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숲은 깊다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강우근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들과 흙 만지며 숲에서 놀아요
 [환경책 읽기 32] 강우근, 《동네 숲은 깊다》


- 책이름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동네 숲은 깊다
- 글·그림 : 강우근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1.11.25.)
- 책값 : 13000원


 어버이한테서 땅을 물려받지 않고서야 흙을 일구며 살아가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흙일꾼으로 푸른 날과 젊은 날을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시골자락 논이랑 밭이랑 멧자락 사들이는 값은 그닥 비싸지 않습니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도시에서 땅 한두 평 사들이는 값이면 시골자락 너른 논밭과 살림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삶흐름을 돌아본다면, 오늘날 아이들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어린이집부터 대학원까지 ‘흙 일구는 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흙을 일구는 보람을 가르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어른들은 흙을 일구는 뜻을 헤아리지 못해요. 교사나 교수 가운데 흙삶을 스스로 누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머지, 아이들하고 흙을 만지며 일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없습니다.

 농업고등학교가 몇 군데를 빼고 몽땅 사라집니다. 학교이름에 농업이라는 낱말이 남더라도 농사일을 힘껏 가르치지 못합니다. 흙을 일구는 일보다는 교과서를 훨씬 오래 많이 자주 깊이 가르쳐요. 흙을 일구는 나날을 늘 느끼도록 이끌지 못해요.

 농업고등학교에 앞서 농업중학교가 없습니다. 농업중학교에 앞서 농업초등학교가 없어요. 농업초등학교에 앞서 농업유치원이나 농업어린이집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더라도 어린이일 적부터 흙을 가까이 사귀지 못합니다. 시골 어린이집조차 영어를 가르치지, 호미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뜻있다는 어린이집이더라도 낫질을 가르치지 않아요. 한글과 영화와 그림책 지식에 얽매입니다.
 



.. 냉이 하나 캐려고 구덩이까지 파지만 뿌리는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물 캐는 걸 흙 파는 놀이마냥 재미있어 한다 … 텃밭 둘레에서는 심지도 않았는데 자라나는 들나물을 언제나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텃밭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다. 텃밭 가꾸기를 시작한 것도 흙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 목련 풋열매는 낙서하기에 딱 좋다. 풋열매를 산딸기 열매 담았던 통에 가득 채워 아파트 옆 옹벽으로 가서 신나게 낙서를 했다 ..  (17, 39, 92쪽)


 오늘날 한국땅 시골마을에는 어르신들이 흙을 일굽니다. 한국땅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을 알뜰히 가르쳐 박사를 만들고 학자를 만들며 교수를 만듭니다. 의사랑 판사랑 검사를 만듭니다. 대통령을 만들고 국회의원을 만들며 군수를 만들어요.

 박사랑 국회의원을 만든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일흔 여든 나이에도 흙을 일굽니다. 구부정한 허리를 다시 펴지 못해 그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마지막날까지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습니다. 손으로 흙을 만집니다. 손톱 밑에는 흙때가 박힌 채 빠지지 않습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박사와 석사와 기술자와 교수들은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뿐 아니라 온 나라 모든 물줄기에 삽질을 해서 물길을 똑바로 편 다음 물가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걷는 길이랑 자전거 타는 길이랑 운동기구 갖다 놓는 일’을 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기자들은 서울로 몰려들어 신문을 만들고 방송을 만듭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교사랑 교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몸담으며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공무원은 공공기관이라는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키면서 돈을 법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흙을 만지는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흙일꾼 딸아들은 더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용케 굶어죽지 않습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곡식을 거두고 짐승을 치며 물고기를 낚으며 김을 말리지만,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어 아파트를 빼곡하게 올리고 자동차를 뛰뛰빵빵 몰면서, 용케 굶어죽지 않고 돈만큼은 알뜰살뜰 벌어들입니다.
 



