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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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아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만화책 즐겨읽기 92] 야마시타 카즈미,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

 


 온누리 사람들이 서로를 알뜰히 아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꿉니다. 미워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등치거나 들볶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꿉니다.

 

 사랑받지 못하며 태어나고 자라고 크고 어른이 된 사람들이, 둘레 사람들한테 사랑을 곱다시 나눌 때가 있으나, 둘레 사람들한테 사랑보다 미움과 차가움과 비아냥을 흩뿌릴 때가 더 잦다고 느낍니다. 사랑받지 못하며 살아온 나머지, 사랑을 밟거나 깨거나 부수거나 흔드는 일이 얼마나 슬프며 아픈가를 못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해 주어야 할 일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고, 사랑을 실어 옷을 입히며, 사랑을 모아 잠자리를 마련합니다.

 

 아이들한테 비싼 밥을 먹여야 아이들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값나가는 옷을 입혀야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베풀어야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들지 않아요.

 

 아이들은 자가용을 타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무등을 타도 됩니다. 아이들은 자전거에 타도 됩니다. 아니, 아이들은 저희 어머니 아버지랑 신나게 들판을 달음박질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랑 무엇을 해야 즐거울까요.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워 그럴듯한 밥집을 찾아가 비싸구려 밥 한 끼니를 사거나 커다란 놀이공원에서 자유이용권을 끊으면 즐거울까요. 아이들이랑 비행기 타고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에 다녀와야 무언가 해 준 셈이라 할 만한가요.


- ‘왜 모두들 시간이 있는데 그렇게 달리는 걸까? 또 없는데 그렇게 헛되이 낭비하는 걸까? 왜 토하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술을 마시는 걸까? 왜 모두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농땡이를 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8쪽)
- “창피해? 왜 그럴까?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한 일은 전부 올바른 일이었는데. 왜지?” (19쪽)


 예쁜 목소리 흐르는 노래테이프를 트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귀여운 목소리 흐르는 만화영화를 트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투박하거나 수수한 어버이 목소리로 잔잔하게 부르는 노래가 훨씬 좋습니다. 가락이 어긋나거나 노랫말을 몰라도 어버이 목소리로 아이한테 사랑 담아 불러 주는 노래 한 자락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맨밥을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밥만 잘 먹는다고 무럭무럭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밥을 잘 먹어야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사랑밥·사랑옷·사랑집입니다.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사랑밥·사랑옷·사랑집이 삶을 살찌웁니다. 사랑밥·사랑옷·사랑집이 아니라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 누구라도 슬프거나 힘들거나 괴롭거나 고달픕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 하더라도 사랑을 느낄 수 없고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일터는 안 즐겁습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번다 하지만, 내 좋은 살붙이랑 동무랑 이웃이랑 어울릴 겨를을 내지 못하는 일터라면 조금도 안 기뻐요.

 

 사랑하면서 꾸릴 내 삶이지, 돈만 벌다 떠날 내 삶이 아니거든요. 사랑을 받고 사랑을 물려줄 내 삶이요, 돈을 벌어 돈만 쓰다 떠날 내 삶이 아니에요.


- “아가씨, 안달할 거 없습니다.” “예?” “이 꽁치는 눈이 탁합니다. 조금 오래된 겁니다. 느긋하게 찾으십시오. 그럼, 싸고도 싱싱한 생선을 살 수 있을 겁니다.” “다, 당신은 누구시죠?” “저 말입니까? 싸고 싱싱한 전갱이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입니다.” (77쪽)
- “유 교수. 지금 가시는 길입니까? 중간까지 같이 가시죠. 태워다 드릴 테니.”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편이 빠르더라구요.” (121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9)을 애장판으로 새롭게 읽습니다.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가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 이 만화책을 함께 즐길 만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이 만화책을 장만해서 새롭게 읽습니다.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바른이(바른 사람)’입니다. 어느 하나 똑부러지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어느 하나 비틀어지거나 비뚤어지거나 모나거나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곧고 바른 삶입니다. 참다우며 착하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일흔을 코앞에 둔 나이라 하지만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옆지기랑 딸 넷하고 어울릴 겨를보다는 책을 읽는 겨를이 훨씬 많은 유택 교수이지만, 유택 교수 깜냥껏 스스로 할 수 있는 온힘을 내어 삶을 일굽니다.

