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 옷장 책읽기
십이월 첫머리에 맞춤한 편백나무 옷장이 어제 마무리되어 오늘 짐차로 왔다. 전라도 광주에서 빚은 편백나무 옷장을 실은 짐차가 마을 들머리에 접어들 때부터 ‘고놈 참 크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베니어판을 대지 않고 통나무로만 지은 편백나무 옷장은 값이 만만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옷장을 나와 옆지기뿐 아니라, 먼 뒷날 우리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한테서 곱게 물려받아 알뜰히 아낄 수 있기를 바랐다. 목돈을 써야 하는 옷장이란, 그만큼 오래도록 우리 시골집에서 함께 숨쉬고, 같이 살을 맞댈 동무이자 살붙이라 할 만하다. 화학 냄새 많이 나는 여느 옷장을 집에 들일 수 없다.
바닥이 고르지 않고 중천장 또한 고르지 않은 가운뎃방에 편백나무 옷장을 넣는다. 뒤꼍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은 막힌다. 이 작은 문 고리를 열었어야 했다고 뒤늦게 깨닫는다. 어쨌든 자물쇠로 잠그지 않았으니 열 수 있겠지.
옷장에서 나는 편백나무 냄새가 온 집안을 감돈다. 페인트도 니스도 바르지 않은 새 옷장은 하야말갛다 할 만한 빛깔이다. 보드라운 나무결을 느낀다. 옷장이 막 들어올 무렵 두 아이 모두 졸음에 겨워 악지를 쓰고 울먹울먹하더니 잠들었고, 옷장을 다 들이고 이제 방을 치우려 할 무렵 드디어 옷장 구경을 하더니 슬슬 옷장 안쪽으로 기어든다. 베니어판 아닌 나무판으로 댄 옷장은 튼튼해서 두 아이가 옷장 안으로 기어들어 방방 뛰어도 튼튼하다. 그렇지만, 벼리야, 너는 좀 큰 아이란다, 네 살 나이 오늘은 뛰어도 되지만, 네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 된 다음에는 뛰면 안 될 듯해.
옷장 안에 들어가 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어릴 적 이 아이들처럼 커다란 옷장 안에 몰래 들어가 놀던 일이 있었다고 떠올린다. 옷장이란 얼마나 숨기 좋은 곳인가. 이불이 없어도 들어가기 좋고, 이불이 있으면 더 아늑하며 재미나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운 다음 손을 뻗어 옷장을 톡톡 두들겨 본다. 소리가 좋다. 나와 옆지기가 이런 옷장을 손수 짤 수 있으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한다. 못 짤 일은 없으리라. 다만, 꿈을 천천히 꾸어야지. 우리 두 사람이 나중에 우리 옷장을 새로 짜기를 바라기 앞서,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이곳에서 나무를 알뜰히 심어 돌본 다음,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 집을 지을 때에, 또는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이 저희 집을 짓는다 할 때에 쓸 만한 나무를 얻게끔, 우리 집숲을 곱게 보살펴야지.
이제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는 새로운 이야기책 하나가 생긴다. 아이들이 나중에 잊어버리더라도 아버지가 처음 찍은 사진이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옷장과 아이들이 맺을 이야기가 하야말간 편백나무 옷장 구석구석에 하나둘 아로새겨지리라. (4344.12.21.물.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