.. 냉이 잎은 크기도 모양도 참 여러 가지다. 어떤 것은 지칭개 같고 어떤 것은 망초 같고 또 어떤 것은 개갓냉이 같기도 하다. 스스로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냉이는 이렇듯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을 게다. 나물을 한 봉지쯤 캐다 보면 꽃다지와 망초와 냉이쯤은 어느덧 자연스레 가릴 수 있게 된다 … 도룡뇽은 어항 바닥에 깔아 줄 모래를 쓸어 담으면서 휩쓸려 들어왔나 보다. 모래에 쓸려서 깔따구 애벌레도 잔뜩 딸려 왔다. 하루살이 애벌레, 날도래 애벌레도 쓸려 왔다. 물달팽이, 물벼룩도 보이고, 히드라도 보이고, 모래에 쓸려 온 게 참 많다. 개울 속 모래는 물속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구나. 그러니 강바닥 모래를 마구 파내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  (18, 60∼61쪽)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흙일을 배웠겠지요.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들한테 흙일을 안 가르쳤겠지요. 당신 딸아들한테 흙일을 가르치지 않으며 허리가 구부정해질 무렵, 군사쿠테타와 함께 찾아온 새마을운동 바람에 휩쓸리면서 풀약과 비료를 듬뿍 치고 비닐을 덮어씌운 다음 기계로 휘휘 밀고 닦는 농사짓기를 새로 배웠겠지요.

 풀약과 비료를 치고 비닐을 덮으며 기계로 밀고 닦는 농사짓기는 굳이 딸아들한테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런 농사짓기는 농협 공무원이 훨씬 잘 가르치겠지요. 이만 한 재주라면 대학교 농업과학과 같은 데에서도 얼마든지 가르치겠지요.

 즈믄 해인지 만 해인지 알 길 없는 기나긴 나날에 걸쳐 흙일꾼 아버지 어머니가 흙일꾼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쉰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오늘날 참말 흙을 일구는 길이 꽉 막히면서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풀약을 치면 풀이 죽습니다. 풀약을 쳐도 벼나 옥수수나 콩이나 보리나 밀이나 서숙은 죽지 않는다지만, 이들 곡식에는 풀약이 배어듭니다.

 풀약을 치면 사람들 즐겨먹는 곡식 둘레에서 스스로 씨를 퍼뜨려 돋는 숱한 나물이 죽습니다. 포도나 능금이나 배 같은 열매는 아주 풀약에 찌들며 알이 굵고 달콤해진다지만, 칡이나 쑥이나 냉이나 씀바귀는 풀약을 한 번 맞으면 그대로 말라죽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추나 무나 당근이나 토마토나 오이는 풀약을 듬뿍 쐽니다. 그래도 용케 안 죽습니다. 풀약을 듬뿍 먹은 곡식이랑 푸성귀를 먹는 사람들 또한 용케 안 죽습니다.

 다만, 용케 안 죽을 뿐, 오늘날 여느 사람치고 병원 문턱 뻔질나게 드나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나이들어 보험 걱정 않는 사람 꼽기 힘듭니다. 요즈음 아이들치고 아토피 없는 아이나 젊은이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새로운 병은 자꾸 늘고, 새로운 예방주사 자꾸 생기지만, 아픈 사람은 끊이지 않아요. 아프며 고단한 사람은 그치지 않아요.
 



..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찬 동네에서 걷기 좋은 길은 드물다. 풍경도 삭막하다. 걷다가 쉴 만한 곳도 찾기 힘들다 … 아파트 둘레 풀들은 대개 다 귀화식물이네. 이런 잡초들은 쓸모없고 성가신 풀 같지만 벌레들한테는 밥이 되고, 집이 된다 … 낙엽 속에서 겨울잠 자는 벌레처럼 낙엽 이불을 덮고 조용히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누워서 본 숲의 모습은 색다른 느낌이다 ..  (52, 73, 122쪽)


 그림쟁이 강우근 님이 빚은 이야기책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북한산 밑자락에서 살아가며 그림을 그린다는 강우근 님인데, 강우근 님은 서울에 깃든 아파트에서 두 아이랑 옆지기랑 살아가며 그림을 그립니다. 으레 자연을 그리고 으레 아이들 삶을 그림으로 옮기는데, 강우근 님 집자리랑 살림자리는 도시요 아파트입니다.

