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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줘, 내 모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2
우메다 슌사쿠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가슴에서 싹트는 사랑과 미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5] 우메다 슌사쿠, 《돌려 줘, 내 모자》(시공주니어,2005)
새해가 되면 두 살이 될 갓난쟁이가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잡니다. 아토피 때문에 얼굴과 머리가 가려운 갓난쟁이는 잠을 자다가 자꾸 머리와 얼굴을 복복 긁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자그마한 양말을 아이 손에 하나씩 뒤집어씌웁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팔베개를 하거나 배에 올려주어야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잡니다.
밤새 우는 아이 달래며 이처럼 잠을 들자면 몹시 힘듭니다. 아기는 젖을 물어야 하기에 어머니 품에서 이렇게 사랑받으며 잠들어야 할까요. 아이 아버지가 아기를 잘 다독이고 구스르면서 재울 수 없을까요.
밤마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웁니다. 잘 자다가 쉬를 해서 밑이 축축하다며 자지러지게 웁니다. 아침과 낮에는 똥을 푸지게 누고도 울지 않으면서, 꼭 밤에 자다가 쉬를 누면 자지러지게 웁니다. 밤마다 식구들 잠을 안 재우겠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밤잠을 달게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런 나날은 앞으로 한두 해 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한 먼 꿈과 같겠지요.
.. “이렇게 한 코 한 코 짜다 보면,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난단다. 그러면 심술궂은 사람도, 욕심 많은 사람도, 다 이 할머니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 (7쪽)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온몸과 온마음에 아로새길 아이들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넉넉하면서 살가이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날마다 스물네 시간을 함께 지내는 어버이는 날마다 스물네 시간 사랑을 듬뿍 나눌 수 있어요.
어느 어버이는 하루에 몇 시간 겨우 사랑을 나누겠지요. 어느 어버이는 여러 날 사랑을 나누지 못하며 떨어져 지내겠지요.
어쨌든 아이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사랑받는 아이도 자라고, 사랑 못 받는 아이도 자랍니다. 사랑받는 아이는 오래오래 사랑받은 결을 곱게 품으며 자랍니다. 사랑 못 받는 아이는 어딘가 허전한 느낌으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 둘하고 살아가는 바쁜 나날이지만,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틈틈이 내 어린 나날을 되새깁니다. 두 아이 아버지인 나는 어릴 적 내 어버이한테서 어떤 사랑을 받았을까. 나는 어떤 사랑을 내 몸과 마음에 새겼을까. 나는 오늘 이곳에서 두 아이와 옆지기한테 어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일까.
..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고 나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그날 밤 할머니는 혼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 머리에 어쩌다 흉터가 생겼는지 아버지께 들었다 .. (15쪽)
맑은 물을 맑은 넋으로 마시며 맑은 꿈을 꿉니다. 좋은 밥을 좋은 땀으로 지으며 좋은 힘을 얻습니다. 따사로운 이야기를 따사로운 말씨로 들려주며 따사로운 사랑을 빚습니다. 어버이로서 어떤 보금자리를 일구고, 어떤 살림을 꾸리며, 어떤 생각을 낳아야 할까요.
아이들이 받아먹는 사랑이란 어버이 스스로 살아내며 누리는 사랑일 텐데, 어버이인 나부터 오늘을 얼마나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즐거이 보내는가요. 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웃음씨앗 나눌 노릇입니다. 내 얼굴에 찌푸린 주름살 가득하면서 아이들 낯에 예쁜 웃음빛이 감돌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일하고 함께 밥먹으며 함께 잠듭니다. 함께 걷고 함께 뛰며 함께 노래하다가는 함께 뒹굽니다. 한겨울에도 햇살은 곱게 내리쪼이고, 한겨울에도 시골집 마당 빨래줄에는 기저귀가 보송보송 마릅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이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햇살이라면, 느긋할 때나 힘겨울 때나 한결같이 집식구 아낄 줄 아는 사랑일 때라야 좋은 살림살이 돌본다고 하겠구나 싶습니다. 모두모두 좋은 마음 받아먹기를 꿈꾸고, 서로서로 좋은 이야기 길어올리기를 빌며, 다 함께 좋은 손길로 어깨동무하기를 비손합니다.
.. 나는 요지에게 덤벼들었다. 요지는 꺅 소리를 지르면서 내 얼굴을 마구마구 할퀴었다. 하지만 나는 얻어맞아도 걷어차여도 나뒹굴어도 손을 놓지 않았다 .. (23쪽)
우메다 슌사쿠 님 그림책 《돌려 줘, 내 모자》(시공주니어,2005)를 읽습니다. 가을날 가을빛이 감도는 그림책이네, 하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흙바닥에서 뒤엉켜 구르는 겉그림을 보면서도 ‘싸우는 아이’ 같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두 아이는 더 애틋하게 누리거나 보듬는 사랑이 어느 한켠에서 모자라거나 아쉽거나 애타는 나머지, 이렇게 뒹굴겠지요.
이 아이는 왜 저 아이를 괴롭힐까요. 저 아이는 왜 이 아이한테서 놀림을 받을까요. 이 아이는 왜 저 아이를 괴롭히며 킥킥 웃을까요. 저 아이는 왜 이 아이한테서 받은 생채기를 고스란히 할머니한테 화살을 돌릴까요.
.. “할머니, 내가 해냈어요.” 모자를 쓰고 흉터 자리를 톡 두드리자, 할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 (31쪽)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응어리를 풉니다. 툭탁거리든 흥 하고 토라지든 이야기를 나눌 때에 앙금을 털어냅니다. 가슴에 묻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어요. 곱게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조곤조곤 나눌 이야기라고 느껴요.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눕니다. 슬기로움도 나누고 어리석음도 나눕니다. 기쁨은 북돋우고 슬픔은 덥니다. 슬기로움은 꽃피우고 어리석음은 씻습니다.
나한테 좋은 넋이 더 크다 해서 내가 더 잘나지 않아요. 나한테 돈이 더 있거나 내가 밥 한 그릇 더 먹었대서 내가 더 배부르지 않아요. 나한테 있는 사랑이란, 나누라는 사랑입니다. 나한테 모자란 사랑이란, 이웃과 동무한테서 얻으라는 사랑입니다.
가만히 들려주고 살며시 받습니다. 찬찬히 건네며 지긋이 얻습니다. 조용조용 어깨동무하면서 씩씩하게 두레를 합니다.
그림책 《돌려 줘, 내 모자》에 나오는 ‘할머니가 뜨개한 모자 빼앗긴 아이’는 ‘모자를 빼앗은 아이’한테서 모자를 되찾지 않아요. 모자는 스스로 되찾아요.
왜냐하면, 아이는 동무 때문에 모자를 잃지 않았어요. 아이는 스스로 모자를 잃었어요. 스스로 잃은 모자를 스스로 되찾습니다. 스스로 잃은 모자를 스스로 되찾으면서, 스스로 잃은 동무를 스스로 다시 사귀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가슴에서 싹트는 꿈이면서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미움도 시샘도 괴로움도 똑같이 내 가슴에서 싹틉니다. (4344.12.30.쇠.ㅎㄲㅅㄱ)
― 돌려 줘, 내 모자 (우메다 슌사쿠 글·그림,김난주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5.7.30./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