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
짐 호우즈 지음, 사과나무 옮김, 롤렌드 하베이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도시를 떠나 너른 마당 누려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5] 롤란드 하베이·짐 호우즈,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크레용하우스,2000)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픈 꿈을 서른일곱 해 만에 이루며 살아갑니다. 올가을까지 살던 멧골집에도 마당은 있었지만 온갖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드나드는 조금 어수선한 데였습니다. 마당이 있다지만 자동차가 드나들며 배기가스를 내뿜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뱉으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만하지 않아요. 빨래를 널기에도 그닥 좋지 않습니다.

 

 나는 아마 일곱 살 무렵부터 아파트에서 살았지 싶습니다. 일곱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열석 평짜리 작은 집이고, 다섯 층짜리 보금자리였습니다. 한 동에 모두 쉰 살림집이 길게 들어선 층층집이었고, 예전에는 자가용 있는 사람이 적어 동과 동 사이는 널따란 놀이터였습니다. 마당이 없기로는 어느 아파트라고 다르지 않으나, 열여섯 살에 다른 아파트로 옮길 때까지 퍽 신나게 뛰놀 수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에 내 어버이가 옮긴 새 아파트는 마흔여덟 평이었습니다. 형과 나는 방을 따로 얻습니다. 이곳은 열다섯 층으로 이루어졌고, 마당이나 놀이터 없이 자동차 대는 곳만 널따랗습니다. 자동차는 바깥에 대기로도 모자라 땅밑까지 파고듭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내 어버이 집을 떠나 여러 곳을 떠돌며 ‘마당이나 놀이터 누리는 집’에서 지내지 못합니다. 서울에서든 군대에서든 인천에서든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도시에서 마당 누리는 집이란 돈 없이 얻을 수 없는 꿈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해서 누리지 못한 ‘마당 있는 집’이로구나 하고 요즈막 되뇝니다. 내 살가운 살붙이랑 오붓하게 하루 스물네 시간 복닥일 조그마한 시골집을 꿈꾸며 삶길을 열려고 애쓴다면, 퍽 수월하게 ‘마당 있는 집’을 누릴 수 있어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든, 퍽 작다 싶은 도시에서든, 조그마한 방 한두 칸 얻을 살림집이나 살림방 전세돈이면, 시골마을에서 마당 널따란 보금자리를 내 집으로 마련할 수 있더군요.


..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예요. 종이상자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지요. 초록풀 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떠 있어요. 섬에는 내 친구들이 살고요 ..  (3쪽)


 시골로 옮기면 돈벌이를 어떡하느냐고 걱정해 주는 분이 많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시골살이를 하며 도시처럼 돈벌이를 하려고 꿈꾸는 일은 참 바보스러워요. 몇몇 사람은 시골살이를 하면서도 도시에서와 엇비슷하게 돈벌이를 이루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도시에서 이루는 돈벌이는 무엇을 하는 돈벌이가 되나요. 도시에서 돈을 벌면 이 돈을 어디에서 무얼 하며 쓰나요.

 

 내가 김치를 못 담그기도 하지만, 이웃 할머니들이 김치를 선물해 주십니다. 마당 가장자리 텃밭이나 집 뒤꼍 땅뙈기에 푸성귀를 심어 기를 수 있습니다. 마당 한켠에 열매 얻을 나무를 심을 수 있습니다. 씨앗부터 심으면 열매를 얻기까지 꽤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하고, 어쩌면 내 나이 쉰을 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맛볼는지 몰라요.

 

