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버는 어른과 일하는 어린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3] 백남호,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철수와영희,2012)

 


 아침은 언제나 지난밤 옷가지들 빨래를 하면서 엽니다. 밤새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랑 아침에 눈 똥 묻은 기저귀랑 바지랑, 첫째가 엊저녁 쉬를 누다 버린 속옷이랑 치마를 빨래합니다. 뜨거운 국에 손을 척 집어넣으며 크게 덴 둘째는 왼손을 붕대로 친친 감습니다. 붕대를 하루에 두 차례 갈며 이 붕대를 함께 빨래합니다. 붕대를 세 벌 갖고 감으니까 새 붕대로 갈 적마다 바지런히 빨래해야 합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하면서 막상 내 옷은 여러 날에 한 번 겨우 빨래합니다. 두 아이를 날마다 씻기면서 날마다 새 빨랫거리 쌓이지만, 정작 나는 며칠에 한 번 머리 감고 씻으며 내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나는 내 옷도 내가 빨고 집식구 옷도 내가 빱니다. 나는 내 밥도 내가 차리고 집식구 밥도 내가 차립니다. 나는 내가 지내는 살림집을 내가 스스로 쓸고닦으며, 내가 손수 걸레를 빨아 방바닥이며 책걸상이며 개수대며 훔칩니다.

 

 아, 집안일이란 날마다 쉼없이 하고 또 해도 끝나지 않는 법. 그러나 이만큼 하더라도 어설프고 어수선한 티가 물씬 나는 법.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버지 집일을 어느 만큼 덜어 주려나 꿈꿉니다. 아이들이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이 되면, 빨래하기랑 밥하기랑 쓸고닦기를 웬만큼 거들어 주려나 바랍니다. 아니, 아이들은 저희가 빨래하기랑 밥하기랑 쓸고닦기를 몸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믿어 봅니다. 저희 몸을 움직이고 저희 마음을 기울이며 저희 삶을 저희 손으로 일구는 기쁨을 누리리라 믿어 봅니다.


.. 우리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떡볶이를 팔아. 순대랑 어묵이랑 김밥도 팔지. 출출한 저녁 시간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해. 아빠가 바쁠 때는 눈코 뜰 새도 없어. 음식 담아 주랴 먹은 거 치우랴 양념 더 넣으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대 ..  (20∼21쪽)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집식구 빨래를 한 가득 합니다. 빨래는 마당에 이은 빨래줄에 넙니다. 그제는 바람이 꽤 모질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한낮에도 바람이 퍽 드세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잔잔합니다. 새벽에 쉬하러 마당으로 나와 대문을 열고 논둑에 서며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바람은 안 불었습니다.

 

 후박나무랑 처마에 이은 빨래줄에 잘 빨고 잘 턴 기저귀를 살그머니 넙니다. 바람이 살랑 스칩니다. 빨래집게로 집습니다. 빨래를 널 때면 으레 첫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와 거들었는데, 오늘 아침은 아직 꿈나라입니다. 뭐, 어때. 언제나 나 혼자 하던 일인걸. 기저귀를 빨래줄에 너니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햇볕이 따뜻합니다. 오늘은 빨래가 잘 마르겠는걸, 하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빨래를 다 널고 방으로 들어오니 둘째는 새 오줌기저귀 하나 내놓습니다. 음, 빨래를 다 하고 난 말끔한 기운을 금세 지우시는군.

 

 새 오줌기저귀는 빨지 않습니다. 앞서 빨래하며 나온 헹굼물을 한 바가지 대야에 받았기에, 대야에 새 오줌기저귀를 담습니다.

 

 방바닥에 깔던 담요를 걷습니다. 방바닥을 한 차례 비질합니다. 담요를 들고 마당 끝에 서서 탕탕 텁니다. 손바닥으로 펑펑 두들깁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납니다. 이럭저럭 다 털고 들어와서 바닥에 곱게 깝니다. 둘째는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드는데, 어느새 첫째가 깨어납니다. 이윽고 둘째 또한 얼마 잠들지 못하고 깨어나며 웁니다. 아침 아홉 시 십이 분.

 

 새벽 즈음 일어나 아침 일찍 회사로 ‘일하러’ 나가는 여느 아버지들은 집에서 여느 아이 어머니가 몇 시쯤 일어나서 어떤 집일을 건사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보살피며 어떻게 밥을 차리는가를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깨닫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요. 겪지 않으면서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깨닫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으려나요.


..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깨끗하게 빨아 주지. 뜯어진 옷도 깁고, 얼룩도 지우고, 구겨진 옷도 다려서 빳빳하게 펴지. 아빠는 손이 빨라. 세탁기 돌리고, 다리미질하고, 재봉틀로 옷도 고쳐. 엄마는 발이 빨라. 빨랫감을 모아 오고 다시 가져다주지. 아빠는 세탁 담당, 엄마는 배달 담당, 나는 잔심부름꾼이야.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자기 옷보다 더 소중하게 다뤄 ..  (32∼33쪽)


 아홉 시 이십 분. 첫째한테 아침에 일어났으면 이 그림책이라도 보렴, 하고 말합니다. 첫째는 재미없는데, 하면서 그림책을 받고는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아이가 아는 말로 구시렁구시렁거립니다. 둘째는 누나가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목을 죽 늘어뺍니다. 둘째야, 그러면 누나한테 가 보렴, 하고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둘째는 앙 하고 웁니다. 머리를 그만 살짝 콩 찧었거든요. 그러나 누나가 노래부르며 이불을 새로 여며 주니 잘 놉니다. 그런데 누나가 또 다른 데 가니 앙 하고 웁니다. 아이를 품에 안아 엎드리게 합니다. 누나가 노래를 부르면서 놉니다. 둘째가 좋다고 소리지르면서 방바닥을 팡팡 두들깁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아버지 무릎에서 벗어나 네가 가고픈 대로 기어 보렴.