 

 유택 교수한테는 샛길이 없습니다. 유택 교수한테는 곁다리를 걸칠 까닭이 없습니다.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좋은 한길이 있기에, 누가 무어라 하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건, 요모조모 꼬투리를 달건, 스스로 가장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좋다고 여기는 한길을 걷습니다. 누구보다 유택 교수 스스로를 아낍니다. 누구보다 유택 교수 스스로를 아끼면서 이 마음결을 가장 가까운 살붙이부터 이웃과 동무한테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유택 교수는 언제부터 바른이 삶을 꾸렸을까요. 유택 교수는 누구한테서 어떤 사랑을 받았기에 오늘과 같은 삶을 일굴 수 있을까요. 유택 교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받으면서 어떤 이웃이나 동무랑 어떤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요.


- ‘어둡고 시끄럽고 담배냄새가 지독히 나고 환기도 나쁘다. 회사원도 있는 것 같은데, 과연 이런 데서 스트레스가 풀릴까? 나의 뇌세포가 파괴될 것 같다. 이런 상태는 태평양전쟁 이후 처음이다.’ (130쪽)
- “아빠가 우리랑 안 놀아 줘. 아빤 저 방에서 안 나오셔? 왜?” “공부하느라 바빠서 그래.” “하지만 옷짱네 아빤 일요일엔 같이 놀아 주는걸.” “아빤 쉬는 날에 책을 읽으셔. 그게 아빠가 쉬시는 거니까. 엄마랑 가자.” (209쪽)
- “나츠코, 이제 들어오라고 해도 되지 않겠니?” “안 돼요!” “나츠코, 내 생각엔 네가 아버지의 책과 싸워 온 나보다는 훨씬 나아 보여. 내 라이벌은 40년 이상 계속 말 한 마디 안 하는 책이었어.” (255쪽)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닙니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닙니다.

 

 사랑인가 아닌가 한 가지입니다. 믿음인가 아닌가 두 가지입니다. 착함인가 아닌가 세 가지입니다. 참다움인가 아닌가 네 가지입니다. 아름다움인가 아닌가 다섯 가지입니다.


- “팽이는 안 변했어. 꽃도 마찬가지고, 내 보물이지. 다른 건 모두 변했어도 이것만은 안 변했어.” “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입니다.” (181쪽)
- “여보.” “응?” “제게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 잘 자요.” (311쪽)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사랑씨앗을 심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이 그만 미움씨앗을 심습니다. 사랑씨앗은 곱게 돌보면서 사랑꽃을 피우고 사랑열매를 맺습니다. 미움씨앗이라지만 사랑어린 손길로 보살피면서 미움꽃 아닌 사랑꽃이 피도록 이끌고, 미움열매 아닌 사랑열매 맺도록 거들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나와 옆지기가 우리 아이들을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굳이 보낼 생각이 없는 까닭은, 어느 학교라 하든 학교라는 울타리가 되면 사랑을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함께하거나 겪도록 이끌지 않아서예요.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제도권학교나 대안학교나 사랑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디에서나 학력과 지식과 졸업장과 자격증과 정보와 돈입니다. 사랑을 말하고 삶을 찾으며 사람을 아끼는 길을 나누려는 배움마당을 만나기 너무 힘듭니다.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면, 오늘날 사람들 모두 내 가장 따사롭고 넉넉한 보금자리가 될 살림집부터 사랑이 어린 꿈터가 되어야 할 텐데, 너무 옥신각신 돈다툼질에 휘말리고 말아서 살림집이며 배움마당이며 엉터리가 되는지 몰라요. 모두들 따사로운 살림집에서 사랑을 먹으면, 따사로운 작은 마을에서 사랑을 나누고, 따사로운 작은 배움터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꿈을 빚으리라 믿습니다.

 

 학교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씨를 보드라이 어루만지는 터여야 합니다. 회사나 마을이나 공공기관이나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사 모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결을 곱게 다스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4344.12.17.흙.ㅎㄲㅅㄱ)


―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09.3.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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