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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예쁜 만화책
[만화책 즐겨읽기 80] 호시 요리코, 《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분들이 으레 한 가지를 크게 놓칩니다. 그림결을 예쁘장하게 그린대서 ‘예쁜 만화’로 사랑받지 않아요. 그림결을 돋보이게 한대서 ‘좋은 만화’로 사랑받을 수는 없어요.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그림 솜씨를 북돋우려고 늘 애써야겠지요. 글을 쓰는 사람은 늘 글을 가다듬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노상 그림을 가다듬으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언제나 노래를 가다듬을 테니까요.
그러나, 누구라도 가장 크게 마음을 기울일 대목은, 글을 쓸 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글로 담느냐예요. 그림을 그릴 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느냐예요. 노래를 부를 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느냐예요.
할 말이 없는 글은 따분해요. 보여줄 이야기 없는 만화는 재미없어요. 들려줄 이야기 없는 노래는 귀가 따갑지요.
- “물론 쇼핑 같은 건 기본이에요. 1엔이라도 더 싼 가게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구요.” (10쪽)
- “몸은 괜찮은 거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어젠 제가 어떻게 됐었나 봐요. 고양이가 다크써클이라니. 많이 놀라셨지요? 이젠 괜찮으니까 오늘 첫 출근도 잘 해낼게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42쪽)
호시 요리코 님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8)를 읽으면서 새삼 생각합니다. 호시 요리코 님은 《오늘의 네코무라 씨》에 담은 그림을 날마다 한 칸씩 그렸다고 했어요. 요즈음에도 이처럼 날마다 한 칸씩 그리는가 궁금한데, 《오늘의 네코무라 씨》는 그림결이 참 투박합니다. 연필로 미리 끄적인 밑그림 같달 수 있어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러니까, 하루에 한 장 그린 그림이라 생각하며 하루에 한 장만 읽자고 생각하며 그림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연필로 미리 끄적인 밑그림이 아니라 참말 하루에 한 장씩 들려주는 삶이야기로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어요.
마음을 차분히 내려놓으며 읽을 만한 만화입니다. 비비 꼬이거나 친친 감긴 실타래 같은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며 읽을 만한 만화예요.
내가 누릴 한삶을 예쁘게 즐길 길을 하나하나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나와 살을 부비는 살붙이 한삶을 곱게 헤아리는 길을 차근차근 되새기도록 이끌어요.
- “근데 말야, 자네같이 열심히 일하고 성격도 좋은 고양이가 어째서 주인 마음엔 들지 못한 걸까. 아,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 봤네.” “후후후, 괜찮아요, 사모님. 그렇게 신경 안 써 주셔도. 궁금해 하시는 게 당연한 거죠.” “아, 아니야. 말하고 싶지 않거나 무슨 사정이 있는 거면 말 안 해도 괜찮아.” (17쪽)
- ‘야마다 씨는 좋겠다. 꼬마아이가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울면 달래 주고 기저귀도 갈아 주고, 자장자장도 해 주고.’ (45쪽)
그림이 예쁜 만화가 있습니다. 그림만 예쁜 만화가 있습니다. 그림만 예쁜 척하는 만화가 있습니다. 그림만 예쁘게 만드는 만화가 있습니다.
만화는 눈으로 봅니다. 눈으로 비치는 모습이 예쁘장한 일이 나쁠 까닭 없어요. 그런데 있잖습니까, 예쁜 만화는 철철 넘쳐요. 아니, 예쁘장하게 그리는 만화는 그득그득 하답니다.
삶이 있는 만화로 그려야 즐거워요. 삶을 나누는 만화로 펼쳐야 재미나요. 삶을 일구는 만화로 보여주어야 손길을 뻗쳐 찬찬히 넘기면서 내 하루를 이 만화책 읽기에 바칠 수 있어요.
- “상관 말라니. 어르신은 오니코 아가씨의 단 하나뿐인 아버지잖아요. 저는, 저는, 왠지 참을 수가 없네요!” (77쪽)
- “어제 꾼 꿈, 왠지 불안해. 오니코 아가씨도 걱정되고. 밥을 안 먹겠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난 아무리 슬프고 피곤해도 밥은 꼭 먹었는데.” (106쪽)
하루하루 천천히 즐깁니다. 쌀을 씻고 불리며 안치는 흐름을 하루하루 천천히 즐깁니다. 처음으로 장만한 비싸구려 엔젤녹즙기로 누런쌀과 당근을 간 물을 천천히 즐깁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는 둘째 갓난쟁이 작은 손을 손가락 하나씩 들어 붙잡으면 아이는 온몸 파르르 떨듯 용을 쓰며 일어섭니다. 용케 잘 일어서네 하고 놀라며 한참 이렇게 놉니다.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버지한테 고개를 돌리다가는 누나한테 고개를 돌려요.
하루하루 말솜씨가 느는 첫째 딸아이는 아이가 좋아하는 옷만 스물네 시간 입으려고 용을 씁니다. 빨래를 하재도, 추우니 덧입으라 해도, 이래저래 아이 마음대로 하고픕니다. 네 살 첫째를 바라보며 내가 저 아이만 하던 무렵 내 어버이를 어찌 속썩이거나 즐거이 했을느지 돌이킵니다.
- “그 아줌마도 참, 지는 걸 엄청 싫어하나 봐. 나보고 ‘고양이! 고양이!’ 하면서 함부로 부르고. 정말 짜증나.” (183쪽)
- “옛날이라면 사모님이 아기였을 때 말인가요?” “아니, 그렇게 옛날은 아니고, 신혼 때, 출산 후에 요통이 심해서, 남편이 자주 마사지를 해 줬거든요.” “어머나, 어르신 상냥하기도 하셔라!” “맞아요. 그때 남편은 참 상냥했답니다.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230쪽)
기쁨은 먼 곳에 없습니다. 꿈은 먼 나라에 없습니다. 사랑은 먼 마을에 없습니다. 이야기는 먼 구석에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기쁨입니다. 내 마음자리에서 자라는 꿈입니다. 내 마음밭에서 움트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샘에서 솟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마음이 되도록 좋은 삶을 일구는 하루라 한다면, 네코무라 씨이든 내 살붙이이든 한결같이 예쁜 목숨빛을 나누리라 믿어요. (4344.11.23.물.ㅎㄲㅅㄱ)
― 오늘의 네코무라 씨 1 (호시 요리코 글·그림,박보영 옮김,조은세상 펴냄,2008.12.2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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