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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사토 토미오 지음, 임향자 옮김 / 포토스페이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사진을 꼭 잘 찍어야 하지 않아요
[찾아 읽는 사진책 73] 사토 토미오, 《카메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포토스페이스,2010)
나는 사진을 따로 배운 적 없습니다. 나는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를 찬찬히 배운 적 없습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는 그만둔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 부전공 수업을 들으며 한 학기 동안 보도사진 강의를 들은 적 있습니다만, 이때에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를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이때에 배운 한 가지는 ‘사진으로 신문읽기’입니다.
내 손으로 사진기를 처음 쥔 때는 국민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나 싶고, 그 뒤로 다시 쥔 때는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였지 싶으며, 그 다음으로는 1998년 봄입니다. 군대에서는 몰래 사서 들여온 1회용사진기로 ‘바보스러운 군대살이 기리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때로는 이 1회용사진기로 ‘중대 기념 사진’을 찍었어요. 이를테면 진급 행사 사진이라든지, 훈련을 나가기 앞서 찍는 기념 사진을 1회용사진기로 담았습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내가 가진 ‘바보스러운 군대살이 기리는 사진’은 몇 없으나, 이 몇 안 되는 사진으로 그무렵 군대살이가 그야말로 얼마나 바보스러웠는가를 또렷이 되새길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중대장이든 대대장이든 연대장이든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면 안 됩니다. 연대에는 ‘사진병’이 한 사람 있으나, 공식 행사만 찍도록 허락할 뿐, 다른 때에는 사진기를 들고 다녀도 안 돼요. 더군다나 제가 구르던 군대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 비무장지대였어요. 땅그림으로 치면 남녘땅 아닌 북녘땅이라 할 만한 데에서 군대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군대살이를 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데에서 군대살이를 한 줄 아무도 모를 테야. 그야말로 사진 하나라도 남겨야 해.’ 하고 말하기 일쑤였어요. 다들 휴가 나가서 돌아오는 길에, 또는 외박이나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1회용사진기 하나 어떻게든 몰래 숨겨 들여오려고 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철책에서 여느 때 경계근무를 서면 영하 삼사십 도는 우스웠어요. 한겨울 혹한기훈련이라면서 뛸 때에는 외려 영하 이삼십 도밖에 안 되었어요. 왜냐하면, 훈련은 새벽부터 저녁까지만 뛰니까, 이때에는 이삼십 도이고, 경계근무는 한밤에 서니 삼사십 도를 밑돌았어요. 갓 스물을 넘은 사람들이, 때로는 겨우 열여덟 열아홉밖에 안 된 사람들이, 드센 바람과 추위와 땡볕에 시달린 나머지 벌써 주름이 지고 시커맸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굳이 사진으로 담으려고들 했어요. ‘전역해서 사회로 돌아가면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믿지 않겠니?’ 하면서, 나중에는 하사관과 소대장과 중대장까지 ‘발벗고 나서서(?)’ 1회용사진기를 몰래 들여와 훈련이나 이런저런 자리에서 ‘기리는 사진(기념이라는 말은 어쩐지 안 어울립니다. 참말 기리는 사진이라고 해야 어울립니다)’을 신나게, 그렇지만 대대장한테 안 걸리도록 몰래, 마음껏 찍곤 했습니다.
사토 토미오 님이 쓴 《카메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포토스페이스,2010)를 읽고 나서, 어쩐지 군대에서 사진 찍히고 찍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에도 사진을 찍은 셈이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기쁨, 피사체와 마주쳤을 때의 기쁨,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을 때의 기쁨, 자신의 사진을 누군가로부터 칭찬받았을 때의 기쁨, 이 모든 것들이 뇌를 활성화시키는 ‘마음의 비타민’이 된다(23쪽).”는 말 때문은 아닙니다.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참말로, 모진 군대에서 ‘기리는 사진’ 하나는 새까맣게 죽은 얼굴이던 열여덟 살부터 스물여섯 살 사이 군인들한테 ‘죽음터 같은 곳에서 버티는 힘’이 되었구나 싶어요.
제 군대 적 사진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백이면 백 한결같이 말합니다. “참 불쌍해 보인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참 어리고 젊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고 젊은 사람들 얼굴이, 모습이, 삶이, 그림자가 참 불쌍해 보인답니다.
지구별 어느 곳에서는 고작 서너 살밖에 안 된 어린이가 모진 전쟁통에 시들거나 들볶이며 애늙은이 얼굴이 되기도 하겠지요. 한국땅에서는 군대로 끌려가는 사내들 얼굴이 참으로 들볶이고 시달리며 ‘젊은늙은이’ 얼굴이 되고 맙니다. 아무래도, 그때에 사진이라도 하나 있으니 억지스레 웃으면서 참거나 견디었겠지요.
