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패러독스 - 극단적인 남자들, 재능 있는 여자들, 그리고 진정한 성 차이
수전 핀커 지음, 하정희 옮김 / 숲속여우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가 할 일, 여자가 사랑할 삶
 [책읽기 삶읽기 87] 수전 핀커,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

 


 집식구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언제나 좋다고 여겼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온갖 꿈나라를 마음껏 누빌 수 있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 갉아먹는 생각이 하나둘 스며들던 어느 때부터인가 빨래를 하면서 꿈나라 누비기하고 동떨어집니다. 빨래를 복복박박 하면서 꿈나라를 누비지 못한다면, 이 일은 무척 고됩니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따갑고 물을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춥습니다.

 

 어린 나날 어머니 도마질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어느 노래보다 부드러운 소리요 결이며 무늬라고 여겼습니다. 늘 듣고 으레 듣는 도마질 소리이고, 냄비 보글보글 끓는 소리이며, 밥이 익는 냄새였기에, 이 소리와 냄새와 결이 내 몸으로 스며들면서 ‘집에서 일하며 나누는 즐거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을 아름다이 꽃피우는 생각을 어디로 뻗고 어떻게 이으면서 내 삶을 일구어야 할까 하는 데까지는 생각을 가누지 못했어요.

 

 바늘에 실을 꿰어 튿어진 데를 기우자면 한 시간은 너끈히 들여야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바늘을 손에 쥔 적이 있었나 곰곰이 되새깁니다. 글쎄, 없지 않았나. 바느질이든 다른 집일이든 노상 품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집일은 없습니다. 품을 들이니 힘든 집일이 아닙니다. 기꺼이 품을 들일 만하기에 집일이요, 신나게 품을 들이면서 다 같이 아름다울 수 있기에 집살림이에요. 튿어진 데를 기우는 일을 면내 빨래집에 맡기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손수 바느질하며 기우는 일을 보지도 겪지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으니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삶이니 마음을 찬찬히 기울입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이니 날마다 조금씩 힘을 들입니다. 꼭 이것을 하고 반드시 저것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저것을 신나게 누리는 일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나로서는 이것도 저것도 기쁘거나 신나게 맞아들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나는 왜 기쁜 실마리를 살피지 못했을까요. 나는 왜 신나는 실타래를 붙잡지 않았을까요.


.. 어렸을 때 학습, 언어, 대인관계 능력과 자제심의 면에서 앞서던 여자아이들이 반드시 최고 지위나 최고의 수입을 보장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여자들에게 ‘남성적’ 선택을 하도록 권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라고 부추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  (14, 362쪽)


 내가 하고픈 대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내가 꿈꾸고픈 대로 꿈꾸는 사람일까요. 내가 살고픈 대로 삶을 짓는 사람일까요. 내가 아끼고픈 대로 아끼는 사람일까요.

 

 하루 스물네 시간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지 않으나 아주 적지 않습니다. 날마다 알맞게 누리면 되고, 날마다 즐거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몫을 오늘 하루만큼 짊어지면서 예쁘게 건사하면 됩니다. 살붙이 먹을 밥을 어떻게 차려야 좋을까 헤아리고, 밥을 다 먹고 홀가분하게 치워 갈무리하면 되며, 이불을 털고 방바닥을 훔치면 됩니다. 다 마른 옷가지를 개고, 새로 나온 빨래를 하면 됩니다.

 

 언제나처럼 따스한 기운 흩뿌리며 뜨는 햇살을 느낍니다. 언제나처럼 서늘한 밤바람 흐르며 지는 어스름을 느낍니다. 밤이 되기에 달과 별을 올려다봅니다. 한낮이 되기에 가장 따뜻한 볕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 만한 일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베개를 한 채 생각해도 좋습니다. 아침에 깨어난 아이를 배에 눕히고 함께 생각에 젖어도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불을 걷어 마당에서 함께 터는 동안 생각에 잠겨도 좋습니다. 아이를 곁에 두고 빨래를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을 기울여도 좋습니다.


