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 - 채승우의 사진교실
채승우 지음 / 넥서스BOOKS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사진을 뜯거나 잘라서 읽으면 안 즐겁다
 [찾아 읽는 사진책 74] 채승우,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넥서스BOOKS,2004)

 


 〈조선일보〉 사진기자인 채승우 님이 낸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넥서스BOOKS,2004)을 되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인천에서 충청북도 충주로 옮긴 책짐을 겨우 다 풀었다 싶을 무렵 다시 책짐을 꾸려 전라남도 고흥으로 옮겼습니다. 살림짐과 책짐을 하나하나 끌르고 갈무리한 지 석 달쯤 되는 오늘 낮, 여러 책상자와 책덩이를 끌르다가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이 보여 다시 한 번 꺼내어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처음 장만하여 읽던 때하고 오늘 다시 들출 때하고 어떻게 바라보며 받아들이는가를 되짚습니다. 2004년에는, 2007년에는, 2011년에는 이 책이 나한테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돌아봅니다.

 

 책을 한창 읽다가 빈 자리에 몇 마디 끄적입니다. ‘시를 줄·연에 따라 나누거나 표현법을 살피며 읽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시를 즐길 수 없습니다. 이래서는 시를 즐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엊저녁, 동시를 쓰는 어느 분이 낸 ‘동시 즐겁게 읽기 책’을 읽고 나서도 이와 거의 같은 느낌으로 글을 한 줄 적었습니다. 시이든 사진이든 읽는 사람 마음이지만, 읽는 사람 마음대로 자르거나 나누거나 가르다 보면, 정작 ‘읽기’부터 참다이 못할 뿐 아니라, ‘즐기기’는 아예 잊기 일쑤요, ‘사랑하기’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지는구나 싶어요.

 

 “책에 사용할 사진을 찍기 위해,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한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동네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임을 다시 알았고, 도로 분리대에 계절 따라 다른 꽃이 핀다는 것도 새로 알았습니다(머리말).”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 내 보금자리가 깃든 작은 동네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 작은 발걸음으로 조금 짬을 내어 거닐다 보면 재미나게 사진을 즐기곤 합니다. 인도를 가거나 필리핀을 가거나 몽골을 가야만 그럴싸한 사진을 빚지 않아요. 나 사는 동네에서 재미난 사진을 얻고, 나 사는 작은 집에서 아름다운 사진을 일구어요.

 

 곧, 사진기자 채승우 님은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을 내면서 막상 채승우 님 스스로 ‘재미나게 사진을 누리면서 즐기기’를 못했다고 밝히는 셈입니다. 이제껏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정작 ‘작은 곳을 사랑하거나 좋아하거나 아끼는 길’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예쁘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떻게 ‘사진 찍기’를 해내었는지 보는 일이 즐겁습니다(14쪽).”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사진기자 채승우 님은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에서 사진을 즐겁게 받아들이자고 말하지만, 이 사진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뭔가 내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사진을 찍거나 뭔가 조금 더 잘 보여질 만한 사진을 찍는 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진찍기법’과 저런 ‘사진찍기법’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다르게 사진을 찍거나 누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면서, 가만히 보면 ‘이런저런 사진찍기법’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휴일날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 담아 오는 깔끔한 풍경사진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으로 찾아가 본 풍경사진이 나와 무슨 관계인가요? 그보다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사진이 좋은 사진입니다. 내 생활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나의 가장 치열한 생활 속에 좋은 사진거리가 있습니다(110쪽).” 같은 생각을 알뜰살뜰 여민다면 좋겠습니다. 그야말로 겉치레로 내보이는 사진이 아니라, 내 깊은 사랑을 나누는 사진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에는 안쓰럽다 싶도록 겉멋을 부리는 사진이 적잖이 실립니다. 그러나, 퍽 재미나다 싶은 애틋한 사진 또한 제법 실립니다. 이쪽으로 엉뚱하게 기울어지다가, 즐거운 사진길로 돌아오다가, 이런저런 길헤맴을 되풀이해요.