사토 토미오 님은 말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도 셔터만 누르기만 하면 누구나 사진은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소통의 도구이고, 피사체에 대한 공감이며 애정이다. 당신이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당신이 늘 바라보던 일상적인 시선에 의해서 드러난 풍경이다.어쩌면 꼬마는 항상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어른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을 때뿐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아이들과 같은 시선으로 눈높이를 낮춰서 마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42∼43쪽).” 하고. 나는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1998년 봄부터 대학교는 그만두고 신문배달 일꾼으로 일하며 작게 살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어떻게 들어간 대학교를 왜 이리 일찍 그만두려 하느냐 말렸고, 한 해만 더 다니기로 하면서 전공 수업은 안 듣고 신문방송학과 부전공 수업만 챙겨 들었습니다. 이러며 함께 들은 보도사진 강의에서 ‘사진으로 신문읽기’를 처음 배우는 동안 ‘서울 10대 중앙일간지’ 사진기자와 편집기자가 어떠한 눈길과 어떠한 몸짓과 어떠한 생각과 어떠한 삶으로 ‘똑같은 사건·사고 똑같은 사람 똑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 다른 목소리와 느낌과 모습으로 자르거나 엮거나 만지작거리는가를 깨닫습니다.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는 배우지 못했으나, 이보다 큰 무언가를 배웠어요. 내가 들려주는 말은 ‘내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들려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야말로 착하게 말할 수 있으나, 나는 더없이 모질거나 못되게 말할 수 있어요. 나는 꾸밈없이 바라보며 느낄 수 있지만, 나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눈길이나 눈썰미로 겉훑기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따사롭거나 사랑스레 바라볼 수 있는 한편, 아주 차갑거나 매몰차게 등돌릴 수 있어요.
이제 와 돌이키면,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란 어느 누구도 가르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대학교에서든 고등학교에서든, 외국에서든 문화강좌에서든, 사진을 가르칠 수 없다 할 만한지 모릅니다. 가르치려 한다면, 또 배우려 한다면 ‘삶’을 가르치거나 배웁니다. ‘사랑’을 가르치거나 배웁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웁니다.
사진은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글과 그림과 춤과 노래와 연극과 영화 또한 배우거나 가르치지 못합니다. 배우거나 가르친다면, ‘사진을 읽는 삶’을 배우거나 가르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랑’을 배우거나 가르쳐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떠한 사람인가를 배우거나 가르칩니다. 어디에서 살아가고 어디에서 사랑하며 어디에 선 사람인가를 배우거나 가르쳐요. 그래서, 나는 군대에서 사진을 배운 셈입니다. 군대에서 1회용사진기로 ‘기리는 사진’을 찍히고 찍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사진을 배운 셈입니다. 군대를 용케 마치고 목숨을 건져 사회로 돌아온 뒤에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 보도사진 강의를 들으면서 ‘사진으로 삶읽기’를 배운 셈이에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피사체인 여성을 먼저 좋아하라는 것이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만, 카메라의 눈은 정직하다. 촬영자인 당신이 피사체에 대해서 관심도 애정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런 메마른 감정이 사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44쪽).” 같은 말을 찬찬히 되읽습니다. “느낀 그대로를 찍는다. 느낀 그대로 셔터를 누르면 그것이 최고의 표현이 된다. 일부의 고지식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이 점을 오해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멋대로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얽매여 감각적인 촬영을 하지 못한다(77쪽).” 같은 말 또한 가만가만 곱새깁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내 삶과 발자국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나는 대학교에서든 중·고등학교나 국민학교에서든 사진찍기는커녕 글쓰기조차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고, 가르칠 사람 또한 없었어요. 문예창작이라든가 사진수업을 받지 못하다 보니, 언제나 사진길을 스스로 찾고 글길 또한 스스로 파헤칩니다. 나는 내 삶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그래, 내가 얼마쯤 다닌 대학교라든지, 내가 겨우 목숨을 건지며 사회로 돌아온 군대라든지, 나와 함께 살림을 꾸리는 옆지기라든지, 옆지기와 사랑으로 빚은 두 아이라든지,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이라든지, 날마다 부대끼거나 스치거나 마주하는 이웃사람이라든지, 언제나 바라보는 밤하늘과 낮하늘과 들판과 멧자락이라든지, 이 모두가 나한테 ‘사진을 찍는 삶’과 ‘글을 쓰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사진을 꼭 잘 찍어야 하지 않아요. 삶을 잘 꾸려야지요. 사랑을 잘 해야지요. 나와 이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살아가는 살붙이를 착하게 사랑해야지요. 우리 집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를 곱게 바라보아야지요. 논밭 푸성귀와 곡식을 아껴야지요. 까막까치와 멧새 들새를 상냥히 마주해야지요.
차가운 겨울바람이 사진을 가르쳐 주는 스승입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빨래가 글을 가르쳐 주는 이슬떨이입니다. 아이들 목소리가 사진을 가르쳐 주는 길잡이입니다. 뜨개질하는 옆지기가 글을 가르쳐 주는 벗님입니다. 나는 사진을 잘 찍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사진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글을 좋아하고 싶습니다. (4344.12.27.불.ㅎㄲㅅㄱ)
― 카메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사토 토미오 글,임향자 옮김,포토스페이스 펴냄,2010.9.7./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