 

 첫째는 여느 사람들이 몸을 씻으며 앉는 작은 걸상을 들고 와서 올라섭니다. 아이는 춤노래를 보여줄 때에 으레 요 씻는걸상에 올라서서 발을 구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종을 울리며 하모니카를 불러요.

 

 아이한테 선물로 준 작은 디지털사진기를 들고는 아이가 춤노래를 보여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습니다. 네 살 아이는 아버지가 날마다 수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니까 저 혼자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잘 놉니다. 네 살 아이는 이 디지털사진기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을 줄 알아요. 한창 찍는데 몇 초 안 남습니다. 아이가 이 사진기를 갖고 놀며 금세 메모리카드 4기가가 그득 찹니다.


.. 우리 엄마는 음식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해. 보글보글 국 끓이고, 달강달강 반찬 만들고, 칙칙폭폭 밥 짓는 일이 마냥 신난대. 식구들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래. 엄마가 집에 있다고 가만히 쉬고만 있을까? 우리가 어질러 놓은 방 청소해야지, 더러워진 옷도 빨아야지, 시장에 가서 장도 봐야지, 하루 종일 우리 엄마는 바쁘고 바빠 ..  (52∼53쪽)


 아침에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어르면서, 오늘은 또 어떤 밥을 차릴까 머리를 기울이다가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참말 오늘날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참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렇게 느낍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내 살림을 꾸리고 내 삶을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돈을 얼마쯤 벌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때에 버는 돈은 ‘큰 돈이나 작은 돈’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버는 돈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삶을 꾸리거나 누리거나 일굴 만한 돈’이에요.

 

 스스로 좋다고 여길 만한 일을 찾는 사람은 ‘이 일이 내가 좋아할 만하며 내 삶을 가꿀 만한가’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돈벌이가 얼마나 되느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예 안 따지지는 않겠으나 첫째나 둘째 까닭으로 삼지 않아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내 삶을 사랑하면서 아낄 만한 내 좋은 일’이 되느냐를 살핍니다.


.. 우리 엄마는 멀리 베트남에서 왔어.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대. 말도 안 통하고, 사는 모습이 엄마 나라와는 모두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도 잘하고 시장에서 물건값도 잘 깎아. 엄마랑 시장에 가면 내가 가끔 엄마 통역을 해. 엄마에게 아직 어려운 우리 말이 있거든. 나는 우리 말도 잘 하고 베트남말도 잘 해 ..  (61쪽)


 백남호 님이 빚은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모두 열여섯 가지로 나옵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열여섯 가지뿐이겠습니까만, 십육만 가지이든 천육백 가지이든, 온갖 일 가운데 열여섯 가지를 추려서 보여줍니다.

 

 빨래집을 꾸리고 떡볶이를 팔며, 짜장면을 나르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그림책에 나온 모습으로 읽으며 곰곰이 돌이킵니다. 참말 이 나라에는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신 딸아이와 아들아이와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어서 “일을 찾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러한 이야기들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다룬 일은 드뭅니다.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에서도 ‘공장에서 부품을 맞추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을 좀처럼 다루지 못해요.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자락을 살뜰히 담아내지 못해요. 소설책이든 시집이든 ‘호미와 괭이와 낫을 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온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건드리는 사람은 있어요. 보여주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살아내며 함께 웃거나 우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사람이 적어요.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라고 해서 빈틈없이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또한 아쉬운 대목이 있고 모자란 구석이 있습니다. 그림을 조금 더 잘 그릴 수 있었고, 더 자잘하고 하찮다 할 자그마한 이야기를 더 따스하게 돌아보며 담을 수 있었어요. 낱말 하나 더 다스리거나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많은 옷을 빨아야(34쪽)”가 아니라 “옷을 많이 빨아야”처럼 적어야 올바르고, “계란찜과 달걀말이(54쪽)”를 섞어서 쓴 말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는 참말 ‘대학교와 신문·방송에서 자잘하고 하찮다고 여기며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루는 일터’ 사람들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자잘하다고 푸대접하는 대목을 더 살피고, 하찮다며 거들떠보지 않는 구석을 더 사랑하면서 그림과 글을 엮을 수 있었습니다.


.. 어느 날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엄마가 다니는 회사가 사정이 안 좋다며 엄마를 쫓아냈대. 함께 일하던 엄마 친구들도 같이 쫓겨났어. 엄마랑 엄마 친구들이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말해도 회사에서는 엄마 말을 안 들어 줘.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이랑 함께 회사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싸우고 있어. 텔레비전에서는 엄마가 아주 나쁘고 무서운 사람처럼 자꾸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방구 뿡뿡 뀌는 착한 엄마란 말이야 ..  (74쪽)


 나는 집에서 방귀 뿡뿡 뀝니다. 옆지기이자 아이 어머니도 집에서 방뀌 뽕뽕 뀝니다. 두 아이도 방뀌 봉봉 뀝니다. 다들 착한 사람이고, 모두 고운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꿈대로 집에서 살림을 도맡으면서 갖은 일거리를 붙잡습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스스로 좋아하는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사랑에 걸맞게 저희 꿈을 참다이 일구는 길을 즐거이 걷겠지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온누리 아이들 모두 “돈을 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돈을 버는 사람보다 삶을 사랑하면서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니까, 어버이인 나부터 아이들하고 돈을 더 버는 나날이 아닌 아이들이랑 알콩달콩 일놀이를 함께 즐기는 나날을 보내고 싶습니다. (4344.12.18.해.ㅎㄲㅅㄱ)


―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철수와영희 펴냄,2012.1.7./1만 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