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파 1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삶
 [만화책 즐겨읽기 102] 아시나노 히토시, 《카페 알파 (1)》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책에 깃든 좋은 꿈을 받아들입니다.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푸성귀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사랑을 담은 좋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빈틈이 없도록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지는 않습니다. 빼어난 솜씨로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춤을 춘다 해서 사람들 가슴을 움직이지는 않아요.

 

 빈틈이 있다 하더라도, 솜씨가 어설프더라도, 여러모로 허술하더라도, 이래저래 모자라더라도,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돈으로 이루지 못하거든요. 사랑이란 이름값이나 힘줄로는 거머쥐지 못하거든요.


- “아, 자네 로보트라구? 좋겠군. 튼튼해서. 나 같은 늙은인 몸이 삐그덕거려서 말야.” “후훗, 그럼 바꿀까요?” (14쪽)
- “난 이곳이 좋아요. 이렇게 할아버지랑 얘기도 하고, 바다도 보고. 붐비고 시끄러울 때도 혼자 있을 때도 모두 좋아요.” (34쪽)


 백 살을 살거나 이백 살을 살아야 더 즐겁지 않습니다. 쉰 살을 살거나 스물다섯 살을 산대서 더 슬프지 않습니다. 내가 누릴 사랑을 오롯이 누릴 때에 내 삶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나눌 꿈을 살뜰히 나눌 때에 내 삶이 빛나요.

 

 이웃이 어렵기에 돕는다 할 적에, 누군가는 큰돈을 내놓을 수 있고 누군가는 푼돈을 내놓을 수 있는데, 누군가는 돈푼 하나 못 내놓을 수 있습니다. 돈이 없기에 밭에서 배추나 무를 뽑아서 건넬 수 있고, 품을 팔아 집일을 거들 수 있으며, 이도저도 안 되어 마음으로 사랑을 보낼 수 있어요.

 

 2만 원은 1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3만 원은 2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천만 원은 1만 원보다 크지 않으며, 1억 원 또한 1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얼마만 한 돈이 되든 마음보다 클 수 없어요.

 

 네 살 아이는 폴짝폴짝 뜁니다. 다섯 살 아이도 폴짝폴짝 뜁니다. 두 살 아이는 콩콩 뜁니다. 열 살쯤 되거나 열다섯 살쯤 된다면 껑충껑충 뛰겠지요.

 

 어떻든 모두 뜁니다. 높이 뛰든 낮게 뛰든 뜁니다. 함께 뜀박질을 하면서 놉니다. 서로 뜀뛰기를 하고 나란히 달리기를 합니다. 더 빨리나 더 늦게는 없어요. 다 같이 즐거이 어우러집니다.


- ‘요 몇 년 동안 세상도 꽤 많이 변했다. 시대의 황혼기가 이렇듯 느긋하고 평화스럽게 오는 것이라니. 난 이 황혼의 세상을 천천히 보며 간다는 생각이 든다.’ (23쪽)
- “그러고 보니 이빨을 보기 전까진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키타히로가 혼자 있기 때문에 놀러왔을지도 몰라.” (54쪽)
- ‘미사고는 이빨까지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따뜻해지자 멍해져서.’ (59쪽)


 빠른기차를 타고 몇 시간만에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빠른찻길을 내달려 몇 시간 들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가용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시간은 더 줄입니다. 퍽 멀리 볼일을 보아야 하니 빨리빨리 오갈 수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서울하고 부산만 보입니다. 누군가로서는 서울이랑 부산을 더 줄이는 길을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서울도 부산도 아닌 문경이나 영동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로서는 서울도 부산도 바라보지 않고 옥천이나 양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기찻길이 놓이면 거칠 데 없이 시원하게 달린다고 합니다. 이 기찻길한테 자리를 내줄 시골사람은 언제나 기차소리를 듣습니다. 기차를 탈 일도, 기차를 타고 더 빨리 어디로 오갈 일도 없다지만, 시끄러운 소리와 매캐한 먼저를 늘 들이마셔야 합니다.

 

 송전탑 둘레로는 전자파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니 사람한테 안 좋답니다. 사람한테 안 좋은 송전탑이 나무나 풀이나 흙이나 냇물에 좋을 수 없습니다. 큰도시이든 작은도시이든 송전탑이 서지 않습니다. 도시에 서더라도 바깥이나 변두리에 섭니다. 도시 한복판에 송전탑이 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는 송전탑이 버젓이 서고, 송전탑한테 논이랑 밭이랑 멧등성이를 내주어야 합니다. 전기 쓸 일이 드문 시골사람은 송전탑을 끼면서 살고, 전기 쓸 일이 많은 도시사람은 송전탑은커녕 발전소조차 곁에 두지 않아요.


- ‘모두 자기 방식대로 보고 있다. 지금은 옛날만큼 계절이 분명하지 않지만, 모두 전보다도 사물에 깊이 감동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128쪽)


 우리들 살아가는 이곳은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빚지 않아도 다들 잘 살아간다 하는 우리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쓰레기를 스스로 돌보지 않는 우리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깨끗하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만큼, 새로 세우는 도시만큼, 건축쓰레기를 어디로 버리고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피지 않는 이 나라는 얼마나 살 만한다 여겨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웃습니다. 사람들은 웁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면서 웃거나 우는지 궁금합니다. 팔랑거리는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며 웃을 줄 아는지, 지는 꽃잎을 들여다보며 우는지 궁금합니다. 밭을 일구며 지렁이를 만나 웃는지, 물고기 비늘을 다듬으며 우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웃고 언제 울며, 어떻게 웃고 어떻게 우는지 궁금합니다.


- ‘난 로보트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마만큼이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까.’ (16쪽)


 아시나노 히토시 님 만화책 《카페 알파》(학산문화사,1997) 1권을 읽습니다. 느리게도 느긋하게도 한갓지게도 아닌, 살아가는 빠르기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을 읽습니다.

 

 느리게 산대서 더 나은 삶이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살거나 한갓지게 살기에 더 좋은 삶이지 않아요.

 

 저마다 알맞게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누구나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때에 기쁩니다. 패스트푸드도 슬로푸드도 우리한테 좋을 수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집에서 우리 땀을 들여 우리 손으로 거두고 우리 식구가 누리는 우리 밥그릇 하나가 좋습니다. 밥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거든요.

 

 볍씨를 갈무리해서 모를 내고 모를 심고 물을 대며 풀을 뽑고 나락을 거두어 나락을 훑고 나락을 찧고 비로소 쌀을 얻습니다. 쌀은 날로 씹어먹을 수 있고, 먼지를 잘 씻고 돌을 일어 물에 불린 다음 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빠르다 하면 가게에서 사다 먹을 때에 빠르겠지요. 느리다 하면 볍씨를 갈무리해서 심어서 거두는 삶이 느리겠지요.

 

 그러나,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린지 모르겠습니다. 빠르거나 느리다고 나누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게 돌볼 삶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좋게 사랑할 살붙이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좋게 꿈꾸는 하루를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고운 목숨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 새롭게 빛내는 목숨을 예쁘다고 못 느끼는 쳇바퀴가 된다고 느낍니다. (4344.12.31.흙.ㅎㄲㅅㄱ)


― 카페 알파 1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199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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