 아파트에서, 게다가 서울자락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어떻게 자연 그림이랑 어린이 그림을 그리나 아리송합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아파트에서 살든 숲속에서 살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생각을 어찌 가누느냐에 따라 그림결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자연을 품에 안는 사랑을 곱게 건사할 수 있으면, 아파트로 빼곡한 곳에서도 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이파리 흔드는 소리를 들어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빗물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햇살이 슬퍼하는 소리와 무지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듣겠지요.

 《동네 숲은 깊다》는 책이름처럼 도시자락 동네에 사람이 애써 만든 숲 또한 사랑스러운 자연이요 깊은 자연이며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이야기를 담아요. 꼭 시골땅을 장만하고 시골집을 일구어야 자연사랑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보여줘요. 메마르고 팍팍한 도시에서 한결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꿈을 들려줘요. 텔레비전에 휘둘리고 부질없는 쇠삽날 막공사 정책에 길드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어루만지고 싶은 사랑을 나눕니다.
 



.. 개울을 뚝딱뚝딱 도로 만들 듯이 만들려고 한다. 개울에 사는 벌레 한 마리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물만 흘리면 개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숲도 만들고 개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 집에 돌아오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 (우리 아이) 나무하고 단이가 텃밭에 가지 않으려고 버틴 것은 그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커서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87, 142쪽)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숲을 사랑하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숲을 사랑하는 넋을 심습니다. 이 아이 어버이는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더라도, 이 아이는 홀로서기를 할 나이가 꽉 찰 무렵 제 어버이보다 한결 씩씩하게 흙땅을 찾아 흙집을 짓고 흙일꾼이 되는 흙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푸나무를 아끼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푸나무 아끼는 얼을 물려줍니다. 이 아이 어버이는 도시에서 얽매이며 도시에서 떠돌더라도, 이 아이는 제금날 나이가 될 무렵 제 어버이는 생각으로만 품던 꿈을 아이 삶으로 이루면서 어려운 가시밭길이든 힘겨운 자갈밭이든 다부지게 걸어가며 싱그러운 흙내음 살가이 들이마실 수 있어요.
 



..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놀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  (머리말)


 《동네 숲은 깊다》처럼 도시에서 동네를 사랑하는 길을 슬기로이 다스릴 줄 알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동네를 사랑하는 길을 아름다이 닦으면 반갑겠습니다. 서른 해나 마흔 해 뒤 다시 허물어 짓는 아파트는 부디 끝장낼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아파트에서 사느냐 마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사랑을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터에서 어여삐 꽃피우는 보금자리를 이루며 즐기어 나누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동네 숲은 깊다》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낙엽이 많이 졌다(121쪽)”, “낙엽은 이쪽으로 떨어질 듯하다가(122쪽)”, “낙엽이 떨어져 쌓이는(122쪽)”처럼 ‘낙엽(落葉)’이라는 낱말을 자꾸 쓰는데, ‘낙엽’ 씀씀이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땅에 앉으면” 이때에 ‘낙엽’이라 일컫습니다. “길에 낙엽이 많다”처럼 쓸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한국말은 ‘낙엽’ 아닌 ‘가랑잎’이에요. 나무에 달릴 때에는 나뭇잎이요, 나무에서 똑 하고 떨어질 때에는 가랑잎이 됩니다. ‘네잎클로버’ 아닌 ‘네잎토끼풀(56쪽)’을 이야기할 줄 아는 강우근 님인 만큼, 아무쪼록 ‘가랑잎’과 ‘나뭇잎’을 알맞게 가려쓸 줄 알면 더 기쁘겠습니다. (4344.11.21.달.ㅎㄲㅅㄱ)
 

 

(마지막 사진은 여섯 달짜리 둘째가 잡아 주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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