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76] 벽종이
새로 얻은 보금자리를 꾸미려고 헌 벽종이를 뜯습니다. 우리로서는 새 보금자리이지만, 이 집은 퍽 예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림집 하나 꾸리면서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나중에 저희끼리 새로운 살림을 일구면서 제금을 납니다. 벽종이에 풀을 바르면서 생각합니다. 풀을 바른 벽종이를 차곡차곡 접어서 살짝 말리묘 헤아립니다. 지난날 이 집을 곱게 꾸미면서 벽종이를 바르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내 어린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 집에 벽종이를 새로 바르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헌 벽종이를 뜯어 마당 가장자리에서 불을 붙입니다. 새 벽종이는 한 장씩 차근차근 붙입니다. 불이 붙은 벽종이는 금세 까맣게 재로 바뀝니다. 새로 붙인 벽종이는 조금씩 마르면서 시나브로 하얀 빛이 돕니다. 문득, 먼먼 옛날 벽종이 없던 때에는 살림집 방을 어떻게 꾸몄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 살던 궁궐은 방마다 벽이 어떠했을까요. 임금님을 모신다는 사람들 커다란 기와집 방은 벽을 어떻게 마감했을까요. 흙을 일구는 여느 사람들 흙집은 방마다 벽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벽종이는 언제부터 발랐고, 벽종이는 왜 발라야 했을까요. 이제 모든 집을 시멘트로 짓다 보니 벽종이 없이는 안 되는구나 싶지만, 시멘트 아닌 흙과 나무로 집을 짓던 멀디먼 옛날을 그립니다. (4344.11.12.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