며 여러모로 도움을 받거나 서류를 떼거나 내야 할 일이 많아 아직 군청이나 면사무소를 곧잘 드나듭니다. 이때에 여러 기관 일꾼들 매무새와 말씨와 여러 가지를 가만히 살피면, 면사무소 일꾼은 참 작구나 하고 새삼 느끼고, 이 작은 면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은 군청 일꾼이랑 대면 더 작다고 느낄 수 있겠구나 싶어요. 이런 흐름이라면, 면사무소 일꾼이 군수님 나들이를 한다 할 때에 어떻게 나오겠느냐 하고 쉬 그림을 그릴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구청장이 동장을 찾아간다고 할 때에, 시장이 구청을 찾아간다고 할 때에 어떠하겠느냐 하는 그림이 쉬 나와요.


- ‘변해 가고 있어. “바벨의 도서관”에서 테라야마 씨를 끌어내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뜻인가?’ (25쪽)
- ‘미도리 씨와 깨끗이 사귈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96쪽)


 무늬로 치면, 도시 동사무소랑 시골 면사무소이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동이랑 면은 달라도 참으로 다릅니다. 동사무소가 깃든 시내에는 밥집 많고 술집 많으며 찻집이랑 빵집이랑 피시방이랑 이것저것 많은 한편, 드문드문 책방이 있습니다. 면사무소 깃든 시골 면내에는 빵집이란 구경하기 힘들고, 밥집이나 술집은 띄엄띄엄 있으나, 피시방 또한 좀처럼 구경하지 못합니다. 면에서 책방이 있는 시골이 한국에 몇 군데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에서는 ‘동네책방’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아니 아직까지 제법 씁니다. 시골에서는 ‘면내책방’이라는 말을 쓰지 못합니다. ‘읍내책방’이라는 말도 좀 힘들어요. 읍내라지만 책방 없는 읍이 꽤 많습니다. 아니, 책방 사라진 읍내라고 해야 걸맞겠지요. 읍내책방이 있다 하더라도 읍내책방은 아주 이름난 작가와 퍽 커다란 출판사에서 낸 책이 아니고는 갖추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책이라 하더라도 팔기에 수월하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책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아니 아이들은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지, 여느 책들을 들여다보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새끼가게는 시골 읍으로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롯데리아 같은 가게는 시골 읍내까지 파고든다지만,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는 읍내나 면내에 자그마한 새끼가게를 낼 생각을 하지 않아요.


-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없어요. 혹시 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거든요. 당신은 그런 책이 없나요?” “있습니다.” “서점은 이런 뜻밖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아요.” (59∼60쪽)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 읍내에는 롯데리아마저 없습니다. 롯데리아는 웬만한 시골 읍내에 다 들어가는데, 고흥군만큼은 찾아들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흥 읍내에는 롯데리아이든 맥도널드이든 케이에프시이든 뭐든 없군요. 지난해 시월 즈음 베스킨라빈스가 군청 가는 네거리 모퉁이에 조그맣게 열었는데 얼마나 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깊디깊은 시골 읍내에 이런 가게가 들어서는 일이 참 놀랍습니다. 이른바 ‘체인점’이라 하는 새끼가게가 거의 없는 읍내인데, 이러한 새끼가게는 얼마나 이름값을 치르면서 가게를 버틸 만할까요.

 

 시골에서 시골살이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도시살이를 할 때하고는 아주 다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삶이 다르고 삶자락이나 삶결 모두 다르거든요.

 

 나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가 서울에서 부산이나 인천이나 대구나 전주나 광주나 …… 온 나라 곳곳으로 새끼가게를 뻗치면서 지역책방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일을 몹시 싫어합니다. 이름과 돈과 적립금으로 밀어붙이는 이 끔찍한 일을 책마을에서도 버젓이 저지르는 꼴을 보기 싫습니다.

 

 그런데, 면내책방이란 아예 없고, 읍내책방은 참고서 장사나 문방구 장사에 기대는 시골가게 살림을 돌아본다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데가 ‘시골 읍면 작은책방 새끼가게’를 여는 쪽으로 물꼬를 바꾼다면, 좀 달리 바라볼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 “그 만화책을 놔둠으로써, 실용서적을 놔둘 귀중한 공간이 하나 사라져요. 그 만화책이 팔리면 코믹 매장의 매출은 올라가지만, 실용서적의 매출에는 득이 안 되죠. 예전에 일했던 지점에서는 이 정도로 뚜렷하게 갈리지 않았거든요. 책은 넘쳐나지만 공간은 한정돼 있으니까요. 서점 전체를 위하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86쪽)
- “한국에서는 할인 경쟁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원래 서점 숫자가 일본에 비해 적어서 인터넷뿐 아니라 점포로 고객을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우선 할인 이외의 서비스로 다른 서점과의 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군요.” “한국에서는 서점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점포에서는 고객이 책을 찾을 때 친절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고객도 그런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작은 배려를 무척 반깁니다.” (167쪽)


 롯데리아조차 없는 고흥군 읍내이지만, 편의점은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없으나 편의점만큼은 있어요. 다만, 편의점조차 거의 없기는 한데, 면소재지 가운데에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편의점으로 살짝 무늬만 바꾼 곳도 있어요.