 

 “느린 셔터일 때,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걸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201쪽).” 하는 말처럼, 채승우 님 스스로 느린 셔터빠르기로 찍으며 흔들린 사진을 몇 보여줍니다. 일부러 흔들어 찍은 사진이 있고, 애써 안 흔들리도록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은 ‘즐거운 사진길’을 이야기하겠다고 하면서 ‘사진기 다루는 솜씨’ 쪽에 너무 기울어졌다고 하겠어요.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결’로는 좀처럼 손을 뻗지 못합니다.

 

 그래서, “느낌을 만들어 내는 주된 선들이 있습니다. 그 선들을 점선으로 표시해 봤습니다. 사진은 이런 선들을 화면의 프레임 안에 넣을 것인지, 뺄 것인지, 어디에 넣을 것인지 결정하는 작업에서 시작합니다(25쪽).” 같은 글을 읽으면서 슬픕니다. 사진은 무엇을 넣거나 빼자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그저 내 이야기를 담습니다. 무엇을 더 넣은들 무엇을 더 뺀들 사진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는 군더더기가 있건 군살이 빠졌든 똑같이 내 이야기예요. 도마질을 하다가 손끝을 베건 도마질을 느릿느릿 하건 언제나 똑같이 내 밥차림이에요. 젓가락질을 잘 해야 밥을 잘 먹지 않아요. 젓가락질이 참 서툴어도 밥은 잘 먹습니다. 숟가락으로 먹을 수 있고, 찍개로 먹을 수 있어요. 그냥 손으로 먹어도 됩니다.

 

 밥상 앞에서 밥을 먹는 몸가짐과 마음씨에 사랑을 담습니다. 사진기를 쥔 손으로 어떤 이야기에 어떤 내 사랑을 담느냐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이리하여, “좋은 사진은 세상맛을 충분히 본 사람들이 잘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은 늦게 시작할 수 있고, 늦게 이루어지는 분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181쪽).” 같은 말은 참 터무니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자면, 동네 어린이한테 사진기를 쥐어 주면서 사진놀이를 할 까닭이 없어요. 로버트 프랭크가 뭐 얼마나 잘났기에 미국사람 사진을 내놓을 수 있었나요. 스티글리츠는 얼마나 나이를 먹은 다음 사진기를 쥐었기에 ‘사람들한테 알려진 사진을 그 나이’에 찍었을까요.

 

 제발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이든 연극이든 춤이든 무엇이든, 내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진장비 때문에 사진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렌즈나 필름이나 컴퓨터 때문에 사진이 바뀌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만지는 내 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기를 움켜쥐며 바라보는 내 눈길에 따라 사진이 바뀝니다.

 

 〈조선일보〉 기자 아무개와 〈경향신문〉 기자 아무개가 한 자리에 있어도, 둘은 사진을 달리 찍고 글을 달리 씁니다. 〈조선일보〉 기자 저무개랑 〈한국일보〉 기자 저무개가 나란히 회사를 박차고 나와 취재를 하러 떠나더라도 서로 다른 곳에서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이야기를 신문에 싣습니다. 어느 신문사 어느 기자가 옳거나 그르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다 다른 사람에 따라 다 다른 사랑을 다 다른 이야기꽃으로 피울 뿐입니다.

 

 살아가는 결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에 따라 사진이 바뀝니다.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을 받아들이는 몸가짐에 따라 사진이 거듭납니다.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은 사진찍기를 즐기려 하는 이들한테 이모저모 도움이 될 만한 ‘사진찍기법’을 여러모로 손쉽게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사진을 사랑하며 좋아하고 아끼는 길은 한 가지도 들려주지 못합니다.

 

 사진이론이나 사진실기나 사진비평이나 사진강의나 사진해설에서 홀가분해지면 좋겠습니다. 사진삶과 사진사랑과 사진꿈을 담는 ‘사진 즐김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고맙겠습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 (채승우 사진·글,넥서스BOOKS 펴냄,2004.9.20./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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