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쓰는 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겨우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기까지 오늘을 어찌 보냈는가 돌아보며 눈을 감으며 등허리를 폅니다. 나한테 오늘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아이들한테는, 옆지기한테는 오늘 하루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갓난쟁이 둘째는 이제 날마다 네 차례쯤 똥을 누는 몸으로 시나브로 굳어져, 언제부터였던가 날마다 똥기저귀를 넉 장씩 빨아야 합니다. 똥기저귀를 빨자면, 아이들을 씻기자면, 빨래를 널자면 걷자면 개자면 갈무리하자면, 하루하루 어떻게 흐르는가를 잊습니다. 그저 이 집안에서 보내는 오늘입니다. 달력에 어떤 날짜가 적힌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날이 춥다 한들 덥다 한들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살았든 죽었든 나하고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 밥을 먹고, 새로 똥오줌을 누며, 새로 말을 배우고, 새로 삶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삼스레 웃고 뛰고 박차고 달립니다.

 

 식구들 모두 잠든 밤에 퍼뜩 깹니다. 첫째 아이가 몸을 비트는 소리에 깹니다. 쉬가 마려운가, 오늘은 부디 혼자 일어나서 쉬를 누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기다립니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에 아이를 부릅니다. 쉬 마렵니, 쉬 마려우면 일어나서 쉬하러 가자. 조용합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일어날 낌새가 없습니다. 잠꼬대였나.

 

 그만 잠을 깬 바람에 그냥 일어나기로 합니다. 하루 가운데 몇 시간 살짝 조용하게 주어진 이 밤을 누리기로 합니다. 셈틀 화면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옆방에서 잠자는 세 식구를 깨우거나 잠 못 들게 하지 않기를 비손하면서, 이 밤에 글을 몇 꼭지라도 붙잡으려고 합니다. 낮에는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며 글을 쓰기 힘들다기보다, 낮 동안 아이들이랑 부대끼며 집일을 꾸려야 하니까 셈틀을 켤 수 없어요. 어제 하루 책읽기는 잠자리에 든다며 세 식구보다 몇 분 먼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책 한 쪽 훑으며 끝났습니다. 고작 한 쪽 훑었을까 싶을 때에 두 아이도 이부자리로 찾아들었고, 이부자리에 찾아든 두 아이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한동안 잠을 안 자면서 노닥거려요. 그래그래, 너희가 이래야 어린이답지, 너희가 이불을 뒤집어쓰기 무섭게 코를 골골 곤다면 어린이다울 수 있겠니. 돌이키면, 너희 아버지도 너희만 한 어릴 적 너희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잠들지 못하도록 이래저래 꽁알거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겠니. 너희가 보여주는 온갖 몸짓과 목소리가 너희 아버지가 이 밤에 씩씩하게 일어나 글을 쓰도록 해 주는 힘이 된단다. 너희 어머니, 곧 내 옆지기가 이 밤에 꿋꿋하게 눈 부비며 두 손 비비고 글을 쓰게 이끄는 기운이 된단다. 우리 네 식구 살림살이가 아니라면 이 밤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네 식구 시골집이 아니라면 깊은 밤에 너희 오줌 누이거나 기저귀를 갈며 일어나 마당에 한두 차례 나와서 밤하늘 올려다보기를 했을까.

 

 고마운 하루는 지나갑니다. 고단한 하루는 마감합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옵니다. 새삼스러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하루를 보내고 하루를 누리는 삶이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빚을 수 있습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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