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51) 존재 151 : 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

 

.. 많은 서점의 취재 협조가 있기에 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소야 유키/설은미 옮김-서점 숲의 아카리 (5)》(학산문화사,2010) 191쪽

 

 “많은 서점의 취재 협조(協助)가 있기에”는 “서점들이 취재를 도와주었기에”로 다듬습니다. “-하는 것입니다”는 “-합니다”로 손보고, ‘감사(感謝)합니다’는 ‘고맙습니다’로 손봅니다.

 

 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 이 만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 만화가 있습니다
→ 이 만화가 태어납니다
 …

 

 이 보기글은 번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일본사람 일본글을 한국글로 무늬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일본사람 일본 글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기에 무늬는 한글이라 하지만 한국글이라 할 수 없어요.

 

 번역하는 분이 너무 바쁜 나머지 번역을 못했을 수 있습니다. 책을 내는 곳에서 너무 바쁜 탓에 한국글로 가다듬지 못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번역 아닌 번역이 참 많습니다. 번역 아닌 번역으로 책을 내놓아도 사람들은 잘 읽습니다. 잘 읽고 잘 새기다가는 어느새 이러한 번역 글투에 젖어듭니다.

 

 처음에는 올바르지 않은 줄 알거나 느끼다가도,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칩니다. 더 지난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번역 글투로 글을 쓰고, 이 글투가 내 말투로 스며듭니다.

 

 이 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만화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

 

 사람들 눈과 손과 입과 귀에 익은 글투도 한국 글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날 한국사람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글투나 말투라면 애써 손사래치거나 물리치거나 나무랄 수 없다 말할는지 모릅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요.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하면 그만일 테니까요. 고개를 젓고 눈을 감으면 그만이라 하니까요.

 

 그러나 나로서는 눈을 감지 못하고 고개를 젓지 못합니다. 나는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인걸요. 나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사람인데요.

 

 가장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꿈을 말 한 마디에 싣고 싶습니다. 가장 어여삐 어깨동무하고픈 사랑을 글 한 줄에 담고 싶습니다. (4345.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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