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흥이 다 깨져

 

.. 내 말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흥이 이미 다 깨져 버렸던 것이다 ..  《벤 마이켈슨/홍한별 옮김-나무소녀》(양철북,2006) 39쪽

 

 “남아 있던”은 “남았던”이나 “남은”으로 손봅니다. “깨져 버렸던 것이다”는 “깨져 버려 있었다”나 “깨져 버렸으니까”로 다듬습니다.

 

 흥(興) :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
   - 흥이 나다 / 흥을 깨뜨리다 /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흥이 깨져 버렸던
→ 재미가 깨져 버렸던
→ 즐거움이 깨져 버렸던
→ 기쁨이 깨져 버렸던
→ 신바람이 깨져 버렸던
 …

 

 저는 ‘흥’이라는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는 “흥!”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릴 때부터 이랬습니다. 그저 “흥! 흥! 흥!” 하듯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흥을 돋운다”고 말하면 “흥흥거리며 무얼 돋운다구?” 하면서 썰렁한 말장난을 하곤 했습니다.

 

 흥이 나다 → 재미가 나다 / 신이 나다
 흥을 깨뜨리다 → 재미를 깨뜨리다 / 신바람을 깨뜨리다
 흥을 돋우었다 → 재미를 돋우었다 / 즐거움을 돋우었다

 

 외마디 한자말 ‘興’을 헤아려 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고 나서야 이 낱말이 한자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아마 ‘흥’을 한자말로 깨닫는 분은 썩 많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한자말인 줄 안다 하여도 그저 이 낱말을 쓸 뿐, 달리 어찌어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흥은 그저 ‘흥’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조금이나마 생각이 깊은 분들은 한자말 ‘興’이 “재미 흥”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토박이말로는 ‘재미’요, 한자말로는 ‘興’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한자말 ‘興’을 널리 쓴다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일 테지만, 나 스스로 굳이 ‘興’을 쓰지 않아도 우리 말 ‘재미’가 있으니, 우리 말로 넉넉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여기에 ‘신’과 ‘신바람’이라는 다른 낱말이 있습니다. 자리에 따라 ‘기쁨’이나 ‘즐거움’을 넣을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잔치판’이라고 적어도 어울립니다. “즐거운 잔치판”이나 “신나는 잔치”나 “기쁜 놀이마당”이라고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잔치판은 벌써 다 깨져 버렸던
 즐거운 잔치는 벌써 다 깨져 버렸던
 신나는 잔치는 벌써 다 깨져 버렸던
 기쁜 놀이마당은 벌써 다 깨져 버렸던
 …

 

 한자말을 쓴다 해서 생각과 넋을 좁은 틀에 가두어 버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자말이 굴레가 되어 생각과 넋이 갇힌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누구나 익숙해지거나 길들고 맙니다. 한 번 두 번 쓰는 말이 더 익숙하고, 저도 모르게 어떤 말씨와 말투에 길들어요. 살갑고 싱그러운 말투에도 익숙하게 젖어들지만, 얄궂고 뒤틀린 말투에도 익숙하게 물듭니다.

 

 스스로 마음밭을 튼튼하게 일구려 하지 않는다면, 거친 물결에 아무렇게나 휩쓸리지 않도록 담금질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생각이며 넋이며 엉망이 되기 일쑤입니다. 얕고 추레한 말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만, 곰곰이 말삶을 돌아볼라치면, ‘興’이 쓰이는 만큼 ‘재미’와 ‘신’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재미나다’는 한 낱말로 국어사전에 실리지만, ‘신나다’는 아직까지 국어사전에 못 실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스스로 즐겨쓰지 않으니까요. 나 스스로 우리 말을 북돋우거나 가꾸지 못하니까요.

 

 외마디 한자말 ‘興’을 쓰겠다면 쓸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興’이라는 낱말을 쓰는 동안 ‘재미’와 ‘재미나다’라는 말마디는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가 ‘興’이라는 낱말로 우리 모습을 가리키는 만큼 ‘신’과 ‘신나다’라는 글줄은 가뭇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4340.2.26.달./4342.5.4.달.4344.12.20.불.ㅎㄲㅅㄱ)

 

 

 

ㄴ. 흥이 절로 났다

 

.. 이어도라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라는 희망이 있는 한, 헐벗고 굶주려도 섬의 토박이들은 흥이 절로 났다 … 공부 열심히 해 부모보다 사람답게 살아가길 기원하노라면 힘든 노동에도 그저 신바람이 난다. 이어도라는 상상 속의 섬이 존재하는 한 신바람이 절로 난다 ..  《김영갑-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 196쪽

