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사진문화와 사진예술에 앞서

 


 더 많이 더 자주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남다르거나 더 돋보이는 사진을 낳는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온누리 수많은 나라를 골고루 돌아다녔기에 온누리 구석구석 잘 알거나 읽거나 생각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이고 삶은 삶이거든요. 사진은 문화가 아닌 사진입니다. 사진은 예술이 아닌 사진입니다. 문화는 문화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예술 또한 예술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이나 사진삶이란 따로 없습니다. 사진으로 즐기는 문화일 때에 사진문화이고, 사진으로 빚는 예술일 때에 사진예술이며, 사진으로 일구는 삶일 때에 사진삶이에요. 그러나, 사진을 찍으면서 이것은 문화요 저것은 예술이요 그것은 삶이라 나누지 못합니다. 문화로 누리면서 사진을 함께할 때에 사진문화이고, 예술을 즐기면서 사진을 꽃피울 때에 사진예술이며, 삶을 사랑하면서 사진을 사랑할 때에 사진삶이에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 앞을 보는 사람보다 ‘못난 사진’이 나오지 않으나, 더 ‘잘난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그저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름난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는대서 ‘이름난 사진’이나 ‘거룩한 사진’이나 ‘훌륭한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그저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가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사진을 찍는’ 일입니다. 예술도 문화도 삶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가 사진놀이를 신나게 즐긴다면, 아이로서는 좋은 사진삶이 돼요. 이 사진삶은 앞으로 사진문화로 달라질 수 있고, 사진예술로 가지를 뻗을 수 있어요.

 

 이렇게 찍어도 좋은 사진입니다. 저렇게 찍어도 즐거운 사진이 돼요. 이렇게 찍으란 법이 없는 사진이듯, 더 많이 더 자주 돌아다닌대서 더 나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저렇게 써야 아름다운 문학이 되지 않듯이, 조그마한 집에서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담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 해서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거나 어줍잖은 글·그림·사진일 수 없어요.

 

 마음을 열어야 사진눈을 엽니다. 생각을 키워야 사진빛을 키웁니다. 사랑을 나누어야 사진사랑을 나눕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진이 문화인가 예술인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 즐거울 수 있도록 애쓰는 자리입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마음을 쏟는 자리입니다.

 

 즐거운 문화이면서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예술이면서 사진입니다. 사랑스러운 삶이면서 사진이에요.

 

 다큐멘터리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 머나먼 나라에서 찾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패션사진은 예쁘장한 모델들 예쁘장한 옷을 입히는 스튜디어오에서 만들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예술사진이라면서 아직 아무도 안 찍었다 싶은 모습을 애써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비평이라면서 수많은 대학논문처럼 딱딱한 한자말과 영어를 잔뜩 채우면서 도무지 한국말인지 한글인지 알쏭달쏭한 글을 짜깁기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좋은 삶을 아끼면서 좋은 사진을 아끼면 넉넉합니다. 고마운 사람을 사귀면서 나 스스로 고마운 이웃으로 삶을 북돋우면 됩니다. 맑은 바람과 밝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씩씩하게 자라듯, 맑은 눈길과 밝은 손길로 내 사진기를 돌볼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12.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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