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남기


 돈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힘줄 없는 사내로 태어났으면, 한국에서는 고스란히 군대살이 여러 해를 마쳐야 한다. 오른손 둘째손가락이 잘렸다든지, 오른팔을 못 쓴다든지 한다면 군대에 안 갈 수 있다. 그러나 돈·이름·힘줄 있는 사람은 온몸이 멀쩡하더라도 얼마든지 군대에 안 가곤 한다.

 나는 1995년 가을에 들어가 1997년 겨울에 마치고 나온 군부대를 떠올리기 싫어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강원도 땅을 한 번조차 밟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적어도 열 해 남짓 강원도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 살고 싶었다. 우줄우줄 솟은 멧봉우리만 보아도 가슴이 서늘했다.

 내가 깃들던 강원도 양구 맨 위쪽 민간인통제구역 끄트머리 북녘 병사를 서로 마주 바라보던 자리는, 온도계로 살필 때에 한겨울에 영 도 밑 47까지 내려가기 일쑤였다. 구월이 끝날 무렵부터 몹시 춥고, 이듬해 오월이 되어야 겨우 추위가 풀리는데, 예닐곱 달에 한 차례 말미를 얻어 바깥으로 나오면, 면내나 읍내 가게 바가지가 아주 끔찍했다. 1996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여인숙 하룻밤 묵는 데에 6만 원이었다.

 두 아이 새근새근 잠든 저녁나절 살짝 숨통을 트며 셈틀을 켠다. 다른 여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을 만한 새소식 하나 내 눈에 확 박힌다. 어쩔 수 없이 몸에 배고 만 슬픈 생채기 때문일까. 2012년 1월부터 예비군은 저마다 몸담던 군부대로 찾아가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새소식에 몸서리를 치고 만다.

 나는 예비군은 일찌감치 끝났다. 민방위도 머잖아 끝난다. 나 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 민방위소집 함께 받을 이웃 아저씨가 있을는지 아리송한데, 민방위조차 곧 끝날 몸이면서 예비군 훈련 틀이 바뀌었다는 소식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예전 그 강원도 양구군 깊디깊은 멧골짜기 군부대가 슬금슬금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아남는 일이란 쉬울까. 한국에서 살아남는 일이란 다른 어느 나라에서조차 구경하거나 겪거나 바라보기 힘든 일들이니, 이러한 일들을 치르거나 겪는 사람은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사진찍기나 춤추기나 노래하기에서 아주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꽃송이를 피울 수 있을까.

 둘째 갓난쟁이 오줌기저귀를 갈다가 퍼뜩 생각한다. 아, 내 가슴이 싸하게 시린 까닭은 우리 둘째 때문이구나. 사내로 태어난 둘째 때문이구나. 이 아이가 나중에 군대에 끌려간다면 겪을 일 때문이구나.

 그러나, 우리 둘째가 사랑스러운 꿈과 믿음직한 마음을 고이 보살피는 나날을 누린다면, 군부대에 도살장 개돼지처럼 끌려가든, 총부리를 붙잡고 갖은 욕설과 폭력에 젖어드는 나날을 보내야 하든, 죽음과 죽임만 판치는 군부대 얼거리를 따사로이 녹일는지 모른다. 밝은 햇살처럼 맑은 이야기를 길어올릴는지 모른다. 아이를 믿으며 내 삶을 착하게 돌보자. 아이를 사랑하며 내 나날을 예쁘게 보듬자. (4344.11.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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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23 18:11   좋아요 0 | URL
둘째가 아들이셨죠...
그렇네요, 언젠가 군대를 가야하는군요. 우리나라는 대체 복무가 거의 없죠?

하지만 따사롭게 키우시니, 충분히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을거예요, 두째는..

숲노래 2011-11-23 18:26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는 대체복무가 한 가지 있어요.
영창(감옥)에서 군복무기간보다 훨씬 더 길게 얌전히 앉아서
관절염에 걸리는 일 하나 있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