 

 나는 이들 면소재지 편의점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교보문고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지점’을 열고, ‘교보문고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지점’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교보문고가 이렇게 새끼가게를 연다고 하면, 나는 교보문고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영풍문고가 고흥군 포두면이나 풍양면 소재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작은책방 지점’을 열어서, 마을 어린이와 젊은이와 어르신 모두한테 책삶을 베푸는 길을 빚으려 한다면, 나는 영풍문고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장사를 꾀하는 이런저런 대형서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군청이나 도청에서 ‘시골 읍내책방·시골 면내책방’ 정책을 세워, 시골사람이 도란도란 모여 책이야기 꽃을 피우고 스스로 책을 장만하는 길을 마련하며, 시골 젊은이가 시골 한켠 책방 일꾼으로 뿌리내리면서 문화와 삶을 나누는 밑바탕이 되도록 뒷배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옛말 그대로 낮에는 들판과 바다에서 땀흘려 일을 합니다.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면소재지에 살짝 들러 ‘면소재지 작은책방’에서 마음밥 살찌우는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돌아와 읽습니다. 책값을 돈으로 내기 힘들면 ‘농약과 비료 안 친 정갈한 푸성귀’를 내면 되지요. ‘무농약 친환경 무’ 몇 뿌리라면 책 한 권 살 만한 값이 됩니다. 그러면, 면내 작은책방에서는 이 ‘무농약 친환경 무’를 현물로 받아 면소재지 면사무소나 학교나 소방서나 경찰서나 은행이나 이런저런 데에서 일하느라 ‘흙을 일구지 못하는’ 사람한테 팔 수 있습니다. ‘면내 작은책방’에서 인터넷방을 열어 이러한 ‘무농약 친환경 푸성귀’를 예약주문을 받고, 시골 흙일꾼 할매 할배한테서 틈틈이 현물을 받아서 보낼 수 있으며, 이동안 시골 흙일꾼 할매 할배는 현물로 낸 푸성귀 값을 ‘책을 살 수 있는 돈’이나 ‘책을 안 사고 맞돈으로 받아도 되는 제도’로 슬기롭게 세우면, 그야말로 어여쁜 시골 삶꽃 책꽃이 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시오미 씨는 언제 봐도 근사해. 미인이고 똑 부러지고 좋은 냄새가 나고, 유능하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결혼을 못해도 좋으니 저런 식으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 (107쪽)
- ‘조금씩 변해 가는 걸까.’ (160쪽)


 이소야 유키 님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9권을 읽습니다. 9권째에 이르니,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사이에 ‘서로 엇갈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야흐로 무르익습니다. 그러나, 《서점 숲의 아카리》는 책이름 그대로 “서점 숲” 이야기인 만큼, 사랑이야기는 살며시 접고는, 책이야기로 흐릅니다. 책을 바라보고 책마을을 걱정하며 책삶을 아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펼칩니다.

 그러다가 툭 하고 한 마디 내뱉듯 적바림하면서 9권을 마무리짓습니다. 너무도 마땅하고 참으로 옳으며 그야말로 즐거운 말마디입니다. ‘책에는 길이 없잖아.’


- ‘대체 이게 뭘까? 책에는 답이 적혀 있지 않은 건가?’ (179쪽)


 책에는 길이 없어요. 흔한 말로 ‘책에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책을 읽어도 책에서 길을 찾을 수 없어요. 책에서 길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북돋울 때에 나 스스로 길을 열어요. 그러니까, 책을 읽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열 기운을 얻는다 할 수 있을 테지만,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람을 읽고 삶을 읽으며 자연을 읽고 몸뚱이를 읽으며 길을 찾아요. 책이란, 사람과 삶과 자연과 몸뚱이를 오롯이 갈무리하여 간추린 알맹이입니다. 알맹이를 훑으며 슬기로이 깨닫기도 하지만, 어느 목숨붙이라 하든 알맹이만 먹지 않아요. 이를테면, 밥을 먹으며 씨눈을 먹어야 비로소 영양을 먹는다 하지만, 씨눈만 먹어서는 영양조차 못 먹는 셈이에요. 씨눈이랑 씨눈을 덮은 쌀 몸뚱이(알맹이가 아닌 테두리)를 함께 먹어야 해요.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바람을 들이킵니다. 골고루 맞아들이면서 햇살 또한 온 살갗으로 받아먹어요.

 

 책에 길이 없을 수밖에 없어요. 책이란 바로 ‘씨눈’이거든요. 씨눈만 먹는대서 목숨을 잇지 못하거든요. 씨눈을 먹어야 내 몸을 참다이 빛내며 돌본다지만, 씨눈만 먹고 쌀알을 안 먹는다든지, 씨눈은 먹되 물을 안 마시거나 바람을 안 들이키거나 햇살을 받아먹지 않으면 어찌 되나요.

 

 이제 《서점 숲의 아카리》 10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로 ‘책을 읽는 삶에는 길이 없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 하는 꿈과 사랑을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4345.1.4.물.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9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9.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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