 그러나 나는 즐거워요. 내가 내 마당 나무열매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우리 집 아이들이 푸른 나이를 뽐낼 무렵 신나게 나무열매 누릴 수 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푸른 나이를 뽐낼 무렵 영차 하고 올라탈 만큼 나무가 자랄 수 있고,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저희 아이를 낳는다면, 이 아이들이 고개를 꺾어 높이 우러러볼 만한 나무가 우리 집 마당에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아직 씨앗 하나 알뜰히 심지 못한 우리 마당이지만, 마당을 바라보며 흐뭇합니다. 처음 이 시골집을 얻어 쓰레기를 치우고 집 안팎을 손질할 때에, 옆지기 어버이가 찾아와 주어 크게 힘쓰며 일을 거드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을 거드셨다기보다 일을 맡아 주셨다고 하겠어요. 널브러진 짐과 쓰레기를 치웁니다. 어지러운한 꽃밭과 텃밭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뒤꼍 땅뙈기를 잘 건사하면 됩니다. 아흔일곱 평짜리 터에 스무 평쯤 될 집자리를 빼면 일흔일곱 평이 온통 마당이자 뒷밭이며 꽃밭입니다. 처마와 후박나무 가지 사이에 빨래줄을 잇습니다. 자전거와 손수레를 마당에 놓습니다. 시멘트로 바른 마당이지만, 아이는 이 마당에서 걱정없이 뛰고 달리며 구를 수 있습니다. 대문을 열지 않아도 집 앞 논밭이 넓게 보입니다.

 

 서울에서는 한강을 바라보는 아파트가 비싸다 하는데,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없는 냇물을 바라보기보다는 언제라도 시원하고 푸른 바람을 베푸는 들판을 바라보거나 너른 바다를 마주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기쁘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푸른나무 우거진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땅거미가 지고 난 다음,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동이 트는 어스름을 맛봅니다. 자동차 오가는 소리 아닌 바람이 나뭇가지 흔드는 소리 듣습니다. 사람들 손전화나 가겟집 유행노래 소리 아닌 멧새와 들새 지저귀는 소리 듣습니다.


.. 고물섬에는 누가누가 있을까요? 벌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요, 거미가 예쁘게 짜 놓은 거미줄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요 ..  (13쪽)


 롤란드 하베이 님이 그리고, 짐 호우즈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크레용하우스,2000)를 읽습니다. 책이름 “초록풀 바다”는 엉터리이지만, 어린이책 번역에서 엉터리 아닌 말마디란 퍽 드무니 어쩔 수 없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초록’이란 ‘풀빛’을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초록풀’이면 “풀빛 풀”인 셈입니다. 풀은 모두 풀빛이지 풀빛이 다른 빛깔일 수 없습니다. 이 그림책 이름은 “초록풀 바다”가 아닌 “푸른 바다”로 붙여야 걸맞았으리라 봅니다.

 

 어쨌든, 도시 한복판에 있는 집인데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풀이 마음대로 자라며, 풀이 마음대로 자라는 귀퉁이마다 온갖 놀잇감이 널립니다. 이 마당을 누리는 아이들은 저희 멋대로 푸른 바다를 누빕니다. 풀을 만지고 흙을 밟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흙내음을 맡습니다. 푸른 바다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푸른 바다에 둥둥 떠서 흰구름을 먹습니다. 푸른 바다에서 함께 살아가는 온갖 벌레하고 인사합니다.


.. 나는 우리 집 마당이 정말정말 좋아요! ..  (25쪽)


 아파트에서 전세나 월세로 살든, 빌라나 다세대주택에서 전세나 월세로 살든,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조그맣게 꿈을 꿀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아이들하고 더 오래 복닥이고 더 오래 살을 맞대며 더 오래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낼 만한 예쁜 시골마을을 찾아 도시를 떠날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대단한 이름을 붙이는 귀농·귀촌이 아니에요. 즐겁게 복닥이면서 ‘아이 삶’ 못지않게 ‘어른 삶’을 곱게 돌보는 시골살이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부터 스스로 재미나게 누리면서 일구는 시골살이예요.

 

 너른 마당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 누구한테나 고마운 쉼터입니다. 너른 마당은 즐거운 놀이터이자 일터입니다. 너른 마당은 오붓한 만남터이자 어울림터입니다.

 

 너른 마당을 누려야 내 사람다운 빛이 살아납니다. 너른 마당을 누리지 못하면 내 사람다운 꿈이 억눌립니다. 너른 마당을 누리면서 북돋울 내 착한 사랑이라면 내 이웃과 동무를 착하게 아낄 수 있습니다. 너른 마당을 누리지 못하며 억눌리는 넋이라면 너무 고단하며 괴롭습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 (롤란드 하베이 그림,짐 호우즈 글,사과나무 옮김,크레용하우스 펴냄,2000.8.10./7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