 

 “상상(想像) 속의 유토피아(Utopia)라는 희망(希望)이 있는 한(限)”은 “꿈나라라는 희망이 있는 동안”이나 “꿈 같은 나라를 생각하는 동안”이나 “꿈나라를 그리워하는 동안”으로 다듬어 봅니다. “섬의 토박이”는 “섬 토박이”나 “섬사람”으로 손보고, ‘열심(熱心)히’는 ‘힘껏’이나 ‘바지런히’로 손봅니다. ‘기원(祈願)하노라면’은 ‘바라노라면’으로 손질하고, ‘노동(勞動)’은 ‘일’로 손질하며, “상상 속의 섬이 존재(存在)하는 한”은 “꿈나라가 있는 동안”으로 손질합니다.

 

 흥이 절로 났다 (x)
 그저 신바람이 난다 (o)
 신바람이 절로 난다 (o)

 

 보기글을 살피면 처음에는 “흥이 절로 났다”라고 적고, 다음에는 “신바람이 난다”고 거듭 적습니다. ‘흥’이나 ‘신바람’이나 같은 낱말이니 이렇게도 적고 저렇게도 적을 수 있습니다. 적는 사람 마음이요, 적는 사람 나름입니다.

 

 그러나, 앞이나 뒤나 한결같이 ‘신바람’으로 적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꼭 ‘興’이라는 낱말을 한 번쯤이라도 적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신이 절로 났다
 그저 재미가 난다
 신바람이 절로 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세 자리 모두 다른 낱말을 넣어 줍니다.

 

 신이 절로 난다
 그저 즐겁기만 하다
 덩실덩실 춤이 절로 나온다

 

 또는, 첫마디는 “신이 절로 난다”로 적은 다음, 뒷자리에서는 아예 다른 말로 풀어내면서 느낌과 뜻을 살려냅니다. “마냥 기쁘기만 하다”라 적어도 괜찮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라 적어도 괜찮습니다. “그예 들뜨기만 하다”라 적어도 되며, “춤과 노래가 절로 나온다”라 적어도 됩니다.

 

 우리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니, 우리 땅과 삶과 사람을 한 번 더 살피면서 들려준다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우리 모습을 가리키는 글이니, 우리 터전과 이웃과 겨레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적어 준다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4342.5.4.달./4344.12.20.불.ㅎㄲㅅㄱ)

 

 

ㄷ. 흥興 3 : 흥겨움

 

.. 찰리는 두 관악대가 동시에 서로 다른 곡을 연주했던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가득 채운 소리들과 흥겨움을 작품 속에 표현했습니다 ..  《모디캐이 저스타인/천미나 옮김-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보물창고,2006) 31쪽

 

 ‘동시(同時)에’는 ‘함께’나 ‘같은 자리에서’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동시에’를 덜어도 이 다음에 나오는 ‘서로’라는 낱말이 있어 글흐름이 보드라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연주(演奏)했던’은 그대로 둘 수 있고, ‘들려주던’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 표현(表現)했습니다”는 “작품으로 담았습니다”나 “작품으로 그렸습니다”나 “작품으로 빚었습니다”나 “작품으로 보여주었습니다”로 손질합니다.

 

 흥겨움
→ 즐거움
→ 신남
→ 신바람
→ 재미
 …

 

 즐거운 일을 떠올리고 기쁜 꿈을 생각합니다. 잃은 기운을 북돋우고 스러지는 힘을 끌어올립니다. 신바람이 나도록 손길을 내밀고, 신이 날 만한 일거리를 찾습니다. 재미난 놀이를 함께하고 서로서로 웃을 만한 놀이감을 헤아립니다.

 

 즐거이 말하면서 즐거이 꿈꿉니다. 신나게 노래하면서 신나게 춤을 춥니다. 재미나게 이야기하면서 재미나게 삶을 일굽니다.

 

 말과 넋과 삶은 늘 한동아리가 됩니다. 말과 넋과 삶은 저마다 아름다이 가꾸고픈 꿈을 바라보면서 씩씩하게 걷는 이 길에서 환하게 빛납니다. (4344.1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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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21 15:44   좋아요 0 | URL
국어선생님의 유익한 말씀을 잘 듣고 갑니다.

숲노래 2011-12-21 20:5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뭘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