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 사진관
신현림 지음 / 눈빛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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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쟁이 된 능금나무밭에서 사진으로 찍는다
 [찾아 읽는 사진책 67] 신현림, 《사과밭 사진관》(눈빛,2011)



 신현림 님은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눈빛,2011)을 내놓으면서 100쪽에 걸쳐 사진을 보여주고 40쪽에 걸쳐 글을 들려줍니다. 신현림 님은 사진과 글로 함께 이야기합니다. 맨 먼저 “사과꽃이 피고, 빨간 사과가 열리는 곳. 사과밭 쪽을 바라보자, 내게 푸른 바람이 불어왔다. 몹시 따사롭고 정에 넘치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사과꽃 하나가 내 손에 사뿐 내려앉았다(10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능금꽃을 신현림 님 사진감으로 삼으면서 하얀 능금꽃과 빨간 능금알이 가슴속으로 어떻게 스며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푸른 바람을 맞으며 푸른 몸이 되었다면 푸른 사진을 찍습니다. 맑은 바람을 쐬면서 맑은 넋이 된다면 맑은 사진을 담아요. 보드라운 바람을 누리며 보드라운 꿈을 키운다면 보드라운 사진을 이루어요. 사랑스러운 바람을 즐기며 사랑스러운 뜻을 나눌 때에는 사랑스러운 사진을 낳아요.

 신현림 님은 “나는 사과꽃 풍경 속에서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120쪽).”고도 이야기합니다. 능금밭에서 사진을 찍고 놀고 쉬고 일하면서 더없이 사랑받았구나 싶어요. 신현림 님을 낳은 어머님은 어린 신현림 님이 어른 신현림 님이 되기까지 돌보고 아끼면서 사랑씨를 가슴에 살며시 심었겠지요. 어린 신현림 님은 어른 신현림 님이 되어 딸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딸아이 가슴에 사랑씨를 새롭고 새삼스레 심겠지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못 나누란 법은 없어요. 다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란 없어요.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빛깔과 결과 내음과 무늬로 사랑을 받아요.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사랑받는 줄 모르거나 어떻게 사랑받는 줄 못 깨달을 뿐이에요.

 온누리에 넘치는 글은 하나같이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온누리에 흐르는 그림은 한결같이 사랑이 감돕니다. 온누리에 빛나는 사진은 온통 사랑이라 할 만해요.

 신현림 님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자연 그리고 예술과 가까워지라고 말하고 싶다(128쪽).”는 말마디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사람은 고운 목숨을 아끼며 살아가자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사랑을 하기 마련이요, 사랑을 하는 삶을 누리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예술을 꽃피울 수 있어요.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 망가지거나 흔들리는 셈이고, 사랑을 하지 않는 삶으로는 어떠한 예술도 꽃피우지 못해요.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에 나오는 능금나무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어느 능금나무이든 키가 참 작습니다. 죄다 난쟁이 능금나무입니다. 그런데, 이들 난쟁이 능금나무는 가지마다 끈을 묶어 땅바닥에 박아요. 하늘로 뻗지 못하도록 붙잡힙니다. 하늘로 가지를 높일 수 없고, 열매를 ‘하늘을 나는 새’하고 나누지 못해요.

 사람들은 능금알을 맛나게 먹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퍽 값싸게 장만하면서 능금알을 즐깁니다. 능금알을 즐기면서 이 능금이 어떤 나무에서 어떻게 매달린 채 자라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능금나무가 무엇을 먹고 능금알을 맺는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능금알은 능금꽃이 피어야 맺힐 수 있는 줄 깨닫지 않습니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본 사람이라면, 앤이 처음 푸른지붕집 있는 마을로 들어서려고 마차를 타고 달릴 때에 한 마디조차 벙긋하지 못하면서 눈부시게 하얀 능금꽃 흐드러지는 길을 달린 모습을 떠올리리라 봅니다. 앤이 앞으로 살아갈 마을에서는 능금나무가 우뚝우뚝 솟아요.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요. 마음껏 가지를 뻗고 굵다란 열매를 맺습니다. 먼 옛날,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무대가 되는 마을에서는 농약이든 비료이든 뿌리지 않습니다. 아니, 농약이나 비료나 없어요. 어느 사람도 가지를 끈으로 잡아당겨 땅에 못을 박지 않아요. 스스럼없이 자라나는 능금나무요,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능금알을 따며, 이렇게 능금알을 딴다지만 멧새와 들새는 마음껏 날아들어 먹고픈 대로 알맞게 능금알 콕콕 쪼며 나누어 먹어요.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어른 키보다 높은 능금나무조차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굵직한 능금알만 얼른 잔뜩 매달아야 하는 슬픈 능금나무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손쉽게 능금을 깨물어 먹지만, 막상 능금이 사람한테 베푸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모르는 채 능금을 먹고 배를 먹으며 복숭아를 먹습니다. 사랑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수박을 먹고 참외를 먹으며 토마토를 먹습니다. 더 값싸다는 열매를 먹거나 유기농으로 키웠다는 열매를 먹을 뿐입니다.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 사랑으로 보살핀 다음 사랑으로 거둔 열매를 먹지 않아요.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제껏 능금나무나 능금밭을 사진감으로 삼아 예쁜 사랑을 나누려고 마음을 기울여 살가이 만난 사람이 얼마나 있었나 궁금합니다. 꼭 능금나무가 아니더라도 배나무이든 대추나무이든 석류나무이든 감나무이든, 곁에서 애틋하게 사랑하면서 열매를 얻기도 하고 잎과 꽃과 줄기를 고루 즐기면서 사랑한 사진쟁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나무를 심는 사진쟁이는 있는가요. 스스로 나무 심을 흙땅을 마련하는 사진쟁이는 있을까요. 스스로 나무와 같이 살아가자며 흙을 누리는 시골자락으로 살림터를 뿌리내리는 사진쟁이는 있나요.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신현림 님부터 능금밭 능금나무 그대로 결을 살리는 마을에서 딸아이와 예쁘게 뿌리내릴 수 있을 앞날을 꿈꿉니다. 《사과밭 사진관》을 즐긴 사람들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능금밭 돌보는 흙집이라든지 능금나무 곱게 심어 아이들한테 물려줄 넋으로 살아가는 분이 한 사람이라도 나올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4.11.11.쇠.ㅎㄲㅅㄱ)


― 사과밭 사진관 (신현림 글·사진,눈빛 펴냄,2011.10.4./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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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나무를 심고, 나무를 심을 흙땅을 마련하고
흙을 누리는 시골자락 살림터를 뿌리내리는 사진쟁이, 함께살기님 계시잖아요. ~^^
참, 사과나무와 능금나무는 같은 나무인가요~^^;;
저도 프로필 이름을 '능금나무'로 바꾸고 싶네요.^^;;;