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02 : 조반석죽
.. 논을 돌아보면서 이제 이런 정도라면 조반석죽은 아무 걱정이 없게 되었다고 안심을 하고 마음이 놓이는데, 그런 홍서 앞에 불쑥 나타난 사람은 노마였다 .. 《이재복-우리 동화 바로 읽기》(소년한길,1995) 192쪽
“이런 정도(程度)라면”은 “이렇게 되면”이나 “이만큼 되면”이나 “이만큼이라면”으로 다듬습니다. ‘안심(安心)’은 “마음이 놓임”이나 “마음을 놓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보기글처럼 “안심을 하고 마음이 놓이는데”처럼 적으면 겹말이에요. “안심을 하고”를 덜어야 알맞습니다.
조반석죽(朝飯夕粥) : 아침에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먹는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살림을 이르는 말
- 조반석죽이 어려운 처지에
조반석죽은 아무 걱정이 없게 되었다고
→ 끼니 이을 걱정이 없다고
→ 밥 굶을 걱정이 없다고
→ 밥 먹는 걱정이 없다고
→ 밥 걱정이 없다고
…
한문인, 곧 중국글인 ‘조반석죽’을 생각합니다. 이 낱말은 한국글이 아닌 중국글입니다. 중국사람이 쓰는 글이기에 중국글입니다. 한국사람은 이 낱말을 한글인 ‘조반석죽’으로 적든 한자로 ‘朝飯夕粥’으로 적바림하든 알아듣기 힘듭니다. 중국글을 아는 이라면 어렵잖이 알 테지만, 중국글을 알더라도 뜻을 옳게 못 새길 수 있고, 중국글을 모르면 아예 모르고 맙니다.
‘photography’를 한글 ‘포토그래피’로 적는들 한국글이 되지 않습니다. 영어를 한글로 적었을 뿐입니다. 영어사전 풀이에 나오듯 ‘사진술’이나 ‘사진 찍기’로 옮겨야 비로소 한글이면서 한국글입니다. ‘포토그래피’이든 ‘photography’이든 한국글이든 한국말이든 될 수 없어요.
흔히, 한국말 가운데 한자말이 제법 섞였기에 ‘조반석죽’처럼 넉 자로 된 한자말을 마치 한국말처럼 여기곤 합니다. 네 글자 한자말을 아는 일을 대단히 여긴다든지 자랑으로 삼는다든지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자랑스럽지 않아요. 대단하지 않으며 슬기로울 수 없어요.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자랑스럽고, 대단하며, 슬기롭습니다.
이제 이쯤이라면 밥 걱정은 없다고 마음을 놓는데
이제 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을 놓는데
이제 밥 걱정은 없다고 마음을 놓는데
…
이 나라 아이들은 이 나라 어른들한테서 한국말을 바르고 알맞게 배워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이 나라 어른들한테서 한국글을 맑고 슬기롭게 익혀야 합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바르고 알맞게 배우자면, 어른들부터 한국말을 바르고 알맞게 써 버릇해야 합니다. 여느 때 여느 자리 여느 사람하고 바르면서 알맞게 한국말을 나누어야 해요.
아이들이 한국글을 맑고 슬기롭게 익히자면, 어른들 스스로 한국글을 맑고 슬기롭게 쓰면서 즐거워야 합니다. 언제나 맑게 나누는 한국글이어야 하고, 늘 슬기로이 주고받는 한국글이어야 합니다.
조반석죽이 어려운 처지에
→ 밥먹기 어려우면서
→ 살림이 어려운데
→ 먹고살기 어렵지만
…
예부터 한문을 한문 아닌 한국글처럼 여긴 버릇 때문에, 오늘날 영어를 영어 아닌 한국글처럼 여깁니다. 간판뿐 아니라 이름쪽에 영어를 버젓이 쓰고, 회사이름이건 가게이름이건 영어를 가벼이 써요. 옳게 말하지 않고 옳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옳게 살아가지 못하는데, 이러한 흐름이나 이음고리를 깨닫지 않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생각을 맑게 다스려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착하게 돌보아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사랑을 기쁘게 나누어야 합니다. (4344.12.2.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