.. 남성은 공격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경쟁자를 제치려 하고, 계급서열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며, 그 위치를 지키려는 성향이 여자에 비해 더 강하다. 분노, 질투, 공격적인 언어 사용에는 남녀 차이가 없는 반면에, 도둑질과 폭력과 전쟁을 통해 주도권을 잡는 일은 대대로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 어린 남자아이들은 일찌감치 태생적으로 여자아이들보다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렇듯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교실 안에서 더 많이 돌아다니고, 부주의하며, 충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크게 외치고, 다른 아이들을 끊임없이 앞서려고 다투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다 … 경쟁과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표준 독신남성의 접근방식에 맞춰서 설계된 직장과 근무일정은 타고난 지성과 높은 교육수준과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낸 많은 여자들의 의욕을 꺾는다 ..  (52, 53, 356쪽)


 살아온 날을 되짚으면서 살아갈 날을 톺아봅니다. 오늘까지 보낸 삶을 헤아리면서 앞으로 이룰 삶을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예쁘게 살았으면 앞으로는 얼마나 어떻게 예쁜 삶이 되도록 꾸릴까를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그닥 예쁘지 않게 살았으면 이제부터 예쁜 삶이 되도록 어떻게 건사해야 즐거울까를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좋게 누릴 때에 좋은 손길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내가 내 일을 좋게 붙잡을 때에 좋은 눈길로 좋은 꿈을 짓습니다. 내가 내 말을 좋게 다스릴 때에 좋은 마음길로 좋은 이야기를 짓습니다.

 

 수전 핀커 님이 지은 책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를 읽습니다. 남성은 어떤 사람이고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를 찬찬히 밝히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 사랑하는 삶과 여성이 사랑하는 삶은 서로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보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여성과 남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달라요. 여성과 남성 또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는 삶자리에서 달라요. 한식구라 하지만, 태어난 자리와 마주하는 이웃에 따라 다른 삶길을 걸어요.


.. 그녀들은 엄청난 업무시간에 진저리를 쳤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거나 또는 샌드러처럼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기업의 법률고문으로 옮긴 다음에도 여전히 무자비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일을 그만두었다 … 높은 수준의 일부 직업들이 요구하는 일에 대한 집중은 고용인들에게 마치 진공 상태에서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최정상의 단계에서는 일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직업의 성공이 제1 목표라면 이것은 아무런 불협화음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여러 개라면 협상이 필요하다. 만일 여자들이 덜 극단적인 직업이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우선권을 적용하면서 삶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들의 소득을 줄일지 모르지만 만족감은 높일 수 있다 ..  (219, 250쪽)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앞으로 찾을 일거리를 다르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학교에서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남학생한테 밥하기와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알뜰살뜰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남·녀학생 모두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요모조모 일러 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남·녀 아이들 누구한테나 바느질과 뜨개질과 호미질과 낫질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느끼도록 거들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앞서 집부터 사내랑 가시내를 따로 가릅니다. 사내와 가시내한테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앞서 계급과 울타리를 높이 쌓고 말아요.

 

 아무래도, 새로 아이들을 낳은 어른들부터 어릴 적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며 너그러운 삶을 누리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부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으로 이끄는 어른이 없이 ‘남자이니까’와 ‘여자이니까’라는 굴레에 젖어들어야 했을 수 있어요. 사랑해야 할 삶과 사랑할 만한 사람을 어여삐 만나지 못한 탓일 수 있어요.


.. 그때 나는 도시 근교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벌려면 어떤 노동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수 년을 길에서 보낸 덕분에 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아내를 대학원에 보냈으며, 자신도 성공적으로 법조계로 전업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외롭고 육체적으로 지치는 일이었으며, 그 당시의 많은 직장 풍경이 그랬듯이 99퍼센트가 남자들이었다 …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우리 아버지가 수 년 동안 몸담았던 그런 종류의 일은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의 수입은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옷가방을 나르고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가족과 친구를 거의 만나지 못하는 일을 여자들이 하려고 할까? … 더 적은 시간을 일하기로 선택한다거나 더 만족스럽지만 임금은 더 적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비록 그 때문에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여자들이 성적 편견의 희생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달리 한번 생각해 보자. 여자들의 직업과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회는 평등한 기회의 귀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8, 11∼12, 354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따스한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로 저희 삶을 일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리하여 나는 아이들과 나란히 좋은 꿈과 생각으로 나날이 기쁘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내가 보는 좋은 햇살은 아이들이 보는 좋은 햇살입니다. 내가 마시는 싱그러운 물은 아이들이 마시는 싱그러운 물입니다. 내가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은 아이들이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입니다. 내가 지내는 따사로운 보금자리는 아이들이 지낼 따사로운 보금자리예요.

 

 어버이로서 집숲을 가꾸면서 집마당을 살뜰히 돌보면, 어버이부터 즐겁고, 이 즐거운 터전에서 아이들이 즐거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맑고 밝게 노래를 부르면, 어버이부터 신나며, 이 맑고 밝은 노래를 듣는 아이들은 예쁘게 노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의 패러독스》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빛줄기를 곰곰이 파헤치는 이야기책입니다. (4344.12.19.달.ㅎㄲㅅㄱ)


― 성의 패러독스 (수전 핀커 씀,하정희 옮김,숲속여우비 펴냄,2011.4.21./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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